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와 엔화 가치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지난달 초 114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7일 1110원대로 내려가면서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원·엔 환율도 이날 100엔당 975원44전(오후 3시30분 기준)으로 마감해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달러 재테크’에 나섰던 투자자들은 비상이 걸렸다. 약(弱)달러는 국내 증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식음료·유틸리티·항공주에는 호재, 자동차 등 수출기업주에는 악재로 작용한다.
음식료·항공주 '맑음'…자동차·해운주 '흐림'
◆손실 커지는 달러 ETF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원10전 내린 1111원90전에 마감했다. 지난 7월27일 기록한 연중 최저점(종가 기준 1112원80전)을 밑돌았다. 지난 9월28일의 1148원과 비교하면 36원10전이나 떨어졌다.

달러 가치가 급락하면서 지난해부터 인기를 끌었던 달러 관련 재테크 상품들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달러 재테크 상품인 상장지수펀드(ETF) 손실이 커지고 있다. 미국 달러선물 가격 변동폭의 두 배를 추종하는 ETF인 ‘KODEX 미국달러선물레버리지’는 올 하반기 들어 5.51% 떨어졌다. 올해 수익률은 -15.18%다. TIGER 미국달러선물레버리지도 올 들어 15.03%의 손실을 냈다.

달러 현물에 투자한 자산가들도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개인의 달러 예금 잔액은 지난 7월 말 105억2000만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달러 강세를 예상하고 달러 환매조건부채권(RP), 달러 주가연계증권(ELS), 달러투자펀드 등 다양한 상품을 내놨던 일부 증권사들은 고민이 깊어졌다.

전문가들은 원화 강세와 달러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 수출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있고 북핵 리스크(위험)가 수그러들었기 때문이다. 차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알려진 제롬 파월 이사가 낙점된 것도 향후 원화 강세에 힘을 실어줄 요인으로 꼽힌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내년 원·달러 환율은 평균 1100원대에 머무를 것”이라며 “달러 약세 흐름이 지속되겠지만 속도는 둔화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음식료·항공·철강주엔 호재

통상 달러 약세(원화 강세)는 수출 기업에 악재로 작용한다. 원화 가치가 높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국산 제품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약달러는 자동차 가전 해운 등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업종에 더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최근 들어 달러화와 함께 일본 엔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어 국내 기업들에 이중고가 되고 있다. 자동차를 비롯한 주요 수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제품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어서다. 원·엔 환율은 이날 975원44전까지 떨어져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현대자동차는 3500원(2.21%) 내린 15만5000원에 마감했다. 현대모비스(-2.39%) 기아차(-0.43%) 등 자동차업종 대부분이 약세였다.

달러화 가치 하락이 반가운 기업들도 있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거나 외화부채가 많은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밀 콩 설탕을 수입하는 CJ제일제당과 대상 동원F&B 삼양사 등 음식료 업체들은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원자재 수입 부담을 덜 수 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은 철광석과 석탄을 싸게 구입하고 한국전력 등 유틸리티주는 발전 단가를 낮출 수 있다. 항공업체들은 달러로 결제해야 하는 항공기 임대료와 외화부채가 줄어든다. 달러 약세로 비용 부담이 줄어 해외여행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호재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과거에 비해 환율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많이 줄었지만 자동차와 해운 등 일부 업종 실적에는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