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시즌이 지나자마자 서점가에 주목할 만한 외국 소설이 쏟아지고 있다. 권위있는 세계적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의 소설도 줄줄이 출간됐다.

대표적인 책은 지난해 맨부커상 수상작인 《배반》(열린책들)이다. 폴 비티가 쓴 이 소설은 ‘인종주의 시대 이후의 인종주의’를 다룬다.

이야기는 주인공이자 소설의 1인칭 서술자가 법정에 서 있는 데서 시작한다. ‘인권’과 ‘평등’이라는 개념이 당연한 21세기에 그는 노예제도와 인종분리정책을 다시 도입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쿠 클럭스 클랜(KKK) 같은 백인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 흑인이다. 이런 일을 벌인 건 “은근히 차별받느니 차라리 노골적인 노예 생활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버스에 ‘백인 우대석’을 설치한다. 놀랍게도 그 버스는 시내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하나가 된다. 뒤이어 백인이라곤 없는 흑인 마을에 백인 전용 학교를 세우며 인종분리사회를 만들려 애쓴다.

올해 퓰리처상을 받은 콜슨 화이트헤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은행나무)가 19세기 노예제도 아래 당대 흑인이 겪어야 한 비참한 참상을 여과없이 보여줬다면 이 소설은 ‘흑인 대통령’이 두 번이나 집권한 시대의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식적으로 인종분리정책은 사라졌고 인종차별적 정책이나 발언은 반인권적인 것으로 비판받지만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백인 경찰이 쏜 총에 주인공의 아버지가 죽는 사건은 ‘현재의 미국’을 고스란히 옮겨온다.

무거운 주제의식을 담고 있지만 이 소설이 재밌게 읽히는 이유는 작가가 시종일관 풍자적인 태도를 유지한 채 부당한 현실을 우스꽝스럽게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작가의 냉소 섞인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인종뿐만 아니라 여성·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온갖 차별과 함께 ‘평등 구호’가 부유하는 현대 사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다만 ‘5분의 3 타협(1787년 인구 수를 셀 때 흑인 노예 수를 백인 자유인의 5분의 3으로 세기로 한 타협안)’ 등 미국인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뉘앙스의 표현이 많이 나온다. 번역자는 각주를 충실히 달아 미국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 애썼다.

《구스타프 소나타》(문학사상)는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 중 하나인 휘트브레드상을 받은 작가 로즈 트레마인의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무렵 스위스의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무언가 결핍된 채 살아간다. 주인공 구스타프는 이상할 정도로 아들에게 냉담하고 무관심한 어머니와 힘겨운 삶을 이어간다. 그는 평생 어머니의 냉대 속에 그녀의 사랑을 갈구한다. 또 다른 주인공이자 부유한 유대인인 안톤은 천재적 재능을 지닌 피아노 연주자이지만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한 채 꿈의 근처에서 서성거리고만 있다. 구스타프와 안톤은 서로의 결점을 이해하며 빈틈을 보듬어주는 관계로 성장한다.

작가는 1930년부터 2000년대까지의 긴 세월을 다루며 인간이 인간에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이야기한다. 자신보다 부유한 친구에게 느끼는 질투, 결코 인정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에서 오는 갈증, 우정, 사랑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읽는 이의 마음을 처연하게 만드는 감성의 대가’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작가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전후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면서도 거대한 서사는 없지만 주인공들의 감정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