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중세로 떠나는 '마법의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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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도시 '에스토니아 탈린
아름답고 웅장한 성벽·첨탑…'아픈 역사' 가 숨어 있었네
주변 강대국 침략받은 수도 탈린
구시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곳곳에 중세시대 건축물 즐비
창업자·예술가 모인 복합공간 '크리에이티브 시티'도 눈길
아름답고 웅장한 성벽·첨탑…'아픈 역사' 가 숨어 있었네
주변 강대국 침략받은 수도 탈린
구시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곳곳에 중세시대 건축물 즐비
창업자·예술가 모인 복합공간 '크리에이티브 시티'도 눈길


발트해가 고요하게 깨어나는 아침, 탈린행 메가스타 호에 올랐다. “헬싱키에서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페리를 타고 탈린에 다녀오는 것”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듣기도 했거니와 미지의 도시로 다가가기에 배만큼 낭만적 이동수단도 없다.

![[여행의 향기] 중세로 떠나는 '마법의 문'이 열린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710/AA.15017597.1.jpg)
중세로 가는 마법의 문, 비루 게이트
항구를 벗어나 20분쯤 걷자 견고한 성벽으로 에워싸인 요새 같은 구시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두께 3m, 높이 16m에 달하는 성벽은 중세에는 누구도 감히 들어갈 수 없는 철옹성이었지만, 지금은 여행객들을 향해 활짝 열려있다. 그중 ‘비루 게이트(Viru Gate)’는 탈린 구시가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쌍둥이처럼 서 있는 탑 사이를 통과하면 반지르르 윤이 나는 자갈을 따라 걸어서 중세 속으로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중세복장을 한 사람들이 시선을 끈다. 한자동맹 시절의 분위기를 재현한 ‘올드 한자(Old Hansa)’라는 식당 앞에서는 중세 복장을 한 악사들이 악기를 연주하는가 하면, 중세식 아몬드 판매대 점원도 시식을 권한다. 점원이 내미는 아몬드 몇 알을 먹어보니 달콤하게 볶았다. 맥주가 생각이 났다.


저지대의 중심에는 시청 광장이 있다. 여기서 매년 여름엔 중세 카니발 축제가, 겨울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광장 중앙에 자리한 시청은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 양식 건물로 1404년에 완공됐다. 첨탑을 올려다보면 그 끝에 탈린의 수호자라 불리는 토마스 모양의 풍향계가 달려 있다. 전설에 따르면 토마스는 석궁이 꿈이었지만 미천한 신분 탓에 파수병이 됐다. 토마스는 평생 파수병으로 살며 매일같이 시청 광장에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 줬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시청 첨탑에 토마스 모양 풍향계를 달아 그를 기렸단다. 풍향계 하나에도 이야기가 깃든 시청을 중심으로 3~4층 높이의 파스텔 톤 건축물이 광장을 빙 두른다. 지금은 상점과 노천카페 레스토랑이 됐지만, 중세에는 대부분 상인의 공동조합인 길드(guild) 건물이었다. 시청 광장 모퉁이에는 1422년에 문을 연 약국이 성업 중이다. 그 안에는 말린 두꺼비 가루, 불에 그을린 벌 등 중세 약재를 전시해 놓았을 뿐 아니라 진짜 약도 판다. 시청광장에서 뻗어있는 골목 중 중세 카타리나 길드의 본거지였던 ‘카타리나 골목’이 가장 오래되고 운치 있는 길로 꼽힌다. 카타리나는 종교개혁 전까지 구시가지 내에서 있던 카타리나 수도원 가는 길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수도원은 사라졌지만, 이 골목엔 지금도 유리 공예, 모자, 도자기 등을 만드는 예술가의 공방 14개가 있다.

