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천국보다 아름다운 지옥…어서와! 데스밸리는 처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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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라 여행작가의 좌충우돌 미국 여행기
(9) 미국 데스밸리 국립공원
초현실적 풍광에 깨달았네…자연은 최고의 예술가임을
외계 행성 불시착? 사막·소금분지…극한의 환경이 만든 극적인 비경
(9) 미국 데스밸리 국립공원
초현실적 풍광에 깨달았네…자연은 최고의 예술가임을
외계 행성 불시착? 사막·소금분지…극한의 환경이 만든 극적인 비경
데스밸리=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죽음이라는 이름의 계곡
동이 트기 전 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리지크레스트(ridgecrest)를 떠난다. 178번 도로의 창밖은 그저 척박하고 황량한 풍경의 연속이다. 한 시간 반쯤을 달려 파나민트 산맥에 들어서자 반듯했던 도로가 곡예하듯 넘실대기 시작한다. 능선을 하나둘 넘을 때마다 눈앞에는 기괴한 풍경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끝없이 펼쳐진 메마른 대지 위에 황토빛 산맥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산꼭대기 밑에는 사하라 사막을 한 조각 떼어다 놓은 듯한 모래언덕이 신기루처럼 아른거린다. 지구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생경한 풍경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외딴 행성에 불시착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데스밸리는 아마르고사(Amargosa) 산맥과 파나민트(Panamint) 산맥 사이에 형성된 거대한 분지이자 협곡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길이는 무려 220㎞, 폭은 최대 25㎞에 달한다. 전체 면적은 약 1만3000㎢, 그랜드 캐니언의 2.5배 규모다.
데스밸리 국립공원은 미국 본토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이다. 공원 내에 있는 마을이자 관광거점인 스토브파이프 웰스(Stovepipe Wells)와 퍼니스 크릭(Furnace Creek) 지역의 주요 포인트만 돌아봐도 하루가 빠듯하다. 여름은 너무 뜨거워 여행이 거의 불가능하고, 겨울은 온도는 괜찮으나 해가 짧다. 제대로 둘러보고 싶다면 충분한 여유를 갖고 움직여야 한다. 가장 먼저 메스키트 플랫 샌드 듄즈(Mesquite Flat Sand Dunes)로 향한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사막의 모습, 즉 사구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접근성이 뛰어나고 아름다워 공원 내에 형성된 5개의 사구 중 가장 인기가 좋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구에 진입한다. 정해진 트레일은 없다. 바람이 미처 앗아가지 못한 발자국을 따라 걷거나, 스스로 길을 만들며 모래 언덕을 탐방해야 한다. 첫인상은 해변의 모래사장처럼 다소 난잡하다. 자갈이 섞인 모래더미 위로 고사한 메스키트 나뭇가지와 덤불, 수많은 발자국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한참을 걸어도 상상했던 사막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의구심을 품은 채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능선을 몇 번이고 넘는다. 외투는 벗어 던진 지 오래다. 한여름에 왔더라면 언덕 중 하나가 내 무덤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불평도 잠시, 걸으면 걸을수록 깊어지는 사막의 풍경에 감탄이 흘러나온다. 한참을 걸어 가장 높은 모래언덕에 닿았다. 주변은 온통 하얗고 고운 모래의 물결만이 가득하다. 저 멀리 맞은편에는 빗물에 침식돼 형성된 화강암 계곡, 모자이크 캐니언(Mosaic Canyon)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메스키트 사구 역시 여느 사막의 모래언덕과 마찬가지로 바람이 만든 작품이다. 서쪽에서부터 바람에 실려온 모래가 분지에 고립돼 차곡차곡 쌓였다. 그 위로 또 다른 바람이 이리저리 불며 언덕을 조각했다. 모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메스키트 샌드 듄즈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일출이나 일몰 무렵이다. 사막은 황금빛으로 옷을 갈아입고, 빛과 그림자가 교차할 때마다 능선들은 부드럽게 춤을 춘다. 데스밸리는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도 하다. 사막 한가운데 누워 밤하늘을 수놓은 별을 헤아려 보는 것도 낭만적이다.
북미에서 가장 낮은 땅
어제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으며 북미 최고봉인 휘트니 산(Mount Whitney)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반대로 가장 낮은 곳을 찾아 떠난다. 데스밸리의 배드워터 분지(Badwater Basin)는 해수면보다 무려 85.5m 아래에 있다. 서반구에서는 가장 낮고, 지구상에서는 8번째로 낮은 땅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억 년 전 이곳은 본래 바다였다. 그 후 큰 지각변동이 여러 차례 일어나면서 땅이 솟아나 계곡을 형성했고 그 사이에 물이 고이면서 호수가 생겼다. 그러나 계곡 바닥의 지속적인 침강과 기후 변화까지 겹치면서 물은 증발하고 소금 단층만 남았다. 입구 맞은편 까마득한 높이의 절벽 한가운데 ‘해수면’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달려 있다. 원래대로라면 저곳까지 바닷물이 차 있어야 하는 셈이다. 물 빠진 바다 밑바닥을 거닐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오묘하다.
우주의 풍경을 마주하다
퍼니스 크릭 로드(Furnace Creek Rd)를 따라 데스밸리 남쪽으로 향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해발 약 1700m 정상에 위치한 단테스 뷰(Dante’s View)에 오른다. 산길을 따라 절벽 쪽으로 걸어가니 그야말로 충격적인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계곡 최저점인 배드워터 일대부터 최고점인 텔레스코프 봉우리(Telescope Peak)까지, 거칠고 광활한 데스밸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얗게 굳어 버린 사막과 혈관처럼 뻗은 소금 물줄기는 마치 큰불이 난 직후의 대지를 연상케 한다. 오만가지 색을 뒤집어쓴 바위산들은 속이 울렁일 만큼 경이롭다. 정말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지옥 말이다.
붉게 물든 바위산이 커다란 파도가 돼 출렁인다. 우주의 풍경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비로소 깨닫는다.
여행정보
데스밸리 국립공원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다. 입장료는 자동차 한 대당 25달러이며 1주일간 유효하다. 미국 내 다른 국립공원을 함께 방문할 계획이라면 연간 패스(80달러)를 구매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공원은 1년 내내 개방하지만 여행 적기는 겨울이다. 여름철에 방문할 계획이라면 날씨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준비가 필요하다. 호텔, 식당, 주유소, 비지터 센터와 같은 편의시설은 퍼니스 크릭 혹은 스토프파이프 웰스 마을에서 찾을 수 있다.
데스밸리는 교통사고가 자주 나는 지역 중 하나다. 제한 속도를 준수하고 운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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