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졌던 ‘빅블루’ IBM이 오랜 터널에서 벗어나 턴어라운드를 시작했다. 2012년 1분기 이후 끊임없이 줄어들던 분기 매출이 작년 4분기 23분기 만에 처음 성장세로 돌아섰다. 서버, 반도체, PC 등 하드웨어사업을 버리고 클라우드컴퓨팅과 인공지능(AI) 왓슨 등 솔루션 중심 ‘전략사업’으로 과감한 변신에 나선 지 거의 6년 만이다. 과거 사업에 집착하다 해체 위기까지 겪은 제너럴일렉트릭(GE)과 대조되는 행보다.
◆미래 사업에 베팅, 6년 만에 매출 증가

IBM은 18일(현지시간) 지난해 4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한 225억4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늘어난 건 지니 로메티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한 2012년 1분기 이후 처음이다.

창사 101주년이던 2012년 IBM 최초의 여성 CEO로 선임된 로메티는 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직감했다. 당시 주력 사업은 서버 등 하드웨어 판매·보수였다. 로메티 CEO는 고가 서버인 메인프레임 사업만 놔두고 다른 사업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2014년 ‘x86’ 서버 사업을 중국 레노버에 매각했고, 반도체사업은 글로벌파운드리에 돈까지 얹어주며 넘겼다. PC사업은 몇 년 전 레노버에 매각한 터였다.

대신 전략사업으로 택한 클라우드 서비스와 AI, 블록체인 기술 등에 역량을 집중했다. 데이터, 사이버 보안 및 클라우드 회사를 잇달아 사들였다. 하지만 기존 사업 매각으로 매출은 계속 감소했고, 신사업 성장은 더뎠다.

로메티를 지지하던 투자자들도 인내력을 잃기 시작했다. 2011년 지분 5.4%를 사들인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지난해 절반가량을 팔고 대신 애플 주식을 더 샀다.

지난해 4분기 클라우드, AI, 블록체인 등 전략사업 매출은 전체 매출의 49%까지 올라왔다. 매출 225억달러 중 111억달러를 차지했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17%다. 작년 전체로 봐도 전년보다 11% 늘어난 365억달러로 전체 매출의 46%였다.

제임스 카바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올해 전략사업을 두 자릿수로 성장시켜 매출 400억달러를 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전략사업이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란 얘기다.

◆AI 왓슨, 블록체인 기술도 정상궤도

IBM 주가는 이날 정규 시장에서 0.28% 오른 뒤 시간외 거래에선 약 3% 내렸다. 전략사업 성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면서다. 블룸버그통신은 “메인프레임 사업의 기여를 제외하면 매출 증가율은 잘해야 제자리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아직 매출의 상당 부분을 전통사업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은행 등에서 많이 쓰이는 메인프레임 서버의 교체 주기가 돌아오면서 관련 매출은 32% 증가했다.

4분기 매출 증가에는 달러 약세에 따른 환율 효과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클라우드 매출이 30% 증가했지만 여전히 업계 3위에 그친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경쟁이 가장 치열한 퍼블릭 클라우드 시장에서 IBM은 매출 20억달러로 아마존(120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65억달러)에 뒤처진다.

긍정적인 분석도 많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에드 앤더슨 애널리스트는 “IBM은 AI 분야에서 강력한 자산을 갖고 있으며, 왓슨을 통해 클라우드 경쟁력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왓슨을 개발한 인지솔루션사업의 4분기 매출은 2.5% 증가해 54억달러를 기록했다. 45개국, 29개 산업, 500여 개 기업이 왓슨을 활용하고 있다.

블록체인사업도 정상궤도에 올랐다. IBM은 지난해 월마트와 손잡고 세계 식품공급망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 중이며, 세계 최대 해운회사 머스크와 합작사를 세워 물류망 혁신에 나서기로 했다. 데이비드 홀츠 CFRA리서치 애널리스트는 “매출 증가는 투자자들이 IBM에 가장 원하던 것”이라며 “모든 사업이 옳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인텔 중앙처리장치(CPU)에서 ‘멜트다운’ 결함이 발견된 것도 IBM 메인프레임 사업에는 좋은 기회다. 인텔 CPU에 보안패치를 적용하면 성능이 2~25%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