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가격 불성실한 AS 도마에
한국은 애플이 발표한 아이폰8, 아이폰X 1차 출시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애플 측은 출시국 선정에 특정한 기준이 없으며 출시 준비가 완료된 순서대로 정하다보니 나눠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한국은 주로 3~4차 출시국으로 분류됐다. 아시아 국가라는 변명은 안 통한다. 중국이나 일본은 매번 1차 출시국이니 말이다.
애플의 한국 시장 홀대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소비 환경을 일일이 따져보면 거의 모든 면에서 판매자의 횡포에 가깝다. '사려면 사고 안 사려면 말라'는 식이다. 적어도 국내에서 매년 1조원이 넘는 막대한 돈을 벌어가는 외국 기업인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안가는 처사임은 분명하다.
심지어 가격도 문제다. 가격은 가장 중요한 구매 결정 요소다. 아이폰은 한국에 늦게 출시됐지만 유독 판매가격은 높았다.
실제 64GB 아이폰X의 경우 미국에서는 999달러(111만원)인데 비해, 시판일자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미국보다 20만원 이상 비싼 142만원으로 책정된 상태다.
애플은 가격뿐 아니라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 환경 개선에도 나몰라라다. 애플의 불성실한 AS(사후서비스)는 늘 도마에 올랐다. 고장난 아이폰의 높은 견적과 긴 수리기간은 소비자가 받아들여야할 덕목이 돼버린지 오래다. 애플은 아이폰6s 전원 꺼짐 현상때도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아이폰의 상징인 '애플스토어'도 없다. 애플은 총 19개국에 492개의 애플스토어를 설치했다. 중국은 2008년, 홍콩은 2011년에 애플스토어를 열었고, 일본의 경우 이보다 훨씬 앞선 2003년에 애플스토어가 들어섰다. 한국에는 다음달 애플스토어가 처음으로 생긴다. 아이폰을 들여온지 8년만이다. 이점만 봐도 애플이 한국 소비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읽힌다.
더욱 놀라운 점은 한국 시장이 애플의 사업보고서에 조차 없다는 것이다. 애플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2016회계연도 사업보고서를 보면 애플은 세계 시장을 북미와 남미, 유럽, 중화권, 일본, 나머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나눈다. 이 중 중화권은 중국과 홍콩, 대만까지 포함한다. 아태 지역의 핵심은 호주이고 한국은 사업보고서에 언급조차 없다.
애플의 이런 태도는 국내 소비자 뿐만 아니라 기업들에게까지 깊숙하게 박혀있다. 국내 이동통신업체들은 아이폰 관련 TV 광고와 마케팅 비용을 일체 부담하고 있다. 애플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제조사들과 달리 보조금도 지원하지 않고 있다. 2009년 11월, KT가 애플의 정책을 받아들이면서 아이폰3GS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이후 애플은 늘 이통사 위에 군림했다. 비밀 계약이라 애플에 대한 이통사들의 애환은 더 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애플이 한국을 가벼이 여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애플은 시장 규모와 전략에 있어서 비교적 쉬운 국가에 접근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즉,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를 철저히 나눈다는 말이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시장이 현저히 작다. 그런데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자국 경쟁사들이 있어 점유율을 늘리는데 이것저것 신경쓸 일이 많다.
시장 자체가 작으면 아이폰 점유율이라도 높아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실제로 올 상반기 삼성전자(56%)와 LG전자(23%)의 국내 점유율은 애플(18%)을 크게 앞섰다. 이렇다할 애플의 경쟁사가 없는 일본에서 아이폰 점유율이 51%를 차지하는 것만 봐도 차별은 예정된 수순이다.
그럼에도 최근 3년간 애플이 국내에서 판매한 아이폰은 1000만대가 넘는다. 애플에게 한국은 '의외의 수익'을 주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매력적인 시장이 됐다. 이런 배경에는 애플 충성고객들이 있다. 애플의 한국 차별 논란에도 애플 충성고객들의 팬심은 식을 줄 모른다.
아이폰X 대기 수요로 아이폰8에 대한 열기는 잠시 주춤했지만, 아이폰X이 국내에 출시되는 연말에는 또 한번 아이폰 광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챙기지 않아도 팔리는 한국 시장을 애플이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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