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추 가고 밭 갈아엎을판"… 배춧값 널뛰기에 농민 시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해·올여름 가격상승에 재배면적 증가…공급 넘쳐 가격 '뚝'
해마다 가격 급등락에 소비자·농민 한쪽은 울상
"고랭지 배춧값이 들썩여서 가을배추도 기대했더니 웬걸, 작년 절반도 못 받겠어."
전남 해남군 화원면 들녘에서 몇 달간 공들여 키운 배추를 바라보는 농민 김모(64)씨의 한숨이 깊다.
해남은 가을배추 생산량의 13%, 겨울 배추 80%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배추 산지 중 하나다. 해남에서는 농민과 상인간 계약재배가 자리를 잡았다.
상인이 종자·비료비 등을 제공하고, 농민이 배추를 키워 경작비를 받는 방식이다.
지난해 평당 1만∼1만2천원을 호가했던 경작비는 올해 6천원 선에 머물고 있다.
배춧값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작년에 습해로 배추가 못쓰게 됐을 때도 가격이 좋았고, 올해도 고랭지 배추 가격이 높기에 더 많이 키웠다"며 "풍년이 들었는데도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줄어들게 생겼다"고 말했다.
배춧값 폭락으로 포전거래(밭떼기)도 활발하지 않은 가운데 사전 계약 후 계약금을 포기하고 연락이 끊긴 상인들도 생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해남군 농업기술센터 문동길 농촌지도사는 "지난해 배추 가격이 워낙 높다 보니 농민들이 올해도 비싼 값을 예상해 자연스럽게 그쪽(배추 재배)으로 갔지만, 재배면적 증가로 수급이 맞지 않는다"며 "배추는 기상 영향을 많이 받는 데다가 가을 태풍 등 변수를 예측하기도 어려워 재배량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처럼 지난해부터 올여름까지 높은 가격이 형성되면서 전국적으로 재배면적이 늘어난 데다가 생육도 좋아 공급은 넘쳐난다.
습해, 뿌리혹병 등으로 배추 생산량이 줄어 절도 방지를 위해 배추밭에 주인 이름을 단 깃발까지 등장했던 지난해와는 딴판이다. 통계청이 밝힌 올해 가을배추 재배면적은 1만3천674㏊로 전년(1만1천429㏊)보다 2천245ha(19.6%) 증가했다.
가을무 재배면적도 6천3㏊로 전년(5천414ha)보다 589ha(10.9%) 늘었다.
정순용(57) 강원 평창군 방림면 계촌2리 이장은 "과잉생산이 원인"이라며 "행정기관이 재배의향 조사를 하지만, 일부 농가를 대상으로 한 결과는 믿을 수 없다.
현장에 직접 나오지 않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마련하는 대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이장은 35년째 배추농사를 지으면서 대기업과 전량 계약재배를 하기 전까지는 3년에 한 번꼴로 가격 폭락에 배추를 폐기했다고 한다.
이정만(52) 태백 매봉산 영농회장은 "가격이 폭등하면 수급 안정 대책을 내놓지만, 가격 폭락 사태가 발생하면 나 몰라라 한다"라며 "정부가 완전히 책임을 질 수 없다면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땀 흘려 키운 배추밭을 갈아엎는 풍경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충남 홍성군 은하면 농민 최진석(64)씨는 "우리는 그나마 생산안정제를 통해 계약재배를 해 사정이 낫다"면서도 "올해 정부와 산지 처리하기로 협의해 충남에서는 4천900t 물량을 산지 처리하기로 협의했고, 나는 배추밭 2천여 평 정도를 갈아엎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간상인들과 밭떼기 거래한 농가는 포기당 산지에서 250원에서 300원 정도밖에 받지 못하니 더 큰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갈아엎을 수밖에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정부는 공급 과잉에 대비해 배추 2만t, 무 1만t 규모를 생육단계에서 폐기할 방침이다.
평년 대비 초과 물량 전량을 단계적으로 시장에서 격리해 수급을 안정시킨다는 것이다.
상설시장·홈쇼핑 등 직거래를 확대하고 김장 캠페인도 전개할 예정이다.
강원도는 도시 소비자와 함께하는 김치 담그기 체험행사, 춘천 도매시장 사랑의 김장김치 나눔행사, 강원도와 함께하는 김장축제 등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소비 촉진 효과는 미지수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달 19∼23일 소비자패널 718명을 대상으로 김장 수요량 등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5.3%만 김장김치를 직접 담그겠다고 답했다.
대형 소비처를 중심으로 값싼 수입산의 공세도 만만치 않아 국산 배추 소비 감소 추세를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 사이 배춧값은 해마다 널뛰기를 하고 있다.
지난 13일 가을배추 1㎏당 평균 도매가격은 상(上)품을 기준으로 620원이었다.
연간 평균 배춧값은 2012년 913원, 2013년 567원, 2014년 409원, 2015년 436원, 지난해 827원, 올해 현재 575원 등 해마다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때마다 농민과 소비자의 희비는 엇갈린다.
대관령원예농협 관계자는 "수급 예상이 어려워 현지 지도 등을 통해 재배량을 조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며 "특히 오랜 기간 배추농사만 해온 농가에 뾰족한 대체작목을 제시하지 않고 배추를 심지 말라는 것은 농사를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근본 대책을 촉구했다.
