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가입 과정을 떠올려 보자. 지인의 부탁으로 보장 내용도 잘 모르면서 가입한 경험이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몰라 제대로 혜택을 보지 못하는 일도 흔하다. 가입 때만 해도 그렇게 친절했던 보험 설계사의 연락처는 어디 있는지 찾아보기도 어렵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 3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보험 상품설명 불충분(불완전판매) 민원’ 자료에 따르면 2012~2016년 5년간 제기된 불완전판매 관련 민원은 2만9943건으로 연평균 6000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민원 숫자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종합하자면 보험은 꼭 필요한 상품이지만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다. 인슈어테크(보험+기술) 스타트업을 표방하는 레드벨벳 벤처스의 문제 인식은 이 지점이었다. 창업자인 류준우 대표는 “보험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면 더 많은 비즈니스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봤다.
❝
내가 가진 보험 한 눈에 보여주는 ‘보맵’
이 회사는 2017년 2월 ‘보맵’이라는 스마트폰 앱을 내놨다. 기능은 단순하다. 앱을 실행하고 한 차례 본인인증 과정을 거치면 한국신용정보원의 ‘내보험다보여’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가 가입한 보험 목록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앱을 직접 설치해보니 최근 새로 가입한 보험 상품부터 언제 가입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상품까지 모두 나왔다. 앱 설치부터 보험 목록 확인까지 30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단순히 ‘내보험다보여’의 인증 과정을 앱으로 끌어들였다고 볼 수는 없을까. 류 대표는 “‘내보험다보여’ 서비스는 1회성으로 보험 목록을 확인하는 것”이라며 “목록을 보려면 매번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맵은 스크래핑(scrapping) 기술을 적용해 신용정보원의 데이터를 가져온다”며 “보맵을 경유해 개인의 보험 목록을 확인한 뒤 보맵 서비스에 가입하면 언제든 앱에서 상품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용정보원의 자료를 가입자의 동의를 받아 앱에 저장하는 셈이다. 차별점을 두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추가했다. 보험 목록은 물론 상세 계약 내용과 특약 사항까지 보여준다. 매달 내는 보험료와 곧 만기가 도래하는 상품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복 가입한 보험은 없는지, 평균 연령 대비 과보장항목은 무엇이 있는지도 표시해준다. 류 대표는 “보험 가입 고객 대다수가 보험 상품을 자세히 모르다보니 자기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며 “보맵을 통해 보험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험사에서 손해사정 업무를 10년 이상 담당한 전문가들에게 상담도 받을 수 있다. 류 대표는 “고객들이 가장 궁금한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보상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가인데 정작 보험사에선 서류 안내부터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보맵 앱 내에서 ‘보험 문의하기’를 누르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상당수 질문은 ‘병원에 다녀왔는데 비타민도 보상을 받을 수 있냐’와 같은 간단한 것들이라고 한다. 류 대표는 “수익이 나오는 서비스는 아니지만 보험사가 아닌 고객 입장에서 상담을 해주기 때문에 반응이 아주 좋다”며 “데이터를 쌓아 단순한 질문은 챗봇 등으로 자동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2017년 3월22일에는 보험 설계사 전용 보맵 앱도 선보였다. 설계사가 이 앱을 다운받아 등록하면 보맵을 설치한 고객과 연결된다. 설계사는 이 앱을 통해 고객에게 가입 보험 내역을 요청할 수 있고, 고객은 전체 내역을 전달해 관리받을 수 있다. 보상금과 관련한 문의가 있으면 앱 내에서 바로 연락할 수 있다. 설계사에 대한 서비스 평점도 매길 수 있다. 류 대표는 “지금까지는 누가 좋은 보험 설계사인지 일반 고객이 알 방법이 전혀 없었다”며 “고객 검증을 통해 신뢰할만한 설계사들이 활동하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보험 가입 이후 사후 관리를 완전히 책임져주는 서비스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
보험 데이터 수집해 맞춤형 상품 만드는 것이 목표
왜 하필 보험 정보였을까. 류 대표는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AI) 보험 설계 시스템을 통해 고객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 대한 맞춤형 보험(마이크로 보험)을 판매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보험사에서 판매하는 대다수 상품은 이른바 ‘토탈 케어’다. 하나의 상품이 암, 질병, 상해, 사망 등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구조다. 류 대표는 이같은 구조가 정착된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제대로 된 상품을 설계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때문에 보험사의 상품이 데이터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영업이 편한 방향으로 설계됐다는 것이다.
