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실질주주의 권리행사 안돼"…진정한 권리자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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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주주명부에 기재된 형식주주에게만 주주권 인정"
(대법원 2017년 3월23일 선고, 2015다248342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7년 3월23일 선고, 2015다248342 전원합의체 판결)
주주명부에 주주로 기재된 사람을 형식주주라고 하고, 이 사람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주주가 따로 있는 경우가 있다. 그를 실질주주라고 한다. 가령 명의를 차용해 주식을 소유한 경우나, 주식을 양도했으나 주주명부에 명의개서가 되지 않아 구(舊)주주가 계속 명부상 주주로 등재돼 있는 경우 실질주주 문제가 생긴다. 종래 법원은 실질주주의 존재가 확인되면 형식주주를 배제하고 실질주주에게 주주권의 행사를 인정했다. 권리자에게 권리를 행사하게 하는 것이 정의에 합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7년 초 회사가 실질주주가 따로 있음을 알고 있고 법원이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상장회사의 경우 오직 주주명부에 기재돼 있는 형식주주만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판결(대법원 2017년 3월23일 선고, 2015다248342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살펴보자. 원고는 상장회사인 피고 회사 발행 보통주식 총 5092만9817주 중 260만4300주의 명의상 소유자다. 피고 회사는 2014년 3월28일 연 정기주주총회에서 모씨를 피고 회사의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결의 등을 했다. 원고는 해당 주총결의가 피고 회사의 최대주주 및 현 경영진이 주주총회 의사진행 권한을 남용해 관련 법령 등을 무시한 채 파행적으로 진행한 것이어서 그 결의방법 등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주위적(청구원인으로 먼저 주장하는 것)으로 이 사건 결의의 부존재 내지 무효의 확인을, 예비적으로 이 사건 결의 취소를 구했다. 이에 대해 피고 회사는 원고가 명의대여주주에 불과해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이 없으므로, 이 사건 소를 부적법 각하해줄 것을 청구하는 본안 전 항변을 했다.
남의 자금으로 주식 취득한 형식주주
사정은 이렇다. 원고는 2013년 10월7일께 은행에 예금계좌를 신규 개설했다. K는 자신과 자신의 처 및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주식회사 M 등의 명의로 수십 회에 걸쳐 합계 75억5000만원을 위 계좌로 송금했다. 원고는 이 돈을 자신 명의의 증권계좌로 이체해 피고 회사의 주식을 취득했다. 금융거래정보 회신 결과 원고의 주식매수자금은 K가 송금한 돈에서 나왔다는 것이 증명됐다. 원고는 K로부터 법정에서 자금을 차용했다는 주장을 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이 확정한 사실은 K가 위 주식의 실질주주고 원고는 형식주주라는 점이다. K는 원고를 내세워 피고 회사의 대표이사 및 대주주에게 경영권 매수를 제안해 사실상 주주로서 행세한 적도 있어서 회사나 대주주는 K가 실질주주임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원고는 자신이 주주이므로 주주총회의 하자를 다툴 수 있다는 것이고, 피고 회사는 원고가 형식주주일 뿐으로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고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도 없다고 다퉜다.
대법원 “상장사는 형식주주만 인정”
종래 판결이라면 피고의 주장이 맞다. 따라서 원심(서울고법 2015년 11월13일 선고, 2014나2051549 판결)은 원고가 명의대여 주주에 불과한 점을 들어 원고의 원고적격을 부인하고 피고 회사의 항변을 인용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위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고, 피고 회사가 패소했다. 대법원은 회사가 실질주주가 따로 있음을 알고 있고 법원이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상장회사의 경우 오직 주주명부에 기재돼 있는 형식주주만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형식주주에게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없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논리적 모순이자 주주명부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물론 주주명부에 형식주주가 기재된 것 자체가 실질주주가 형식주주에게 주주권 행사를 허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있다. 그러나 권리행사를 허용했다고 해서 그 형식주주만 배타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고 실질주주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거래상으로는 명의차용이 흔히 있고, 명의차용이 법에 어긋나지도 않는다. 금융실명제와 같은 주식실명제 제도가 도입된 것도 아닌데(금융실명제법도 차명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차명을 금지한다) 주주명부와 관련해 이런 판단은 진정한 주주의 권리행사 기회를 박탈해 ‘권리자에 의한 권리행사’라는 중요한 사법원리(私法原理)를 저버린 것이다.
