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여행의 묘미는 단지 도시에만 머물지 않는다. 교외로 눈을 돌리면 또 다른 모습의 핀란드가 방문객을 기다린다.

전통 방식의 사우나를 하고 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에 몸을 담그면 신선이라도 된 듯하다. 청정 자연에 사는 물범, 역사의 상처를 간직한 고성도 만날 수 있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닿는 핀란드의 속살. 그 진한 매력은 깨고 싶지 않은 단꿈처럼 긴 여운을 남겼다.

스모크 사우나의 열기와 호수

‘진짜 핀란드’를 느끼고 싶다면 사우나 체험은 필수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인 사우나(sauna)는 핀란드어다. 핀란드에는 약 320만 개의 사우나 시설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인구가 약 550만 명이므로 한 가구에 한 개꼴로 사우나가 있는 셈이다. 긴 겨울 탓에 사우나 문화가 발달하게 됐다. 사우나는 단순한 목욕이 아니라 생활과 직결되는 문화 중 하나다. 핀란드까지 갔는데 사우나를 하지 않는다면 여행의 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핀란드식 스모크 사우나를 즐기는 여인.
핀란드식 스모크 사우나를 즐기는 여인.
대부분의 핀란드 가정은 내부를 나무로 꾸미고 전기를 사용해 달구는 전기 사우나를 갖추고 있다. 등급을 따지면 가장 쉽고 보편적인 방식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전통방식의 자작나무 땔감으로 열을 내는 전통방식을 최고로 친다. 헬싱키에서 북동쪽으로 290㎞ 떨어진 사한라티 리조트에서 전통방식의 스모크 사우나를 체험할 수 있었다.
사한라티 리조트 별장과 숲.
사한라티 리조트 별장과 숲.
리조트에 도착하니 한적한 호숫가에 지은 오두막 같은 사우나가 있다. 스모크 사우나를 하기 위해서는 장작으로 약 6시간 정도 불을 때야 한다. 외부를 가열하는 방식이라 연기에 콜록거릴 일은 없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몸을 덮쳤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한국의 사우나와 달리 냉탕이 없는 것이 좀 색다르다. 시간이 지나고 찬물이 필요할 무렵, 함께 있던 핀란드관광청의 사리 씨가 밖으로 나갈 것을 권했다. 사우나 앞에 있는 호수에 들어가잔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핀란드에서는 호수를 오가며 사우나를 즐겨요. 물은 깊지 않고 깨끗하니 안심하세요.”
사우나와 호수를 오가며 열을 식히는 사우나 체험은 핀란드 여행의 필수 코스다.  ♣♣핀란드 관광청 제공.
사우나와 호수를 오가며 열을 식히는 사우나 체험은 핀란드 여행의 필수 코스다. ♣♣핀란드 관광청 제공.
덥다고 호수에 뛰어든다니 이상하기만 하다. 반신반의하며 그의 뒤를 따라가자 곧 호수가 나타났다. 호숫가에는 철제 난간이 설치돼 있었다. 핀란드에서 가장 큰 사이마(Saimaa) 호수였다. 막상 들어가자니 조금 두려워졌다. 난간을 붙잡고 발만 살짝 담가봤다. 여름이지만 물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하지만 뜨거운 몸을 식히고 싶다면 들어갈 수밖에. 눈을 딱 감고 몸을 담갔다. 처음엔 차가운 온도를 견디는 게 고역이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졌다. 오히려 물 밖에 노출된 쪽이 더 춥게 느껴졌다. 바다가 아닌 호수에 뛰어든 것은 평생 처음. 한국에선 보트를 타거나 낚시나 하던 장소에 불과했던 곳이 수영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카르네차리 섬에서 맛볼 수 있는 소시지.
카르네차리 섬에서 맛볼 수 있는 소시지.
사리 씨는 물 만난 고기처럼 깊은 곳까지 들어가 수영을 즐겼다. “겨울에는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요. 1분 정도 담그고 다시 사우나를 하죠.” 많은 현지인이 그렇게 겨울에도 사우나를 즐긴다고 한다. 겨울철 바다에서 수영하는 북극곰 수영대회가 열리면 1등은 모조리 핀란드 사람들의 차지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호수와 사우나를 오가는 경험은 참으로 특별했다. 미리 준비된 핀란드산 맥주도 마셨다. 핀란드인들이 존경한다는 우르호 케코넨(Urho Kekkonen) 전 대통령의 사진이 인쇄된 맥주 맛은 사우나의 열기 때문인지 더욱 각별했다. 스모크 사우나 비용은 290유로. 10유로를 추가하면 구운 소시지와 각종 음료를 먹을 수 있다.

