< 한국GM 부평공장의 운명은… >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한국 정부에 한국GM에 지원을 공식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리 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7일 한국GM 부평공장 서문으로 드나드는 근로자들의 모습.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한국GM 부평공장의 운명은… >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한국 정부에 한국GM에 지원을 공식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리 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7일 한국GM 부평공장 서문으로 드나드는 근로자들의 모습.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은 지난해 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의 ‘한국 철수설(說)’을 일축했다. 그는 “한국GM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총 2조원의 큰 적자를 냈는데, 흑자 전환을 통해 철수설을 불식시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포부’와 ‘현실’은 달랐다. 한국GM은 작년에도 8000억~1조원가량 당기순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갈수록 수출 물량이 쪼그라들고 공장가동률은 추락하는 데 비해 인건비와 생산비용은 뛰어오르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다급한 미국 GM 본사가 한국 정부와 2대 주주인 산업은행에 한국GM 유상증자 참여 등의 지원을 요청하고 나선 배경이다.

호소인가, 압박인가

GM의 제안 중 핵심은 최소 2조원에서 최대 3조원에 이르는 유상증자를 통한 신규 자금(뉴 머니) 지원이다. GM(한국GM 지분율 76.96%)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상하이자동차(6.02%)가 2조5000억원을 투입하고 산은(17.02%)도 5000억원 정도를 거드는 구조다. GM은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한국GM의 신차 개발 및 부평공장 시설 투자, 군산공장 생산라인 구조조정 등에 쓴다는 계획이다. GM은 신규 자금이 한국GM의 빚을 갚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비용·저효율 늪에 빠진 한국GM… 미국 본사서 빌린 3.4조도 '바닥'
산은의 대출 재개도 요구했다. 한국GM은 그동안 연 4.8~5.3%의 비싼 이자를 내고 GM 본사에서 돈을 빌려 썼다. 신용도가 낮아 국내외 금융회사 차입이 불가능한 탓이다. 누적 차입금만 3조4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이 돈은 적자를 메우는 데 투입돼 거의 남아있지 않다.

GM은 한국 정부와 산은이 지원에 동의하면 한국GM에 글로벌 신차 생산 물량을 배정해 안정된 일감을 제공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기존 한국GM의 차입금(3조4000억원)은 일부 출자전환을 통해 부채를 줄여가겠다고 했다.

GM은 이 같은 계획을 공개하면서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이 한국GM의 정상화를 외면하면 한국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완전 자본잠식에 빠진 한국GM을 같이 살리자고 호소하면서 동시에 철수 가능성을 흘리는 ‘양동 작전’을 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규모 부실, GM 본사도 책임 있다”

한국GM의 2대 주주인 산은은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대규모 자금 지원을 결정할 수 없어서다. 금융위원회나 청와대 등이 ‘OK 사인’을 줘야 증자 참여나 대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부는 쉽게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GM이 과연 한국GM을 살릴 뜻이 있는지, 아니면 내부적으로 철수를 결정해놓고 명분을 쌓는 절차에 돌입한 것인지 꼼꼼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GM이 ‘적자의 늪’에 빠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가장 큰 원인 은 수출 급감이다. 미국 GM 본사가 2013년 말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를 결정하면서 쉐보레 브랜드 차량을 생산하는 한국GM의 유럽 수출 물량이 크게 줄었다. 그 여파로 한국GM의 완성차 수출은 2013년 63만 대에서 지난해 39만 대로 쪼그라들었다. 공장가동률도 뚝 떨어졌다. 말리부와 스파크를 생산하는 부평·창원공장은 그나마 정상 가동하고 있지만, 올란도와 크루즈를 생산하는 군산공장 가동률은 30% 밑으로 떨어졌다.

공장을 놀리고 적자를 보는 동안에도 한국GM 근로자의 인건비는 계속 올랐다. 2013년 7300만원이던 직원 1인당 연간 평균연봉은 지난해 8700만원으로 20%가량 뛰었다. 한국GM 출범 당시인 2002년과 비교하면 2.5배 상승했다.

GM 본사가 한국GM을 구조적 적자의 늪에 빠뜨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GM 본사가 부품 등 원재료 가격을 비싸게 넘기고 한국GM이 만든 완성차는 싸게 팔았다는 이른바 ‘이전가격’ 논란이 대표적이다. 한국GM 매출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93%(2016년 기준)에 달한다. 국내 다른 완성차업체보다 10%포인트가량 높은 수준이다. 한국GM을 대상으로 비싼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줘 ‘이자 놀이’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