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대를 회복했지만 기업이 체감하는 경기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본격화, 원화 강세와 국제 유가 상승 등이 맞물려서다. 내수 부진이 여전한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 등 급격한 비용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기업의 체감 경기는 좀체 나아지지 않고 있다.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월 제조업의 경기실사지수(BSI)는 77로 전월 대비 4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2월(76)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낮다. 이 지수는 기업이 인식하는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기준값(100)을 밑돌면 경기를 나쁘게 보는 기업이 좋게 인식하는 기업보다 많다는 의미다.

이달 제조업체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가 나빠진 건 중소기업과 내수기업의 영향이 컸다.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 대기업 BSI는 2포인트(87→85) 하락에 그쳤지만 중소기업은 한 달 새 8포인트(71→63) 급락했다. 2016년 12월(62) 이후 1년1개월 만에 최저치다. 또 세계 경기 회복 등에 힘입은 수출 호황 덕분으로 수출기업 BSI는 1포인트 하락에 그쳤지만 내수기업은 6포인트 떨어졌다.

한은은 전자·자동차 등 대기업의 업황 부진으로 수직적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중소·내수기업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해석했다. 전자업종은 스마트폰 판매 둔화와 디스플레이 가격 하락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동차도 완성차업체의 파업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대기업의 실적 둔화가 중소기업 부진으로 이어졌다”며 “다수의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중간재를 납품하는 내수기업으로 분류돼 중소기업 부진이 내수기업 하락으로도 직결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1월부터 16.4% 오른 최저임금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한은이 전국 2830개 법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경영 애로사항으로 인력난·인건비 상승을 꼽은 제조업체 비중은 전달보다 1.1%포인트 오른 9.1%로 조사됐다. 한은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3년 1월(9.8%) 이후 15년 만에 최대치다. 내수 부진(19.3%), 불확실한 경제 상황(13.6%) 등도 애로사항으로 꼽혔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이날 매출 기준 국내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월 경기 전망치도 91.8로 낮았다. 2016년 6월 이후 21개월 연속 기준값(100)을 넘지 못하고 있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달러, 유가, 금리 등 대내외 거시변수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