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폐 피하려면 내년 3월말까지 매각 끝내야…WD 매각중지 가처분신청 예고

일본 도시바(東芝)가 진통 끝에 반도체사업 매각 계약을 28일 체결했지만 매각 완료까지는 수많은 장애물이 남아있다.

도시바는 상장폐지를 피하기 위해 내년 3월 말까지 도시바 메모리 매각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장 먼저 고민할 부분은 일본과 미국, 중국 등 각국 반(反)독점 규제 당국의 승인이다.

도시바가 매각 계약을 체결한 한미일 연합에는 미국 투자사 베인 캐피털과 애플, 한국의 SK하이닉스, 일본의 광학기기 제조업체 호야(HOYA) 등이 참여했다.

아울러 도시바도 지분을 가진다.

일본 안팎에서는 한미일 연합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시점부터 SK하이닉스의 의결권 확보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문제와 관련해 도시바는 SK하이닉스의 의결권을 향후 10년간 15% 아래로 묶어두고 정보 접근도 차단하겠다고 밝히며 논란의 싹을 잘라 둔 상태다.

또 도시바와 호야 등 일본 기업이 도시바 메모리의 지분 과반을 확보해 둔 상황이라 일본 당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 일본 당국이 기술 유출 등을 우려해 이번 매각과정에서 훈수를 둬 왔다는 점에서 이번 계약에는 사실상 정부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관측도 나온다.

오히려 '반도체 굴기(堀起)'를 내세우며 반도체 산업에 공을 들여온 중국 당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각국 독점금지법 심사에는 6∼9개월가량 걸리므로 내년 3월까지 '시간과의 싸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웨스턴디지털(WD)과의 법정싸움도 큰 걸림돌이다.

WD는 지난해 5월 도시바 메모리의 주력 생산시설인 욧카이치(四日市) 공장 공동운영 파트너사인 샌디스크를 인수했다.

이 인수 계약을 계기로 WD는 도시바의 협업 대상으로 올라섰고, 조인트벤처(JV) 파트너 지위를 내세워 도시바 메모리 매각에 딴지를 걸어왔다.

특히 도시바가 선택한 한미일 연합에는 반도체 업계 경쟁업체들이 대거 포진해 있어 WD가 매각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하다.

WD는 이미 국제상업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ICA)에 세 차례에 걸쳐 도시바를 제소했다.

조만간 ICA에 새로운 매각 일시 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겠다고도 밝힌 상태다.

WD는 지난 26일 성명에서도 "도시바가 선택한 길은 조인트벤처(JV) 계약의 명백한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만약 도시바가 3월 말까지 매각을 마무리해 채무를 해결하지 못하면 상장폐지는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도시바는 지난 8월 1일 채무 초과 탓에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서 2부 종목으로 강등당했다.

이번 반도체사업 매각은 도시바가 지난 1월 원전사업에서 7조 원대의 손실을 내며 반도체사업을 분사해 지분을 일부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당초 경영 간섭을 막기 위해 20% 미만의 지분만 팔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업계의 외면 탓에 지분 매각 규모를 과반으로 대폭 확대했다.

3월 말 예비입찰을 받았고 5월 2차 입찰을 거쳐 베인 캐피털이 이끄는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을 우선 협상자로 선정했다.

이후 WD의 소송과 일본 당국의 입김 속에 8월 우선협상대상자가 뒤집히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날 결국 한미일 연합과의 매각 계약이 체결됐다.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he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