순수한 자연을 간직한 핀란드의 국립공원

핀란드를 이해하려면 자연환경을 들여다봐야 한다. 핀란드 국토의 71.6%는 숲으로 덮여있고, 국토의 10.2%가 호수로 이뤄져 있다. 호수 개수만 따져도 18만8000개에 달한다. 핀란드 국민이 조국과 민족을 지칭하는 단어 수오미(Suomi)의 말도 호수와 연못을 뜻하는 수오(Suo)에서 비롯됐다. 호숫물의 80%는 그냥 마셔도 괜찮을 만큼 수질이 좋다. 깨끗한 핀란드의 자연환경은 객관적인 연구로도 입증된다.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가 공동으로 발표한 2016 환경성과지수(EPI)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국가가 바로 핀란드다.
린난사리 국립공원 내 야르비쉬단 리조트 스파.
린난사리 국립공원 내 야르비쉬단 리조트 스파.
국립공원에 가면 오염되지 않은 축복받은 자연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린난사리 국립공원은 사한라티 리조트에서 북쪽으로 약 125㎞ 떨어져 있는 곳이다. 핀란드 내 국립공원 중에서도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멸종위기에 놓인 사이마 고리무늬물범(Saimaa Ringed Seal)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에는 120마리도 남지 않았을 만큼 개체 수가 줄어든 희귀종인데 이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현재 사이마 고리무늬물범은 360여 마리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인공수정이 필요한 위기상태다.

린난사리 국립공원으로 가는 가이드 투어는 야르비쉬단 리조트에서 신청할 수 있다. 리조트 앞에 있는 부두에서 보트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국립공원 안에 있는 카르네차리(Kaarnetsaari) 섬에 닿는다. 캠프파이어와 함께 소시지와 팬케이크를 맛보고, 영상을 통해 사이마 고리무늬물범의 생태에 대해 학습할 수도 있다. 산책을 하며 호젓한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은 덤. 자연 속에서 즐기는 조용한 휴식은 번잡한 마음의 때를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보트 탑승을 포함한 비용은 성인 49.5유로.

최신식 스파와 중세시대 분위기

국립공원 투어의 출발점인 야르비쉬단 리조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내부 인테리어였다. 오래된 목조 배를 건물에 통째로 집어넣고 지어서 무척 독특하다. 현대적인 외관에서는 짐작할 수 없는 모습에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다. 세월의 때가 묻은 배만 보자면 2015년에 완공됐다고 믿기지 않는다.

야르비쉬단 리조트의 가장 큰 특징은 워터파크를 연상시키는 현대적인 스파가 있다는 것. 내부 디자인은 친환경적이다. 자연석을 활용해 만든 스파는 울퉁불퉁한 바위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오래된 나무를 활용한 기둥과 계단이 눈을 사로잡는다.

사우나 종류는 3가지로 목재 난로 사우나, 스모크 사우나, 스팀 사우나 등이다. 후끈하게 사우나를 한 뒤에는 야외 수영장으로 나가서 몸을 식힐 수 있다. 물은 차갑지만 사이마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주변 풍경이 추위도 잊게 할 만큼 아름답다. 문득 눈앞의 호수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낮은 수영장 담을 넘어 호기롭게 호수로 향해본다. 뜨거운 사우나의 열기가 차가운 호숫물에 금세 사라졌다. 이렇게 몇 번을 오고 가니 저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리조트 내 피카티토 레스토랑에선 지역 특선 요리를 내놓는다. 벽난로가 있는 식당은 통나무로 내부를 꾸며서인지 편안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역에서 가장 큰 와인 셀러에 마련된 식당도 있다. 220명을 수용하는 넓은 공간과 중세시대를 연상케 하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시간여행을 하는 듯하다. 스파 입장료는 1인 29.9유로부터.