실질주주 인정한 종래 판결 폐기
이 판결은 많은 종래의 판결을 폐기함으로써 혼란을 가져왔다. 첫째, 명의대여자의 경우 과거에는 명의차용인만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에 해당한다고 했는데 이젠 명의대여자만이 주주로 인정된다. 둘째, 주식을 인수 및 양수했지만 명의개서를 하지 않았더라도 주주의 지위를 인정했는데, 이제는 명의개서를 하지 않으면 주주로 인정될 수 없고 주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 셋째, 명의개서를 하지 않은 실질상의 주주를 회사가 주주로 인정하는 것은 무방하다고 한 종래의 많은 판결이 폐기됐다. 넷째, 회사가 주주명부상의 주주가 형식주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했고, 또 이를 용이하게 증명해 의결권 행사를 거절할 수 있었음에도 의결권을 행사하게 한 경우 그 의결권 행사가 위법하게 된다는 종래의 판결이 폐기됐다.
이 외에도 주식명의신탁의 경우 이제는 명의상 주주인 수탁자만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명의신탁자는 권리가 없게 된다. 사업자가 은행에 주식을 양도담보로 설정하는 사례가 많은데, 사업자는 아무런 권리가 없게 된다. 실질주주는 이제 장부열람청구, 임시총회소집청구, 이사직무집행정지청구, 주주대표소송 등을 제기할 수 없게 된다.
이 판결에도 불구하고 ‘지방세법상 과점주주에 대한 간주취득세 납부의무자 파악’ ‘1인 회사의 판단’ ‘주금 가장납입의 경우 체당납입금 상환의무자 판단’ ‘발기설립인지 모집설립인지의 판단’ ‘주식상호소유 여부 판단’ ‘의결권이 제한되는 자기주식, 10%를 초과 소유한 타회사 주식, 상호보유주식, 특별이해관계인이 소유한 주식, 감사선임의 경우 3% 룰 등에 대한 판단’ ‘명의대여자와 명의차용자의 인수한 주식에 대한 납입 연대책임’ 등에서는 여전히 실질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실질 권리자 보호해야
이 판결은 주주명부상 명의인과 실질적 소유자와의 내부적 관계는 그들 사이의 사실관계를 따져 소유자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대외적 권리행사는 주주명부에 의해야 하게 됨으로써 권리 귀속과 권리 행사가 분리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논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실질적 권리자를 찾아 보호함으로써 진실과 정의를 추구해야 함에도 주주명부라는 형식에 얽매여 권리 없는 자를 보호하는 결과가 됐다. 무슨 대단한 실익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형식주주를 인정함으로써 주식의 실질관계를 조사할 필요가 없다는 단 한 가지 장점이 있으나 실질을 찾아 정의를 세우라는 것이 법원에 내려진 국가와 국민의 명령이다. 다만 대법원 판결은 ‘특별한 사정’이라는 것을 둬 앞으로 달리 해석할 여지도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칙이 무너진 상태에서 ‘특별한 사정’이라는 것으로 그때그때 모면하려는 계책으로 보일 뿐이다.
■ 독일 회사법, 주주명부만 인정…국내법은 명문 규정 없어
주주명부는 주식·주권 및 주주에 관한 사항을 명기하는 장부다. 부동산실명제는 부동산 등기부가, 금융실명제는 금융기록이 엄격하게 관리되므로 가능한 것이다.
상장회사의 주주명부는 비교적 엄격히 관리되나 비상장회사는 세무서 보고용을 따로 만들어 두는 등 신뢰도가 극히 낮다. 독일 회사법은 주주명부상 주주에게만 주주권을 인정하는 명문 규정이 있다.