고지대에 서면 에스토니아의 역사가 보인다
고지대에는 분홍빛 외벽이 돋보이는 툼페아 성을 중심으로 거대한 성당과 저택이 포진해 있다. 저지대보다 건축의 규모가 크고 면면이 화려하다. 자세히 보면 건축 양식이 제각각인데, 스웨덴, 러시아 등 에스토니아를 침략한 나라들이 남기고 간 아픈 역사의 흔적이기도 하다.
에스토니아는 늘 주변 강대국에 늘 시달려 왔다. 한자동맹에 발끈한 덴마크가 쳐들어 왔다. 이후 스웨덴과 러시아가 호시탐탐 탈린을 넘봤다.
웨덴의 지배를 받다가 1710년에는 러시아에 병합됐다. 러시아 제국 표트르 대제는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기고, 에스토니아의 탈린과 발트해 너머 핀란드의 헬싱키를 꼭지점처럼 묶어 러시아의 중심축으로 삼으려 했다.
영토를 빼앗길 때마다 내주었던 툼페아 성은 현재 에스토니아 국회의사당으로 쓰인다. 툼페아 성은 중세 십자군에 의해 지어져, 13세기 14세기 탈린의 황금기에 바로크 양식의 궁전 모양을 갖췄다. 한편, 툼페아 성의 남쪽 가장자리에는 헤르만 탑(Pikk Hermann)이 있는데, 매일 아침 해가 뜰 때마다 이곳에 에스토니아 국기를 내걸고 국가를 연주하며 국기게양식을 거행한다.
덴마크 국기가 생겨난 왕의 정원
툼페아 성 앞엔 19세기 러시아가 탈린을 점령하던 시절에 러시아 제국주의를 과시하기 위해 세운 알렉산더 넵스키 대성당이 우뚝 서 있다. 거대한 구형 지붕부터 벽화와 모자이크 장식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건축가 미하일 프레블라지네스키가 디자인한 교회로 당시 러시아의 건축 양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뒤편으로는 덴마크가 통치하던 시절의 자취인 ‘덴마크 왕의 정원’이 있다. 덴마크 왕 발데마르 2세가 지은 성탑과 정원이 남아 있다. 19세기에는 어시장, 꽃시장 등으로 쓰였다가 다시 도시의 공원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고대 전설에 따르면 여기서 덴마크 국기가 생겨났단다. 1219년 7월15일 에스토니아를 침략한 덴마크군이 전쟁에 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흰 십자가를 그리 붉은 깃발이 떠올랐다. 덴마크군은 이를 거룩한 계시로 여겨 전투를 역전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 에스토니아는 100년간 덴마크의 지배를 당했다.
한편 13세기에 건립된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이름은 대성당이지만 스웨덴에 의해 루터 교회로 바뀌었다. 그래서 웅장한 규모에 비해 내부는 소박한 편이다. 1779년에 추가로 지은 첨탑에 오르면 고지대의 전망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탈린의 미래, 크리에이티브 시티
“탈린에는 구시가만 있는 게 아니에요. 구시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크에이티브 시티가 나와요. 여기를 가야 현지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요.” 탈린에 다녀온 지인이 말했다. 구시가에서 도보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시티(Creative City)는 기차역 옆 폐공장 지대를 예술가와 젊은 창업자의 아지트로 변신시킨 복합 공간이다. 그라피티가 그려진 공장 건물에는 창업가들의 사무실과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자리한다. 그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카페와 레스토랑에선 구시가보다 가격은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식사와 멋스러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여행정보
서울에서 탈린까지 직항은 없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갈 수도 있지만, 헬싱키까지 직항으로 핀에어를 타고 가서 페리를 타고 가는 것도 색다른 방법이다. 헬싱키 항구에서 탈린 항구까지는 85㎞ 거리로 페리로 약 2시간이 걸린다. 페리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친환경 동력에너지 LNG로 운항하는 ‘메가스타’를 타면 이동 시간마저 잊지 못할 여행이 된다. 메가스타에는 선상 면세점을 비롯해 핀란드 유명 디자이너 베르티 키비가 디자인한 레스토랑과 바 등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티켓은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이왕이면 당일치기보다 1박 이상 탈린에 머물며 곳곳을 둘러보는 여유로운 일정을 추천한다. 탈린 언어는 에스토니아어지만, 영어와 러시아어가 잘 통한다.
화폐는 유로, 전압은 220V를 쓴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이 느리다.
탈린= 글·사진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