레드벨벳 벤처스 전에도 인슈어테크를 내세운 스타트업들이 있었지만 대다수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사용자에게 소득, 연령, 원하는 보상 등을 물어본 뒤 알맞은 상품을 추천해주는 식인데 데이터가 없다보니 제대로 된 알고리즘을 짤 수 없다는 설명이다. 류 대표는 “보험사들은 자체 고객 데이터만 갖고 있을 뿐 다른 회사 데이터는 갖고 있지 못하다”며 “결국 고객의 데이터를 많이 확보해야만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류 대표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기로 했다. 첫 단계는 불신 해소다. 보험 내용도 잘 모른채 가입하는 사람이 많고 보상을 받기도 어렵다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보험에 불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용자 스스로가 어떤 보험을 갖고 있는지 알려주기로 했다. 다음은 궁금한 점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설계사 앱을 통해 설계사와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류 대표는 “앱 내에서 설계사에게 질문도 하고 보상 청구도 바로 할 수 있도록 했다”며 “평점 제도를 통해 실력있는 설계사는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어 고객과 설계사 모두 윈윈하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여기까지 잘 진행이 된다면 고객들의 성향과 필요한 보험에 대한 데이터를 쌓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존 대형 보험사들도 갖지 못한 정보들이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는 제대로 만들 수 없었던 특화 상품을 만들어 판다는 것이다. 직접 상품을 팔 수도 있고 기존 보험사와 협력해 상품을 내놓을 수도 있다. “여행자 보험이나 유학생 보험, 애견 보험 등 마이크로 보험에 대한 수요는 있지만 데이터가 없다보니 마케팅을 위한 일부 상품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사용자 데이터를 충분히 모으면 이런 상품을 팔 수 있습니다. 질병 보험 같은 경우도 특정 직업군이나 연령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해 추가로 필요한 보험을 추천하거나 이미 과하게 보장을 받고 있는 보험을 줄이거나 해지하라고 추천할 수도 있고요.”
❝
공동창업자 3인 모두 보험업계 출신
류 대표는 서울보증보험, ING생명 등 보험사에서 6년 가량 일했다. 류 대표는 물론 공동창업자인 김옥균 CSO, 김진일 CFO 모두 보험 업계 출신이다.
류 대표가 보험회사에 다니던 시절 개인적으로 보험금을 청구하려는데 보험증서를 찾느라 하루 종일 허탕을 쳤다고 한다. 끝끝내 찾지 못해 재발급을 받는데 팩스로 서류를 보내고 전화를 하는 등의 과정이 너무나 번거로웠다. 그는 “보험업계에서 일하는 내가 이정도면 일반 고객은 얼마나 불편하다고 느끼겠는가”라며 “보험 증서만 제대로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만들어도 수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창업에 대한 생각이 있어서 2010년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지만 IT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탓에 우선 시드머니를 모으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했던 사업은 케이크 DIY 서비스였다. 보험사 등과 연계해 크리스마스나 어린이날에 어린이들이 직접 케이크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재미케익(JammyCake)이란 프랜차이즈도 만들었다. 중국에 2호점까지 냈지만 “깨끗이 망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2014년 스타트업 열풍이 불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경험과 네트워크를 위해 지인의 추천으로 모비데이즈란 스타트업에서 1년 가량 일을 하다 2015년 11월 레드벨벳 벤처스를 설립했다. 회사 이름에 레드벨벳이 들어간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컵케이크 중에 가장 크리에이티브하고 시크한 게 레드벨벳 케이크였어요. 세련되고 시크한 회사가 되자는 생각으로 이 단어를 골랐습니다.” 아이돌그룹 레드벨벳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창업 후 1년 넘게 서비스를 만드는 데만 주력했다. 처음에는 사용자가 보험 증서를 직접 카메라로 찍는 방식을 도입했으나 사용자 편의성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바로 접었다. 이후 스크래핑 기술을 적용해 현재 서비스 형태로 만들었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묻자 류 대표는 “스크래핑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금액적인 허들도 있고 그보다 더 큰 장벽은 수많은 보험사의 상품 약관을 분석해 비교가능하게 정리하는 작업”이라며 “최소한 6개월에서 1년은 앞서있기 때문에 그사이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
연내 100만건 다운로드가 목표
앱이 나온지 채 2개월도 되지 않았고 아무런 홍보 활동도 없었지만 입소문만으로 다운로드 수가 3만건을 넘었다. 주목할만한 숫자는 다운로드 대비 가입자의 비율이다. 같은 기간 가입자는 2만8000여명으로 단순 계산해보면 다운받은 사람 10명 중 9명은 서비스에 가입했다는 뜻이다. 개인 정보를 다루는 앱 특성상 가입하자마자 탈퇴하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탈퇴자는 300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3월 추가로 선보인 보험 설계사 앱이 퍼지면 가입자가 더 빨리 늘어날 것으로 회사측은 내다보고 있다. 지금도 보험 설계사들이 고객을 만나 이 앱을 설치해보라고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용자들이 보맵을 좀 더 자주 접속할 수 있도록 보험 관련 유용한 정보를 카드 뉴스 식으로 만들 계획이다. 약관 분석 프로그램도 개발 중이다. 이용자가 가입한 보험의 약관을 분석해 병원에 가기 전에 보험 적용이 되는지 확인해보고 병원에 다녀와선 질병코드만 입력하면 청구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보험금 청구까지 자동으로 이뤄지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아직까지 매출은 없다. 보험 설계사 전용 앱은 현재 무료지만 시간이 지나면 월 이용료를 받을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더스퀘어앤컴퍼니로부터 시드머니 5억원을 투자받았다. 연내 시리즈A 투자를 받아 마케팅도 늘려나가기로 했다. “올해는 사람들에게 보맵을 알리는 데 주력하려고 합니다. 보맵 하나면 자신의 보험을 확인하고 궁금한 점까지 해소할 수 있다는 신뢰를 쌓아 연말까지 가입자 100만명을 모으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