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사건' 영장 잇따라 기각되자 이례적 '서울중앙지검 입장' 발표 검찰 "영장판사 바뀌고 이전과 판단기준 달라져…사법불신 초래 우려" 법원 "매우 부적절…다른 사건에 영향 주려는 '저의'로 오인될 수도"
검찰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주요 수사의 피의자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최근 잇따라 기각된 데 대해 8일 검찰이 "납득하기 어렵다"며 정면으로 반발하자 법원은 '도를 넘어서는 입장 표명'이라며 매우 부적절하고 심히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영장을 둘러싸고 양 기관의 해묵은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이날 새벽 법원은 국가정보원의 '댓글 공작'에 관여한 국정원 퇴직자모임 전·현직 간부 2명, 유력인사들의 청탁을 받고 직원을 부정 채용한 의혹을 받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임원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이에 검찰은 새벽에 즉각 간단한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검 명의로 '입장' 문건을 내놓고 영장 청구가 기각된 이전 사례들까지 언급하며 날 선 어조로 법원을 정면 비판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중앙지검은 8일 오전 '국정농단 사건 등에 대한 일련의 영장 기각 등과 관련된 서울중앙지검의 입장'을 내고 "그동안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고 감내해 왔으나, 최근 일련의 구속영장 기각은 이전 영장전담 판사들의 판단 기준과 차이가 많은 것으로서 납득하기 어렵다"며 최근 이어진 영장 기각 결정을 비판했다.
검찰은 입장문에서 "지난 2월 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새로운 영장전담 판사들이 배치된 이후 주요 국정농단 사건을 비롯한 국민 이익과 사회정의에 직결되는 핵심 수사의 영장들이 거의 예외 없이 기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장이 기각된 주요 피의자로는 우병우, 정유라, 이영선, '국정원 댓글' 관련자, 한국항공우주(KAI) 관련자 등을 들었다.
검찰은 "심지어 공판에 출석하는 특별검사에 대해 수십 명의 경찰이 경호 중임에도 달려들어 폭력을 행사한 사람의 구속영장은 물론 통신영장, 계좌영장까지 기각해 공범 추적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일반적인 영장전담 판사들의 판단 기준과 대단히 다른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정농단이나 적폐청산 등과 관련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검찰의 사명을 수행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부연했다.
검찰은 "국민들 사이에 법과 원칙 외에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어 결국 사법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귀결될까 우려된다"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검찰은 영장전담 판사들의 이러한 입장에 굴하지 아니하고 국정농단이나 적폐청산 등과 관련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현재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엄정하고 철저하게 계속 수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원은 서울중앙지법에서 검찰 의견 발표 후 약 4시간 만에 '서울중앙지검의 영장 기각 관련 입장 표명에 대한 형사공보관실의 의견'을 내 반박 입장을 개진했다.
법원은 의견을 통해 "개별 사안에서 도망이나 증거인멸 염려 등 구속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데도 수사의 필요성만 앞세워 구속영장이 발부돼야 한다는 논리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영장전담 법관이 바뀌어서 구속영장 발부 여부나 결과가 달라졌다는 등의 발언은 심히 유감스럽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별 사건에서 영장재판 결과에 불만이 있다는 이유로 불필요하거나 도를 넘어서는 비난과 억측이 섞인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매우 부적절하다"며 "특히 금번과 같은 부적절한 의견 표명은 향후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는 저의가 포함된 것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밝혀 둔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법원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법관은 형사소송법 제198조에 정한 불구속 수사의 원칙 및 제70조에 정한 구속 사유에 따라 개별 사안의 기록을 검토하고 영장실질심사 재판을 거쳐 공정하면서도 신중하게 구속영장 재판을 수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간 법원과 검찰은 영장 발부·기각이나 선고 결과를 놓고 종종 갈등·대립 양상을 보여왔다.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는 윤석열 현 중앙지검장이 속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당시 박영수 부장)가 론스타 사건과 관련해 청구한 체포영장·구속영장 등 3건이 모조리 기각되자 반발한 바 있다.
한 검찰 간부는 "인분을 들이붓는 격"이라는 비난을 내놓았고, 수사팀은 기각된 영장을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재청구하기도 했다.
이 전 대법원장이 형사재판의 '공판중심주의'와 민사재판의 '구술변론주의'를 강조하면서 "검찰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라고 발언하자 당시 정상명 검찰총장은 지역 검찰청을 순시하는 일정 중 "이 뭐꼬?"라는 화두를 던지는 등 불편한 감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김건희 특별검사팀(특별검사 민중기)이 27일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부부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 의원과 그의 배우자 이모씨는 김 의원의 2023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선을 대가로 그해 3월 17일 김 여사에게 267만원 상당의 로저비비에 클러치백 1점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팀은 당초 통일교가 신도 2400명을 당원으로 가입시켜 권성동 의원을 당대표로 지지하려 했으나, 돌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지원 대상을 김 의원으로 바꿨고 이씨가 이에 대한 답례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팀은 지난달 6일 김 여사의 주거지인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에서 로저비비에 가방 2개를 압수했고 이씨의 이름이 적힌 구매 이력서 등을 토대로 가방의 가격을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서는 이씨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기현 의원의 당대표 당선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취지의 카드도 발견됐다. 여기에는 '2023년 3월 17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지난 17일 국회사무처를 비롯해 김 의원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한 뒤 이달 22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로 그를 조사한 바 있다. 김 의원의 배우자 이씨도 지난 5일과 이날 두 차례에 걸쳐 소환 조사했다. 특검팀의 수사 기간은 오는 28일로 종료되는 만큼 사건은 국가수사본부로 이첩해 추가 수사할 예정이다.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