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전기자동차 급속 충전 과정에서 배터리 성능을 떨어뜨리는 원인을 찾아냈다. 급속 충전을 많이 해도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에너지융합연구단 장원영 책임연구원과 전북분원 탄소융합소재연구센터 김승민 선임연구원 공동 연구진은 전기 자동차용 리튬이온전지에 쓰이는 3원계 양극(+)소재 구조가 충전과 방전 속도에 따라 변형됐다가 불안정하게 회복되는 정도가 달라지면서 성능이 떨어지는 열화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28일 발표했다.

일본의 소니가 1990년대 초 처음 개발한 리튬이온전지는 휴대전화, 노트북의 소형 전원에서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 대용량 전원에까지 활용된다. 최근에는 전기차에 사용되면서 장거리 운행을 위해 리튬이온전지의 용량을 확대하고 충전시간을 줄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급속충전해도 전지 성능이 떨어지지 않고 장기간 쓸 수 있는 성능을 확보하는게 관건이다.

연구진은 소재 내부를 들여다보는 투과전자현미경으로 리튬이온전지가 급속 충·방전할 때 내부 구조가 어떻게 변형되는지 살펴봤다. 전지 내부 소재가 변형이 되면 용량이 떨어지는 등 성능이 나빠지는 ‘열화’ 현상이 일어난다. 전기차용 양극(+)소재로는 니켈과 망간, 코발트 등 3가지 물질로 구성된 3원계 양극물질(NCM)이 사용된다.

리튬이온전지는 충전 과정에서 리튬 이온이 내부의 전해질을 통해서 양극에서 음극으로 이동하게 된다. 리튬이온전지의 충전 속도를 급속으로 하게 되면, 리튬이온이 전극 및 전해질을 거쳐 전달되는 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못해 전지 용량과 수명이 급격히 짧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천천히 충전할 때보다 훨씬 적은 용량만 충전할 수 있고, 급속 충전을 반복할 경우 수명이 크게 줄어든다. 이런 현상은 전기차의 시장 확대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전까지 연구는 주로 전지의 성능을 올리기 위해 용량과 직결된 전극 소재의 구조 분석에만 집중됐다. 연구진은 충·방전 과정에서 리튬이온이 전해질을 이동하는 속도에 따라 소재 표면과 구조에 나타나는 변형 범위가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전해액과 맞닿아 있는 전극 표면에서 전지의 열화나 열 폭주 현상이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전자현미경으로 전극 표면을 수나노미터까지 살펴봤다.

분석 결과 충전 속도에 따라 전극 표면에서의 전극 내부 구조 변형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나고, 회복하는 정도도 방전 속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전극 물질 구조가 불완전하게 회복되면서 남은 내부 변형이 전지 용량의 감소와 수명 단축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장원영 책임연구원은 “차량용 중대형 이차전지는 전지의 안전성이 가장 강조된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충·방전 속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전극 소재 개발에 활용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KIST 기관고유사업과 한국연구재단 기후변화대응기술개발사업을 통해 수행됐다. 연구결과는 지난 8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물리화학 레터스’에 소개됐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