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속스타 이강석의 마지막 역주…"평창 후배들, 좋은 설렘 갖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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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체전서 선수 은퇴 경기…지도자·해설자로 제2의 인생
"누구에게든 이변은 가능…스타급 아니어도 '들러리'라는 생각 버려야" 전국 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가 열린 12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
결승선을 통과한 후 전광판을 바라보며 트리코(스케이트 경기복) 지퍼를 내리는 이강석(33·의정부시청)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했다.
이날 이강석의 기록은 36초 47로,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차민규, 모태범, 김태윤 등 후배들보다 늦은 7위였지만 그 누구보다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지난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한국에 14년 만에 빙속 메달을 안기고, 이듬해 남자 500m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이미 '빙속 레전드' 반열에 오른 이강석의 마지막 레이스였다.
경기를 마친 이강석은 "새벽 3시가 다 되도록 잠이 안 오더라"며 "예전에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긴장돼서 잠이 안 왔지만 지금은 선수 생활을 더 못한다고 생각하니 허전함에 잠이 안 왔다"고 말했다.
잠자리에 든 이강석의 머리엔 지난 26년간 스케이트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떠올랐다.
영광과 환호의 순간도 있었고, 힘들고 후회되는 순간도 있었다.
21살 때 출전한 토리노올림픽에서 500m 동메달을 목에 걸며, 알베르빌올림픽 김윤만 이후 14년 만의 한국 빙속 메달리스트가 된 것,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곧이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4초 25의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은 잊기 힘든 영광의 순간이다.
"세계신기록이라는 것은 운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라 더욱 좋았어요.
그때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인 일본 가토 조지가 갖고 있던 종전 기록을 깬 것이고, 당시 레이스에서 2위도 일본 선수였기 때문에 한일전에서 승리한 것 같아서 더 기분이 좋았죠." 일찌감치 정상을 누렸던 이강석에게 2010년 밴쿠버올림픽은 아픈 기억이다.
세계랭킹 1위로 국내외 언론들로부터 금메달 1순위로 꼽혔던 이강석은 0.03초 차로 4위에 머물렀다.
정빙 문제로 레이스가 지연되며 흐름을 깨지는 불운이 작용했다.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빨리 달린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지만 당시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4등을 하니까 너무 패배자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죄인처럼 먼저 몰래 입국했죠. 가기 전엔 온통 '이강석' '이강석' 했는데 쓸쓸히 돌아오니 피해의식도 생기고 서럽기도 했어요.
운동도 하기 싫고 올림픽 방송 볼 때마다 슬프고…. 귀국해서도 집 밖에 잘 안 나가고 우울해 하니 가족들도 말이 없어졌죠. 그땐 정말 바보 같았어요.
후회됩니다.
"
이후 절치부심 나선 소치올림픽에서도 정상 탈환에 실패한 이강석은 평창올림픽을 한 달 앞둔 동계체전을 은퇴 무대로 삼기로 했다.
비록 평창에서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날 이강석은 후배들의 축복 속에서 나쁘지 않은 기록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100m 구간 기록은 함께 뛴 의정부시청 제자 김성규보다도 빠른 상위권이었다.
"은퇴경기지만 나이 들어서 떠밀려 은퇴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2년 동안 플레잉 코치로 뛰다 보니 아무래도 몸이 좀 안 따라줬지만 마지막에 어금니를 꽉 깨물고 뛰었죠."
이날 경기 후 라커룸에서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여러 후배가 이강석을 찾아와 꽃다발과 포옹을 건넸다.
이날 경기장에 도착해서 '레전드 이강석'의 은퇴를 축복하는 플래카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울컥했다는 이강석은 "애착이 많았던 스피드스케이팅이 끝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허전했는데 되게 많은 사람의 격려 속에서 은퇴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생각보다 덜 우울했다"고 말했다.
비록 선수로서는 은퇴했지만 이강석은 의정부시청 코치로, 그리고 방송 해설위원으로 평창올림픽을 맞는다.
함께 남녀 단거리를 제패했던 이상화를 비롯해 함께 올림픽 무대를 밟은 모태범, 이승훈, 그리고 의정부시청 제자가 된 김민선 등의 활약을 지켜보게 된다.
세 차례 올림픽을 경험한 이강석은 중요한 일전을 앞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올림픽에선 저처럼 세계랭킹 1위로 출전했다가 메달을 못 따기도 하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선수들이 메달을 따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니 스타급 선수가 아닌 선수들도 '나는 들러리다.
참가에 의의를 둔다' 이런 생각을 버리고 좀 더 집중력 있게, 좋은 설렘을 갖고 했으면 좋겠어요.
누구에게나 이변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만든 한국유소년스포츠협회를 통해 소외계층 유소년들의 체육 활동도 돕고 있는 이강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는 자신의 500m 한국신기록을 제자가 깨주는 것이 앞으로의 바람이라고 했다.
빙판을 완전히 떠나는 게 아니다 보니 "내일부터 달라지는 건 더는 트리코 안 입는 것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이강석에게 옆에서 듣고 있던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감독이 "트리코도 다시 입을걸"이라며 웃었다.
