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초대형 투자은행(IB)’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대형 증권사 5곳을 초대형 IB로 지정하는 안건이 오는 8일 금융당국에서 확정된다. 초대형 IB의 핵심 업무인 어음 발행은 5개 증권사 중 한국투자증권이 먼저 시작하게 됐다.
'초대형 IB' 내주 출범… 기업대출 시장서 은행과 격돌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전날 정례회의를 열어 ‘초대형 IB 지정 및 단기금융업 인가’ 안건을 심의했다.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초대형 IB 후보 5개 증권사가 지난 7월 초 신청서를 일괄 제출한 지 석 달여 만이다. 금융위가 8일 정례회의를 열고 각 안건을 최종 의결하면 증권사들은 9일부터 초대형 IB 업무를 취급할 수 있다.

8일 5개 증권사가 모두 초대형 IB 자격을 얻게 되더라도 한국투자증권을 제외한 4곳에는 당분간 ‘반쪽’ 꼬리표가 따라붙을 전망이다. 초대형 IB의 핵심 업무인 단기금융업 인가 심의 대상에는 한국투자증권만 포함됐기 때문이다. 4개 증권사는 이 인가를 받기 전까지 외국환 업무 등 어음 발행을 제외한 나머지 업무를 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정은 요건을 갖추면 되지만 인가는 대주주 적격성, 준법성 등 고려할 사항이 많다”며 “증권사별 심사가 끝나는 대로 순차적으로 인가 안건이 상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4개 증권사가 이번에 단기금융업 인가 심의에 포함되지 않은 건 각기 다른 이유에서다. 미래에셋대우는 옵션상품 불완전판매가 문제가 됐다. 관련 제재 수위가 결정된 뒤 인가 대상에 포함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NH투자증권은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검찰 수사가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삼성증권은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인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KB증권은 옛 현대증권의 불법 자전거래로 인한 제재 이력이 문제가 없는지 금융감독원이 계속 심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초대형 IB 사업은 정부가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육성하기 위해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에 다양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기로 한 사업이다. 초대형 IB로 지정되고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으면 자기자본의 200% 한도에서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조달한 돈으로 기업대출 등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다.

자기자본이 4조4020억원(상반기 말 기준)인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안에 어음 발행을 통해 우선 1조원가량 투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이어 투자금 규모를 내년 2조~3조원, 2019년 8조원 등 단계적으로 늘려나갈 예정이다. 발행어음을 통한 기대수익률은 약 1.6%포인트로 기대하고 있지만 고객 확보와 상품 판매 효과 등 간접 효과까지 감안하면 회사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클 것으로 회사 측은 보고 있다.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경영기획총괄 부사장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은 고객의 자산이기 때문에 고위험 투자 비중을 급격하게 늘리기보다 수익성이 좋으면서 손실 가능성이 낮은 투자처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금융, 인수금융, 회사채, 기업여신 등에 골고루 투자금을 배분해 수익원을 다각화해 나갈 것”이라며 “올해가 얼마 안 남은 만큼 조달 계획은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 발행어음

증권사나 종합금융회사가 영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회사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일반 투자자에게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의 단기 금융상품.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 투자은행(IB)은 자기자본의 두 배까지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