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27조 제1항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 개발을 통해 국민 경제 발전에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은 과학기술을 경제 발전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낡은 인식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1948년 이후 1987년까지 아홉 차례에 걸친 개헌이 있었지만 과학기술을 경제발전 논리에만 종속하다 보니 국민 삶의 증진이나 국가 경쟁력이란 좀 더 넓은 관점의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계에서는 최근 이뤄지는 헌법 개정 과정에서 이 부분을 변화된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이 경제발전의 도구라는 현행 헌법 개정해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개헌 어떻게 할 것인가, 과학기술계 긴급토론회’에서도 개헌 논의에 이런 문제를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과학계 의견은 대체로 ‘제127조 제1항의 개정’을 요구하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발제자로 나선 김현철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헌법은 과학기술을 국민 경제 발전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제시하고 있다”며 “과학기술사회가 미래 사회의 핵심 조건이라는 표명도 없고 과학기술 증진에 관한 국가의 책무가 제대로 규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과학 정책에 관한 헌법 조항은 1962년 공포된 제3공화국 헌법의 ‘경제’ 분야에 처음 언급된 것을 시작으로 개헌 때마다 조금씩 바뀌었을 뿐 큰 틀은 유지되고 있다. 정부도 이런 헌법에 근거해 과학기술 정책을 ‘경제성장’이라는 목적에만 맞춰왔다.

과학계는 현행 헌법은 과학기술의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해 경제 발전과 관련이 적은 기초 연구나 새로운 지식 창출 분야에 관심을 떨어뜨린 원인이 돼왔다고 보고 있다. 포스텍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브릭)가 지난해 10월 과학기술인 2280명을 대상으로 헌법 개정과 관련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70% 넘는 응답자가 과학기술을 경제 발전의 도구로 인식하게 하는 제127조 1항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1976년 맺은 국제인권규약을 비롯해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데자네이루 선언’, 유네스코의 ‘생명윤리와 인권보편선언’ 등은 과학기술사회에서 인간이 누려야 할 새로운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 김 교수는 “새 헌법에는 한국 사회가 혁신과 창의성에 기반한 과학기술사회를 추구한다는 내용을 담거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능력을 발휘하도록 균등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소한 기본권에 모든 국민이 과학기술 성과 이익을 누릴 권리를 갖는다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