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한국에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대화’를 시사하고, 미국을 겨냥해 ‘핵단추 준비’ 발언을 한 데 대해 미국은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신년사 발언이 전해진 뒤 “지켜보자. 지켜보자”라고만 말했다. 이후 트위터를 통해서도, 언론과의 접촉에서도 북한과 관련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백악관도 성명서를 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반(反)정부 시위대 활동을 지지한다거나 파키스탄의 테러리스트 지원 행위를 비난하는 등 트위팅을 중단하지 않은 것과 크게 대조된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이를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우선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 신년사에 일일이 대응하며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종의 ‘의도적 무시’ 전략이다.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1일(현지시간) 폭스뉴스에 출연해 “김정은의 핵단추 발언은 선전일 뿐”이라며 “핵무기는 완성되지 않았고 김정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핵무기를 완성하기 위한 시간”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생각도, 인정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선전전 성격의 신년사 내용에 대응해서 몸값만 높여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월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을 때도 이틀이 지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짧게 반응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에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즉각적인 대화를 제안하면서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식으로 한·미 동맹 균열을 노린, 고도의 ‘심리전’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으로선 한국 정부와 긴밀히 조율하면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반응을 미루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휴가를 마치고 백악관에 복귀한 만큼 당장 2일 오전(현지시간) 최대 외교 현안인 북핵 문제를 놓고 회의가 열릴 것으로 본다”며 “김정은 신년사뿐 아니라 향후 대중국 관계까지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