거친 역사를 간직한 고성

오페라 공연장으로 재탄생 한 올라빈린나 고성.
오페라 공연장으로 재탄생 한 올라빈린나 고성.
야르비쉬단 리조트 근교에는 고성(古城)이 있다. 남쪽으로 52㎞ 떨어진 사본린나(Savonlinna) 지역에 자리한 고성 올라빈린나(Olavinlinna)는 호수 위에 지은 커다란 요새다. 이 성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사본린나 지역의 통제권을 수호하기 위해 1475년에 건설됐다. 방어의 목적으로 완성된 성은 핀란드의 역사에 따라 우여곡절을 겪었다. 당시 핀란드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이웃한 러시아의 공격을 자주 받았다. 1809년 나폴레옹 전쟁 기간에 스웨덴이 러시아에 패한 뒤 핀란드는 러시아의 자치공국이 됐다.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는 올라빈린나 성의 군사적 중요성도 사라졌다. 감옥으로 쓰이기도 하는 등 홀대받던 성은 1961년 대규모 복원을 시작했고 성의 500주년을 맞이한 1975년에 작업을 마무리했다.

올라빈린나 성의 첫인상이 무뚝뚝하게 느껴진 이유도 역사적인 상처가 깊었기 때문이리라. 내부 모습은 유럽의 여느 성과 달리 평범한 편이다. 군사용 목적으로 지어져서인지 감시탑, 회의실, 작은 성당, 회랑 등 필요한 시설만 들어서 있다.

올라빈린나 성은 현재 핀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 중 하나로 탈바꿈했다. 세계적 오페라 음악 축제인 ‘사본린나 오페라 페스티벌’이 이곳에서 열린다. 1912년에 첫 축제가 시작됐고, 전쟁으로 휴식기를 갖다가 1967년에 다시 개최됐다. 축제 기간 중에는 성 내부의 야외공연장에 2000여 석의 관객석이 마련되고, 다양한 오페라 작품이 상연된다.

15세기에 지어진 고성의 커다란 성벽이 훌륭한 음향시설 역할을 한다. 축제는 올라빈린나 성에서 매년 7월 초부터 8월 초 사이에 열린다. 오랜 세월 고초를 겪은 성이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됐다는 사실이 더 큰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올라빈린나 성에선 오전 11시~오후 5시 핀란드어 및 영어로 된 가이드투어를 한다. 입장료는 성인 9유로.

발트해를 바라보며 사우나와 수영을

헬싱키 밖으로 나가서 사우나를 즐길 여유가 없다면? 헬싱키 시청사에서 400m 거리에 있는 알라스 바다 수영장으로 가보자. 사우나는 물론 수영, 식사와 카페까지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명소다. 멋진 헬싱키의 도시 경관을 바라보며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관광객에게 인기가 좋다.
헬싱키 알라스 바다 수영장.
헬싱키 알라스 바다 수영장.
이곳에는 연중 27도로 유지되는 온수풀, 발트해를 여과해 사용하는 해수풀, 깊이가 60㎝인 어린이 수영장 등이 있다. 바다와 인접해 있어 수영장 뒤로 커다란 배가 수시로 지나간다. 수영뿐만 아니라 약 80도로 온도가 유지되는 전기 방식의 사우나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무료로 개방되는 야외 테라스는 알라스 바다 수영장의 자랑이다. 이곳으로 올라가면 수도의 상징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는 헬싱키대성당, 우스펜스키 대성당 등의 주요 건축물을 비롯해 대형 관람차인 헬싱키 스카이휠, 탁 트인 항구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우나와 수영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싱글티켓은 성인 기준 12유로.

여행정보

핀에어는 서울에서 핀란드로 가는 항공편을 운영한다. 핀에어는 2016년부터 핀란드관광청과 스톱오버 핀란드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다. 핀에어 탑승객은 헬싱키 경유 노선 항공권을 구입할 경우 스톱오버 패키지를 함께 예약할 수 있다.

스톱오버 패키지는 5시간부터 5일 여정까지 다양하다. 헬싱키 등 핀란드 주요 도시 방문, 난탈리의 무민월드,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Lapland) 투어 등을 비롯해 에스토니아 탈린, 스웨덴 스톡홀름 등 주변 국가도 방문할 수 있다.

김명상 여행작가 terry@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