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 투자를 줄이거나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중국발(發) 소식은 미묘한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그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이르면 이달 중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 철강 및 알루미늄 등에 고율 관세를 포함한 강력한 수입규제 조치를 내놓을 전망이다. 미국 내 산업을 보호해 미국인 일자리를 지킨다는 전략에서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미국 국채 카드로 맞대응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기준 1조1892억달러(약 1272조4440억원)어치에 달하는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 규모는 국채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기’로 인식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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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채에 몰아친 중국발 충격

최근 미국 국채 시장에서는 ‘10년 강세장이 끝나간다’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정책과 1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정책으로 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올해도 최소 세 번 인상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의 수석 경제전문가 얀 하치우스는 “올해 미국 임금상승률이 3%에 달할 것”이라며 “Fed가 올해 총 네 번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채권 금리가 올라가면 반대로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

지난 9일에는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초장기 일본 국채 매입 규모를 200억엔 축소한다는 소식에 일본 국채 금리가 급등했고, 덩달아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연 2.50% 위로 뛰어올랐다. 가뜩이나 매수세가 취약한 터에 “중국이 미 국채 매입 속도를 늦추거나 매입을 중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10일 블룸버그통신 보도가 시장을 강타한 것이다.

그나마 이날 오후장 들어 미 재무부의 10년 만기 국채 입찰에 투자자가 몰려 응찰률이 2.69 대 1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급등세를 진정시켰다.

◆트럼프 정부에 대한 압박 카드

중국 관료가 미 국채 관련 발언을 한 것은 미국의 수입규제 조치에 대응한 선제적인 ‘맞불작전’으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 세계 최대 미 국채 보유국인 중국이 미 국채 투자를 줄이거나 중단하면 트럼프 정부는 국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국채는 감세로 인한 세수 감소분을 메우고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브레드 세서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정말 재정적 이유로 돈을 다른 자산에 투자하려 한다면 조용히 실행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자칫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줬다가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 오히려 보유한 미국 국채에서 손실이 날 수 있어서다.

데이비드 말파스 미국 재무부 차관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탄탄한 국채시장을 갖추고 있고, 미국 경제에 대한 투자자의 확신도 있다”며 중국의 국채 투자 축소나 중단 가능성을 일축했다. 중국이 3조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려면 미 국채 외에 별다른 투자 수단이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중국은 미 국채를 과도하게 처분할 경우 나중에 위안화 가치를 떠받칠 실탄이 부족해질 가능성도 있다. 2016년 초 금융시장 불안으로 자본 유출이 거세지자 미 국채를 대거 매각해 위안화를 방어했다.

◆미·중 통상 갈등에 촉각

그러나 미·중 통상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격화한다면 중국이 손실을 무릅쓰고라도 미 국채 시장을 흔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기업의 미국 회사 인수합병(M&A)을 여러 번 막은 미국은 최근 알리바바 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의 미국 금융회사 머니그램 인수도 중단시켰다. 화웨이의 스마트폰을 팔려던 AT&T는 미 정부로부터 압력을 받고 포기했다. 중국으로선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이 친(親)대만 법안을 잇따라 통과시키면서 미·중 갈등은 커지고 있다. 미 하원은 지난 9일 대만 공무원과의 교류를 허용하는 법안 등 대만 관련법 두 가지를 통과시켰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천명해온 중국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