명문 규정이 없는 한국에서는 주주명부에 등재된 자는 권리자로 추정(推定)되지만, 추정은 반증(反證)에 의해 깨뜨려질 수 있다. 그리고 상장회사라 해서 주주명부의 의미를 비상장회사의 그것과 법적 해석을 달리할 수는 없다.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명예교수 >
그런데 2017년 초 회사가 실질주주가 따로 있음을 알고 있고 법원이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상장회사의 경우 오직 주주명부에 기재돼 있는 형식주주만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판결(대법원 2017년 3월23일 선고, 2015다248342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살펴보자. 원고는 상장회사인 피고 회사 발행 보통주식 총 5092만9817주 중 260만4300주의 명의상 소유자다. 피고 회사는 2014년 3월28일 연 정기주주총회에서 모씨를 피고 회사의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결의 등을 했다. 원고는 해당 주총결의가 피고 회사의 최대주주 및 현 경영진이 주주총회 의사진행 권한을 남용해 관련 법령 등을 무시한 채 파행적으로 진행한 것이어서 그 결의방법 등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주위적(청구원인으로 먼저 주장하는 것)으로 이 사건 결의의 부존재 내지 무효의 확인을, 예비적으로 이 사건 결의 취소를 구했다. 이에 대해 피고 회사는 원고가 명의대여주주에 불과해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이 없으므로, 이 사건 소를 부적법 각하해줄 것을 청구하는 본안 전 항변을 했다.
남의 자금으로 주식 취득한 형식주주
사정은 이렇다. 원고는 2013년 10월7일께 은행에 예금계좌를 신규 개설했다. K는 자신과 자신의 처 및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주식회사 M 등의 명의로 수십 회에 걸쳐 합계 75억5000만원을 위 계좌로 송금했다. 원고는 이 돈을 자신 명의의 증권계좌로 이체해 피고 회사의 주식을 취득했다. 금융거래정보 회신 결과 원고의 주식매수자금은 K가 송금한 돈에서 나왔다는 것이 증명됐다. 원고는 K로부터 법정에서 자금을 차용했다는 주장을 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이 확정한 사실은 K가 위 주식의 실질주주고 원고는 형식주주라는 점이다. K는 원고를 내세워 피고 회사의 대표이사 및 대주주에게 경영권 매수를 제안해 사실상 주주로서 행세한 적도 있어서 회사나 대주주는 K가 실질주주임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원고는 자신이 주주이므로 주주총회의 하자를 다툴 수 있다는 것이고, 피고 회사는 원고가 형식주주일 뿐으로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고 소를 제기할 당사자적격도 없다고 다퉜다.
대법원 “상장사는 형식주주만 인정”
종래 판결이라면 피고의 주장이 맞다. 따라서 원심(서울고법 2015년 11월13일 선고, 2014나2051549 판결)은 원고가 명의대여 주주에 불과한 점을 들어 원고의 원고적격을 부인하고 피고 회사의 항변을 인용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위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고, 피고 회사가 패소했다. 대법원은 회사가 실질주주가 따로 있음을 알고 있고 법원이 그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상장회사의 경우 오직 주주명부에 기재돼 있는 형식주주만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형식주주에게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없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논리적 모순이자 주주명부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물론 주주명부에 형식주주가 기재된 것 자체가 실질주주가 형식주주에게 주주권 행사를 허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있다. 그러나 권리행사를 허용했다고 해서 그 형식주주만 배타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고 실질주주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거래상으로는 명의차용이 흔히 있고, 명의차용이 법에 어긋나지도 않는다. 금융실명제와 같은 주식실명제 제도가 도입된 것도 아닌데(금융실명제법도 차명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차명을 금지한다) 주주명부와 관련해 이런 판단은 진정한 주주의 권리행사 기회를 박탈해 ‘권리자에 의한 권리행사’라는 중요한 사법원리(私法原理)를 저버린 것이다.
