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느낌이 물씬 기타노이진칸
고베 여행의 시작지는 산노미야 역이다. 간사이공항의 리무진 버스도 산노미야 버스터미널에 서고 교토나 다른 지역을 갈 때도 대개 산노미야역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개화기 일본 풍경을 볼 수 있는 독특한 건축물들을 만날 수 있다. 고베 개항 이후 들어온 외국인들이 살던 건물이다. 골목을 따라 덴마크관을 비롯해 빈오스트리아의 집, 향기의 집, 외국인 구락부 등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기타노이진칸이 들어선 건물은 콜로니엄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콜로니엄 양식은 베란다가 있고 외곽은 페인트로 칠했으며 굴뚝이 있다. 빛바랜 영화에 나오는 서양식 건물의 전형 같은 느낌이다. 통합 입장권을 끊어야 싸게 건물들을 둘러볼 수 있다. 아홉 곳을 모두 돌아보는 데는 3500엔(약 3만5000원) 정도 한다.
기타노이진칸 중 가장 이색적인 건물은 바늘집이다. 외벽이 마치 바늘 모양의 슬레이트석으로 장식돼 붙은 이름이다. 미술관도 같이 운영하는데 집에는 고색창연한 골동품 가구가 전시돼 있다. 정원의 청동 멧돼지상 코는 반드시 만지고 가라고 한다. 행운을 준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말이다. 언덕에 있는 이진칸은 중국 영사관이 있던 곳으로 명나라에서 청나라 사이의 미술품과 가구가 배치돼 있다.
철인 28호와 화려한 모토마치 거리
고베의 또 다른 명물은 철인 28호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는 삼국지갤러리와 삼국지가든이다. 삼국지를 테마로 조성한 삼국지가든은 삼국지 마니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삼국지 이야기를 150개 장면 2000여 개 조각물로 표현한 거대한 디오로마가 이채롭다. 삼국 시절의 의상과 소품도 전시돼 있다. 맞은편 삼국지가든에서는 조자룡의 창이나 장비의 장팔사모 같은 무기를 직접 체험하고 옷도 입어 볼 수 있다. 고베의 또 하나의 명물은 루미나리에다. 일종의 빛의 축제인데 대개 12월에 열린다. 루미나리에는 고베대지진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도시의 재건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1초메와 2초메 사이에 있는 난킨마치는 일본에 있는 차이나타운 중 네 번째로 큰 곳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수입 중화요리 재료점뿐만 아니라 중국음식을 파는 노점이 모여 있다. 그중 로쇼키의 찐빵은 특히 맛있어서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항상 볼 수 있다. 이 집은 1915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부타만(돼지고기 찐빵)의 원조다. 모토마치는 고베의 명물이기도 한 가와라센베점과 일본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판 찻집인 자호호코도 등 유서 깊은 상점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덴마크 치즈케이크를 맛볼 수 있는 간논야나 1949년부터 영업한 모토마치 케이크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맛집이다.
4초메 쪽에는 고서와 골동품을 파는 상점이 많다. 모토마치 역의 고가 밑에 길게 이어진 상점에서는 수수하면서 서민적인 물건을 구경할 수 있고 게임, 애니메이션 제품도 볼 수 있다.
눈부신 야경 하버랜드와 포트타워
고베는 밤이 되면 더 아름다워진다. 순위를 좋아하는 일본인이 말하는 일본의 3대 야경 중 하나가 하버랜드다. 바다를 따라 아름다운 불빛이 점점이 수놓인 풍경은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다. 원래 하버랜드는 창고건물만 가득하던 다소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다. 이곳에 쇼핑몰 모자이크, 대관람차 등 화려한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풍경이 바뀌었다. 어둠이 내리면 바다에 그 모습이 비쳐 밤바다는 반짝이는 물결로 일렁인다. 바다를 마주하며 세워진 모자이크는 레스토랑, 의류점, 잡화점, 영화관 등 다양한 상점이 늘어서 있다.
학처럼 우아한 히메지성의 자태
고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히메지 성이다. 고베여행에서 히메지성을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17세기 이전 일본 건축물은 대개 목조건물이어서 화재로 소실된 것이 많지만 히메지 성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건축물이다. 17세기 목조 건축물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히메지 성은 특히 벚꽃이 피는 3월께 가면 절경을 볼 수 있다. 히메지 성이 화마에 휩쓸리지 않은 이유는 벽에 새하얀 불연성 석고를 발라 보강했기 때문이다. 성을 바라보면 우아하게 위로 젖혀진 처마가 마치 막 비상하는 흰두루미처럼 보인다 해서 시라사기 성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270년 동안 봉건 영지의 중심이었으며, 성 주변으로 도시가 발달했다. 막부시대 초기에 건설된 수준 높은 보호 방어 장치를 갖춘 83개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막부시대가 끝나고 1868년 메이지유신이 일어나면서 군사 기지로 사용됐다.
히메지 성은 영화와 드라마 배경지로도 각광받는 장소다. 히메지 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수십 편이나 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로는 일본 영화의 거장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 ‘란’과 미국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작품 ‘라스트 사무라이’를 꼽을 수 있다. ‘란’은 중세 봉건시대 일본을 지배하던, 의도적으로 미쳐 가는 왕과 세 아들의 증오와 용서를 담은 작품이다. 일본판 오셀로를 연상케 하는 이 작품은 히메지 성을 배경으로 제작한 대표적인 영화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배우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히메지 성 부근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서 영화 내용과 주요 촬영 장소를 상세히 알려 준다.
여행정보 마블링이 일품인 고베규
마블링이 소고기의 맛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고베규는 살살 녹는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맛있다. 맛이 좋은 만큼 가격도 비싸다. 철판구이집인 스테이크랜드 같은 곳은 점심에는 2980엔 정도에 런치세트를 내놓기도 하지만 보통 5000엔이 넘는다. 1963년 문을 연 토어로드 스테이크 아오야마 같은 곳은 특선코스의 경우 8900엔이 가장 싸다.
고베=글·사진 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