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참기름을 만든다?

스타트업이란 단어에서 연상되는 것들은 대개 ‘모바일’ ‘첨단 기술’ ‘O2O’와 같은 것들이다. 참기름처럼 스타트업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쿠엔즈버킷이 스타트업 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스파크랩스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선발되면서부터다. 2016년말에 스파크랩스 주최로 열렸던 데모데이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았다. ‘특이한 업종’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참기름과 전혀 다른 기술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열린 스파크랩스 데모데이에서 발표 중인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 스파크랩스 제공
2016년 12월 열린 스파크랩스 데모데이에서 발표 중인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 스파크랩스 제공
“그동안의 참기름은 철저히 공급자 위주였다”
참기름은 몇 방울만으로도 군침 도는 고소한 향기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양이 많아지면 음식의 다른 향을 덮어버린다. 한국인에게는 침샘을 자극하는 향기지만 외국에선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한국 중국 일본 이란 등을 제외한 나라에선 참기름을 잘 쓰지 않는다. 서양 요리사 중에는 참기름을 두고 ‘음식에 재(ash)를 뿌린다’고 불평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참기름의 효능에 대해선 서양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유럽에선 “세서미 오일(sesame oil)이 있는 찬장은 약장과 같다”는 말도 있다. 결국 참기름의 독특한 향이 ‘참기름의 글로벌화’를 막았단 얘기다.
참기름의 독특하고 강렬한 향은 참기름의 원료로 인해 발생하는 특징일까. 아니면 제조과정의 문제로 인해 발생한 후천적인 특징일까. 쿠엔즈버킷의 창업자 박정용 대표는 이를 제조과정의 문제로 인식했다.
참기름 제조 과정을 보자.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하다. 먼저 깨를 볶은 뒤 압착기를 이용해 기름을 짜낸다. 마지막으로 불순물을 걸러내면 시중에서 파는 참기름, 들기름이 된다. 깨를 볶는 이유는 깨에서 기름을 쉽게 분리하기 위해서다. 고온으로 볶을수록 기름이 더 많이 나온다. 압착 역시 고온이 더 쉽다. 보통의 참기름은 270도 이상 온도로 볶은 깨를 쓴다. 압착도 200도 이상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깨가 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참기름과 들기름의 향은 깨가 타면서 만들어진 셈이다. 발암 물질인 벤조피렌이 나오기도 한다.
동네 방앗간이든 대기업이든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제조 방법은 대동소이하다. 자연히 맛도 천편일률적이다. 차별화를 할 방법도 별로 없다. 원료를 국산을 쓰냐 수입산을 쓰냐 정도의 차이만 있었다.
업체들이 이런 방식으로 참기름을 만든 것은 대량생산을 하기 좋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을 하려면 고온으로 빨리 볶아 최대한 참기름을 많이 짜내야 한다. 소비자들이 얼마나 참기름의 진짜 맛과 향을 누릴 것인가보다는 참기름 대량생산에 초점이 맞추져 있다는 게 쿠엔즈버킷의 주장이다. 그래서 박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의 참기름은 철저히 공급자 위주로 제조됐다”고. 그는 기존 참기름 업체들과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저온에서 볶아 저온에서 압착한다
쿠엔즈버킷의 제품
쿠엔즈버킷의 제품
쿠엔즈버킷의 제품은 저온에서 볶아 저온압착한 참기름(들기름)과 볶지 않고 바로 압착한 생참기름(들기름) 등 크게 두 종류다. 깨는 원적외선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낮은 160도 이하에서 볶는다. 추출도 70도 이하에서 저온 압착한다. 이렇게 하면 고온 압착할 때보다 추출되는 기름의 양이 30% 정도 적다. 생참기름은 이보다 30% 더 적다. 일반 참기름보다 향도 강하지 않다. 상온에서 보관하는 일반 참기름과 달리 냉장 보관을 권장하고 있다.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제품이다.
하지만 맛이 전혀 다르다. 참깨와 들깨의 고소한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기름이 나온다. 향이 적어 올리브 기름처럼 부담없이 뿌려도 냄새로 뒤덮이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는다. 커피콩의 품종과 원산지, 로스팅 방법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깨도 산지와 볶는 방법에 따라 다른 맛을 낼 수 있다. 박 대표는 “외국 요리사를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피넛 버터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올리브 기름처럼 드레싱, 페스토 등 다양한 음식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답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맛본 쿠엔즈버킷의 참기름은 기존의 제품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박 대표의 권유에 따라 한 숟가락 가득 참기름을 따라 입안에 넣어보니 고소한 맛이 입안을 오래 맴돌았다. 질 좋은 올리브 기름을 먹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창업 후 1년간 꼬박 테스트만 했다