실질주주 인정한 종래 판결 폐기
이 판결은 많은 종래의 판결을 폐기함으로써 혼란을 가져왔다. 첫째, 명의대여자의 경우 과거에는 명의차용인만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에 해당한다고 했는데 이젠 명의대여자만이 주주로 인정된다. 둘째, 주식을 인수 및 양수했지만 명의개서를 하지 않았더라도 주주의 지위를 인정했는데, 이제는 명의개서를 하지 않으면 주주로 인정될 수 없고 주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 셋째, 명의개서를 하지 않은 실질상의 주주를 회사가 주주로 인정하는 것은 무방하다고 한 종래의 많은 판결이 폐기됐다. 넷째, 회사가 주주명부상의 주주가 형식주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했고, 또 이를 용이하게 증명해 의결권 행사를 거절할 수 있었음에도 의결권을 행사하게 한 경우 그 의결권 행사가 위법하게 된다는 종래의 판결이 폐기됐다.
이 외에도 주식명의신탁의 경우 이제는 명의상 주주인 수탁자만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명의신탁자는 권리가 없게 된다. 사업자가 은행에 주식을 양도담보로 설정하는 사례가 많은데, 사업자는 아무런 권리가 없게 된다. 실질주주는 이제 장부열람청구, 임시총회소집청구, 이사직무집행정지청구, 주주대표소송 등을 제기할 수 없게 된다.
이 판결에도 불구하고 ‘지방세법상 과점주주에 대한 간주취득세 납부의무자 파악’ ‘1인 회사의 판단’ ‘주금 가장납입의 경우 체당납입금 상환의무자 판단’ ‘발기설립인지 모집설립인지의 판단’ ‘주식상호소유 여부 판단’ ‘의결권이 제한되는 자기주식, 10%를 초과 소유한 타회사 주식, 상호보유주식, 특별이해관계인이 소유한 주식, 감사선임의 경우 3% 룰 등에 대한 판단’ ‘명의대여자와 명의차용자의 인수한 주식에 대한 납입 연대책임’ 등에서는 여전히 실질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실질 권리자 보호해야
이 판결은 주주명부상 명의인과 실질적 소유자와의 내부적 관계는 그들 사이의 사실관계를 따져 소유자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대외적 권리행사는 주주명부에 의해야 하게 됨으로써 권리 귀속과 권리 행사가 분리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논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실질적 권리자를 찾아 보호함으로써 진실과 정의를 추구해야 함에도 주주명부라는 형식에 얽매여 권리 없는 자를 보호하는 결과가 됐다. 무슨 대단한 실익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형식주주를 인정함으로써 주식의 실질관계를 조사할 필요가 없다는 단 한 가지 장점이 있으나 실질을 찾아 정의를 세우라는 것이 법원에 내려진 국가와 국민의 명령이다. 다만 대법원 판결은 ‘특별한 사정’이라는 것을 둬 앞으로 달리 해석할 여지도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칙이 무너진 상태에서 ‘특별한 사정’이라는 것으로 그때그때 모면하려는 계책으로 보일 뿐이다.
■ 독일 회사법, 주주명부만 인정…국내법은 명문 규정 없어
주주명부는 주식·주권 및 주주에 관한 사항을 명기하는 장부다. 부동산실명제는 부동산 등기부가, 금융실명제는 금융기록이 엄격하게 관리되므로 가능한 것이다.
상장회사의 주주명부는 비교적 엄격히 관리되나 비상장회사는 세무서 보고용을 따로 만들어 두는 등 신뢰도가 극히 낮다. 독일 회사법은 주주명부상 주주에게만 주주권을 인정하는 명문 규정이 있다.
명문 규정이 없는 한국에서는 주주명부에 등재된 자는 권리자로 추정(推定)되지만, 추정은 반증(反證)에 의해 깨뜨려질 수 있다. 그리고 상장회사라 해서 주주명부의 의미를 비상장회사의 그것과 법적 해석을 달리할 수는 없다.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