충남농협 관계자는 "농가에서 배춧값 인상을 기대하고 중간상인들과의 밭떼기 거래로 재배면적을 늘렸다가 정작 가격이 폭락하면 계약을 깨 출하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장기적으로 배춧값이 떨어져도 일정 이상의 가격을 보장해 주는 생산안정 사업을 확대해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는 것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중 배연호 박주영 손상원 기자)
/연합뉴스
해마다 가격 급등락에 소비자·농민 한쪽은 울상
"고랭지 배춧값이 들썩여서 가을배추도 기대했더니 웬걸, 작년 절반도 못 받겠어."
전남 해남군 화원면 들녘에서 몇 달간 공들여 키운 배추를 바라보는 농민 김모(64)씨의 한숨이 깊다.
해남은 가을배추 생산량의 13%, 겨울 배추 80%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배추 산지 중 하나다. 해남에서는 농민과 상인간 계약재배가 자리를 잡았다.
상인이 종자·비료비 등을 제공하고, 농민이 배추를 키워 경작비를 받는 방식이다.
지난해 평당 1만∼1만2천원을 호가했던 경작비는 올해 6천원 선에 머물고 있다.
배춧값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작년에 습해로 배추가 못쓰게 됐을 때도 가격이 좋았고, 올해도 고랭지 배추 가격이 높기에 더 많이 키웠다"며 "풍년이 들었는데도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줄어들게 생겼다"고 말했다.
배춧값 폭락으로 포전거래(밭떼기)도 활발하지 않은 가운데 사전 계약 후 계약금을 포기하고 연락이 끊긴 상인들도 생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해남군 농업기술센터 문동길 농촌지도사는 "지난해 배추 가격이 워낙 높다 보니 농민들이 올해도 비싼 값을 예상해 자연스럽게 그쪽(배추 재배)으로 갔지만, 재배면적 증가로 수급이 맞지 않는다"며 "배추는 기상 영향을 많이 받는 데다가 가을 태풍 등 변수를 예측하기도 어려워 재배량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처럼 지난해부터 올여름까지 높은 가격이 형성되면서 전국적으로 재배면적이 늘어난 데다가 생육도 좋아 공급은 넘쳐난다.
습해, 뿌리혹병 등으로 배추 생산량이 줄어 절도 방지를 위해 배추밭에 주인 이름을 단 깃발까지 등장했던 지난해와는 딴판이다. 통계청이 밝힌 올해 가을배추 재배면적은 1만3천674㏊로 전년(1만1천429㏊)보다 2천245ha(19.6%) 증가했다.
가을무 재배면적도 6천3㏊로 전년(5천414ha)보다 589ha(10.9%) 늘었다.
정순용(57) 강원 평창군 방림면 계촌2리 이장은 "과잉생산이 원인"이라며 "행정기관이 재배의향 조사를 하지만, 일부 농가를 대상으로 한 결과는 믿을 수 없다.
현장에 직접 나오지 않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마련하는 대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이장은 35년째 배추농사를 지으면서 대기업과 전량 계약재배를 하기 전까지는 3년에 한 번꼴로 가격 폭락에 배추를 폐기했다고 한다.
이정만(52) 태백 매봉산 영농회장은 "가격이 폭등하면 수급 안정 대책을 내놓지만, 가격 폭락 사태가 발생하면 나 몰라라 한다"라며 "정부가 완전히 책임을 질 수 없다면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땀 흘려 키운 배추밭을 갈아엎는 풍경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충남 홍성군 은하면 농민 최진석(64)씨는 "우리는 그나마 생산안정제를 통해 계약재배를 해 사정이 낫다"면서도 "올해 정부와 산지 처리하기로 협의해 충남에서는 4천900t 물량을 산지 처리하기로 협의했고, 나는 배추밭 2천여 평 정도를 갈아엎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간상인들과 밭떼기 거래한 농가는 포기당 산지에서 250원에서 300원 정도밖에 받지 못하니 더 큰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갈아엎을 수밖에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정부는 공급 과잉에 대비해 배추 2만t, 무 1만t 규모를 생육단계에서 폐기할 방침이다.
평년 대비 초과 물량 전량을 단계적으로 시장에서 격리해 수급을 안정시킨다는 것이다.
상설시장·홈쇼핑 등 직거래를 확대하고 김장 캠페인도 전개할 예정이다.
강원도는 도시 소비자와 함께하는 김치 담그기 체험행사, 춘천 도매시장 사랑의 김장김치 나눔행사, 강원도와 함께하는 김장축제 등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소비 촉진 효과는 미지수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달 19∼23일 소비자패널 718명을 대상으로 김장 수요량 등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5.3%만 김장김치를 직접 담그겠다고 답했다.
대형 소비처를 중심으로 값싼 수입산의 공세도 만만치 않아 국산 배추 소비 감소 추세를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 사이 배춧값은 해마다 널뛰기를 하고 있다.
지난 13일 가을배추 1㎏당 평균 도매가격은 상(上)품을 기준으로 620원이었다.
연간 평균 배춧값은 2012년 913원, 2013년 567원, 2014년 409원, 2015년 436원, 지난해 827원, 올해 현재 575원 등 해마다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때마다 농민과 소비자의 희비는 엇갈린다.
대관령원예농협 관계자는 "수급 예상이 어려워 현지 지도 등을 통해 재배량을 조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며 "특히 오랜 기간 배추농사만 해온 농가에 뾰족한 대체작목을 제시하지 않고 배추를 심지 말라는 것은 농사를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근본 대책을 촉구했다.
충남농협 관계자는 "농가에서 배춧값 인상을 기대하고 중간상인들과의 밭떼기 거래로 재배면적을 늘렸다가 정작 가격이 폭락하면 계약을 깨 출하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장기적으로 배춧값이 떨어져도 일정 이상의 가격을 보장해 주는 생산안정 사업을 확대해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는 것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중 배연호 박주영 손상원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