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상호금융회사들이 지난 5년간 수익으로 처리한 장기 미청구 자기앞수표를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해야 할 상황을 맞았다. 금융회사들이 서민금융 재원으로 내놔야 할 금액만 5000억원가량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21일 전체회의를 열어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서민금융생활지원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고객이 장기간 지급 청구를 하지 않은 자기앞수표를 은행 수익이 아니라 휴면예금으로 분류해 서민금융 재원으로 사용하는 게 골자다. 자기앞수표는 은행이 지급보증을 조건으로 발행하는 수표다. 일종의 무기명 채권이다. 지금까지 은행들은 수표 발행 후 5년이 지나도록 수표 소지자가 지급을 요청하지 않으면 ‘잡수익’으로 처리해왔다.

금융회사들이 이같이 잡수익으로 처리한 금액은 200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9년간 9312억원에 달했다. 은행권 7936억원, 농협·수협 등 상호금융업계 1376억원 등이다. 하지만 개정 법률안은 “미청구 자기앞수표도 휴면예금에 해당된다고 봐야 한다”며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앞으로 발생하는 미청구 자기앞수표는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해 서민 지원 자금으로 써야 한다”고 명시했다.

국회 정무위는 이에 더해 지난 5년간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잡수익으로 처리한 자기앞수표도 올해 말까지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하도록 할 계획이다. 은행연합회 등 업권별 협회가 소속 금융회사의 의견을 모은 뒤 서민금융진흥원과 협약을 맺고 자율적으로 자금을 내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미다. 2008년 이후 9년간 금융회사가 수익으로 처리한 게 9312억원인 점을 감안할 때 은행과 상호금융회사들이 내놔야 할 금액은 5000억원가량이 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이 돈을 장기연체자 부채 탕감 등의 재원으로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정무위 계획대로 되면 은행과 상호금융회사들은 올 하반기 수익이 급감할 전망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개정 법률 시행 이후 미청구 자기앞수표뿐 아니라 지난 5년간 수익을 내놓게 하겠다는 것은 과도하다”며 “정부가 투입해야 할 서민금융 지원 예산을 금융회사에 떠넘기는 것”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