제갈 감독은 "워낙 열정적이라 가르치다 답답하면 본인이 직접 트리코를 입고 보여줄 것 같다"며 "천부적 재능으로 한국 빙속에 한 획을 그은 선수였기 때문에 은퇴할 때 만감이 교차할 텐데 선수로서 위대한 일을 했고 지도자로서 앞으로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후배의 새 출발을 축복했다. /연합뉴스
"누구에게든 이변은 가능…스타급 아니어도 '들러리'라는 생각 버려야" 전국 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가 열린 12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
결승선을 통과한 후 전광판을 바라보며 트리코(스케이트 경기복) 지퍼를 내리는 이강석(33·의정부시청)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했다.
이날 이강석의 기록은 36초 47로,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차민규, 모태범, 김태윤 등 후배들보다 늦은 7위였지만 그 누구보다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지난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한국에 14년 만에 빙속 메달을 안기고, 이듬해 남자 500m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이미 '빙속 레전드' 반열에 오른 이강석의 마지막 레이스였다.
경기를 마친 이강석은 "새벽 3시가 다 되도록 잠이 안 오더라"며 "예전에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긴장돼서 잠이 안 왔지만 지금은 선수 생활을 더 못한다고 생각하니 허전함에 잠이 안 왔다"고 말했다.
잠자리에 든 이강석의 머리엔 지난 26년간 스케이트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떠올랐다.
영광과 환호의 순간도 있었고, 힘들고 후회되는 순간도 있었다.
21살 때 출전한 토리노올림픽에서 500m 동메달을 목에 걸며, 알베르빌올림픽 김윤만 이후 14년 만의 한국 빙속 메달리스트가 된 것,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곧이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4초 25의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은 잊기 힘든 영광의 순간이다.
"세계신기록이라는 것은 운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라 더욱 좋았어요.
그때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인 일본 가토 조지가 갖고 있던 종전 기록을 깬 것이고, 당시 레이스에서 2위도 일본 선수였기 때문에 한일전에서 승리한 것 같아서 더 기분이 좋았죠." 일찌감치 정상을 누렸던 이강석에게 2010년 밴쿠버올림픽은 아픈 기억이다.
세계랭킹 1위로 국내외 언론들로부터 금메달 1순위로 꼽혔던 이강석은 0.03초 차로 4위에 머물렀다.
정빙 문제로 레이스가 지연되며 흐름을 깨지는 불운이 작용했다.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빨리 달린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지만 당시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4등을 하니까 너무 패배자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죄인처럼 먼저 몰래 입국했죠. 가기 전엔 온통 '이강석' '이강석' 했는데 쓸쓸히 돌아오니 피해의식도 생기고 서럽기도 했어요.
운동도 하기 싫고 올림픽 방송 볼 때마다 슬프고…. 귀국해서도 집 밖에 잘 안 나가고 우울해 하니 가족들도 말이 없어졌죠. 그땐 정말 바보 같았어요.
후회됩니다.
"
이후 절치부심 나선 소치올림픽에서도 정상 탈환에 실패한 이강석은 평창올림픽을 한 달 앞둔 동계체전을 은퇴 무대로 삼기로 했다.
비록 평창에서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날 이강석은 후배들의 축복 속에서 나쁘지 않은 기록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100m 구간 기록은 함께 뛴 의정부시청 제자 김성규보다도 빠른 상위권이었다.
"은퇴경기지만 나이 들어서 떠밀려 은퇴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2년 동안 플레잉 코치로 뛰다 보니 아무래도 몸이 좀 안 따라줬지만 마지막에 어금니를 꽉 깨물고 뛰었죠."
이날 경기 후 라커룸에서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여러 후배가 이강석을 찾아와 꽃다발과 포옹을 건넸다.
이날 경기장에 도착해서 '레전드 이강석'의 은퇴를 축복하는 플래카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울컥했다는 이강석은 "애착이 많았던 스피드스케이팅이 끝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허전했는데 되게 많은 사람의 격려 속에서 은퇴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생각보다 덜 우울했다"고 말했다.
비록 선수로서는 은퇴했지만 이강석은 의정부시청 코치로, 그리고 방송 해설위원으로 평창올림픽을 맞는다.
함께 남녀 단거리를 제패했던 이상화를 비롯해 함께 올림픽 무대를 밟은 모태범, 이승훈, 그리고 의정부시청 제자가 된 김민선 등의 활약을 지켜보게 된다.
세 차례 올림픽을 경험한 이강석은 중요한 일전을 앞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올림픽에선 저처럼 세계랭킹 1위로 출전했다가 메달을 못 따기도 하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선수들이 메달을 따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니 스타급 선수가 아닌 선수들도 '나는 들러리다.
참가에 의의를 둔다' 이런 생각을 버리고 좀 더 집중력 있게, 좋은 설렘을 갖고 했으면 좋겠어요.
누구에게나 이변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만든 한국유소년스포츠협회를 통해 소외계층 유소년들의 체육 활동도 돕고 있는 이강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는 자신의 500m 한국신기록을 제자가 깨주는 것이 앞으로의 바람이라고 했다.
빙판을 완전히 떠나는 게 아니다 보니 "내일부터 달라지는 건 더는 트리코 안 입는 것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이강석에게 옆에서 듣고 있던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감독이 "트리코도 다시 입을걸"이라며 웃었다.
제갈 감독은 "워낙 열정적이라 가르치다 답답하면 본인이 직접 트리코를 입고 보여줄 것 같다"며 "천부적 재능으로 한국 빙속에 한 획을 그은 선수였기 때문에 은퇴할 때 만감이 교차할 텐데 선수로서 위대한 일을 했고 지도자로서 앞으로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후배의 새 출발을 축복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