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계열사 지분 매각은 고민거리
현행 금산분리 원칙 따라
흥국생명 등 주식 매각해야
이호진 전 회장이 직접 사들일 수도
태광그룹이 지배구조 정비작업에 나섰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부자(父子)가 경영권을 보유한 티시스와 서한물산 등을 합병하기로 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면서 지배구조를 간소화하기 위해 그룹 지주회사를 세우려는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지주사를 세울 경우 흥국생명과 흥국화재, 흥국증권 등 금융계열사 지분을 팔아야 하는 고민도 크다.
◆티시스, 지주사 되나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정보기술(IT)업체 티시스는 오는 12월1일 자회사인 동림건설·에스티임과 서한물산을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티시스는 이 전 회장(지분율 51.02%)과 아들 이현준 씨(44.62%)가 대주주인 회사다. 서한물산은 이 전 회장이 지분 59.77%를 쥐고 있다. 흡수합병이 마무리되면 이 전 회장(예상 지분율 50.34%)과 이씨(43.31%)는 티시스 지분 93.65%를 확보하게 된다. 그룹 지배구조 상단에 있는 티시스는 합병으로 그룹 지배력을 높일 전망이다. 티시스는 그룹 핵심 계열사인 태광산업 지분 11.22%, 대한화섬 지분 8.83%를 보유하고 있다. 티시스가 흡수하는 서한물산은 대한화섬 지분 14.04%를 갖고 있다. ‘이 전 회장 부자→티시스→태광산업·대한화섬 등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더욱 탄탄해지는 것이다.
합병 작업이 마무리되면 내부거래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강원 춘천에 있는 골프장 휘슬링락컨트리클럽을 거느린 티시스는 계열사에 IT 서비스를 제공하며 안정적인 실적을 내고 있다. 지난해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로 매출 2381억원을 올렸다. 전체 매출의 69.3%에 달하는 규모다. 서한물산도 지난해 매출의 85.3%가량인 76억원을 계열사로부터 거둬들였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1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태광그룹의 일감몰아주기를 점검하겠다”고 언급하면서 공정위도 티시스 내부거래를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계열사 처리가 장애물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티시스가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지주사 전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주사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티시스가 다른 오너회사인 한국도서보급과 합병을 추진해 지주사 골격을 갖출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상품권 업체인 한국도서보급은 이 전 회장(59.0%)과 이씨(41.0%)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도서보급은 대한화섬(17.74%) 흥국생명(2.91%) 흥국증권(31.25%) 티캐스트(47.67%) 등의 지분도 갖고 있다. 지난해 전체 매출의 약 89.2%인 65억원을 내부거래로 올렸다. 티시스가 한국도서보급을 합병해 지주사로 전환하면 2대 주주가 되는 이씨의 그룹 지배력이 높아져 3세 승계 작업도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티시스가 지주사가 되면 흥국생명과 흥국증권 흥국생명 등 금융계열사 지분을 정리해야 하는 게 걸림돌이다. 현행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회사는 금융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수 없어서다. 한국도서보급이 보유한 흥국생명 지분 2.91%와 흥국증권 지분 31.25%, 대한화섬이 보유한 흥국생명 지분 10.43%를 매각해야 한다. 일각에선 티시스가 지주사로 전환하고 이 전 회장이 금융계열사 지분을 사들이는 시나리오도 흘러나오고 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