박 대표는 2012년 2월 쿠엔즈버킷을 창업했다.
직전 3년 동안 마케팅 회사를 다니며 전국의 전통식품 명인을 백화점과 이어주는 일을 했던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참기름이 정체돼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참기름 프랜차이즈를 만들 생각을 했다. 그는 “짠돌이 짠순이 같은 이름의 참기름 프랜차이즈를 만들려고 했는데 참기름에 대해 알아볼수록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옮겨갔다”고 말했다.
서울 도곡동 주택가의 쿠엔즈버킷 매장.
서울 도곡동 주택가의 쿠엔즈버킷 매장.
창업은 했지만 지금의 결과물을 얻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고온에서 볶는 것과 압착하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이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볶는 과정은 원적외선 기계를 사용해 해결했지만 곧 난관에 부딪혔다. 저온 압착 기계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에 수입된 모든 참기름 압착 기계는 고온 압착용이었다. 외국으로 수소문을 해봤지만 올리브를 짜는 기계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여행용 트렁크에 참깨를 가득 싣고 유럽으로 가서 착유기 회사들을 직접 방문했다. 수 십 곳을 찾아다니며 깨를 갈아봤지만 참기름 대신 ‘깨죽’만 나왔다. 가장 양호한 결과물을 보여줬던 독일의 한 회사와 함께 맞춤형 기계를 개발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박 대표는 “단순히 온도를 낮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많았다”며 “온도가 낮아지면 압착기의 압력이 더 강해져야 하고 여기에 맞춰 부품 등도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불순물을 걸러주는 필터를 만드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보통 참기름 불순물은 침전 방식으로 걸러낸다. 참기름의 점착성이 강해서 필터를 통과시킬 경우 30초면 필터가 막힌다는 이유였다. 침전통을 쓰면 한 달 가까이 참기름을 넣어둬야 불순물들이 모두 가라앉는다. 고온 압착한 참기름은 오래 보존할 수 있고 향이 강해 침전통에 오래 둬도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쿠엔즈버킷의 저온 압착 참기름은 침전통을 쓰면 통 안의 잡냄새를 모두 끌고 나온다는 설명이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 끝에 제약용으로 나온 장비를 개조해 여과기를 만들었다. 박 대표는 “저온 압착과 여과기 모두 우리만의 독자적 기술이 있기 때문에 다른 업체들이 따라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참기름을 ‘제2의 올리브 기름’으로”

1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2013년 3월 처음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매장 겸 생산기기가 있는 서울 도곡동을 중심으로 ‘좋은 참기름’이라는 입소문이 퍼져나갔다. 이듬해 6월 갤러리아 백화점에 입점한 것을 시작으로 현대백화점, 리츠칼튼호텔 등에도 물건을 납품하게 됐다.
매출도 꾸준히 늘어났다. 판매를 시작한 2013년 8000만원을 기록했고 2014년 2억5000만원, 2015년 8억8000만원으로 매년 세 배씩 증가했다. 하지만 2016년에는 10억원에 그쳤다. 현재 도곡동 매장의 설비만으로는 연간 15톤 정도의 참깨를 소화하는 것이 한계인 탓이다.
박정용 대표
박정용 대표
박 대표는 추가 투자를 위해 2016년 스파크랩스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응모해 선발됐다. 사물인터넷(IoT), 머신 러닝 등 이른바 ‘최첨단’ 기술을 들고 나온 기업들 사이에 참기름 제조업체가 포함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박 대표는 “인터넷에서 프로그램 선발 공고를 보자마자 바로 신청서를 냈다”며 “투자금을 활용해 생산 설비를 확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쿠엔즈버킷은 올해 전북 익산의 국가식품클러스터에 공장을 세워 생산량을 늘려나갈 방침이다.
올해는 미국, 일본 등 해외 시장으로 본격적인 진출도 시도한다는 각오다. 박 대표는 “올리브 기름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연간 3억톤, 금액은 56조~90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며 “15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올리브 기름을 먹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건강 붐이 불면서 빠르게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참기름 시장은 아직 규모를 추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하지만 미국 내에서 동양 음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참기름을 ‘제2의 올리브 기름’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