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리 OO번지 산꼭대기.’ 충북 음성군에 있는 ‘자연목장’을 찾아가기 위해 위치를 물어보자 이연재 대표가 적어준 주소다. 복숭아의 고장 감곡면 산골. 끝없이 이어지는 복숭아 과수원을 지나 야산으로 접어들었다.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이곳에서 흑돼지를 키우는 장훈(38)·이연재(37) 부부의 반가운 미소가 보였다.

자연목장은 흑돼지 50마리를 키우는 작은 농장이다. 일반 양돈농가가 대부분 1000~5000마리를 키우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작다. 그런데도 축산계에서 자연목장을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남다른 사육 방식과 환경 때문이다. 장 대표는 “50마리의 돼지들은 661㎡(200평) 규모의 축사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자란다”고 설명했다. 마리당 4평(최근 32평형 아파트의 안방 크기)의 공간이 있는 셈인데, 4평이면 작은 원룸 크기다.

먹이도 일반 사료가 아니다. 직접 재배한 채소와 과일, 산에서 뜯어온 풀을 주로 주고 일반 사료는 발효해 일부만 준다. 30대 부부가 이런 농장을 꾸리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이 대표는 “서울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할 때쯤 본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인생을 바꿔놨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사진가였다. 서울에서 사진 스튜디오 일을 했다. 좋아하는 전공을 택했고 전공을 살려 취업한 운 좋은 케이스였지만 행복한 삶에 대한 갈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 대표는 이른바 ‘공장식 축산’에 관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봤다. “충격이었어요. 좁은 공간에 갇힌 상태로 키워지는 가축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더라고요.”

이 대표는 채식주의자가 될까 생각했다. 하지만 채소를 공부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 대표는 채식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된 사육을 해보자’는 갈림길에서 후자를 택했다. 장 대표도 흔쾌히 동의했다.

두 사람은 귀농을 결심한 뒤 3년간 준비했다. 이 대표는 경기 파주, 강원 평창 등 자연 양돈을 하는 농가를 찾아가 노하우를 배우고, 흑돼지와 관련한 품종 강의도 들었다. 국립축산과학원에서 복원한 토종 흑돼지를 키우기로 결심한 것도 이 시기다. 이 대표가 귀농 교육에 집중하는 동안 장 대표는 함께 다니던 스튜디오에 계속 다니며 경제적인 뒷받침을 했다. 주중엔 직장에서 일하고 주말을 활용해 시골의 땅을 일궜다. 2013년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두 사람은 충북 음성에 신혼집을 꾸렸다. 이 대표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축사 한 동을 받아 본격적인 양돈업을 시작했다.

자연목장에서는 돼지와 함께 80여 그루의 복숭아나무가 자란다. 부부가 먹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열매는 돼지들이 먹는다. 산에서 자라는 청치, 쌀겨, 유황, 쑥, 망초, 아카시아, 호박, 마 등 20여 가지 채소류도 돼지들의 몫이다. 장 대표는 재미있는 일도 생긴다고 말했다. “돼지들도 각자 좋아하는 게 있더라고요. 복숭아, 호박 등 단맛이 나는 걸 대부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자연에서 유래한 것을 먹이로 주기 때문에 냄새가 안 나는 것도 자연목장의 특징이다. 장 대표는 “축사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돼지들이 일반 사료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돼지는 한 달에 한 번씩 ‘도르리’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한다. 도르리란 ‘여러 사람이 음식을 차례로 돌려가며 함께 먹는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자연목장은 매월 마지막주 6마리의 돼지를 도축한다. 부위별로 팔지 않고 구이용, 찌개용, 볶음용으로 나눠 600g씩 총 세 근을 5만원에 판다. 모든 부위를 판매하기 위한 방식이다. 이 중 네 마리 분량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예약을 받아 판매하고 남은 것은 양평 문호리에서 열리는 ‘리버마켓’에서 판다. 한 마리를 도축하면 14세트쯤 나온다고 하니 월매출은 420만원인 셈이다.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에서, 풀과 채소류를 먹여 키우는 자연목장은 ‘동물복지 농장’이 아니다. 소독장 등 시설을 갖추고 풀 사료 등을 규격화해야 하는데 그 조건을 맞출 생각이 없단다. 이 대표는 “20여 가지 풀과 채소류를 주는 대신 정해진 몇 가지 풀 종류만 주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음성=FARM 강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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