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틱인베스트, VC부문 별도 자회사로 독립
“벤처캐피털(VC) 특유의 야성을 되살려 벤처 투자 명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겠습니다.”

토종 사모펀드(PEF) 운용사 스틱인베스트먼트가 회사의 모태인 VC부문을 자회사로 독립시키기로 했다. ‘사모투자(PE)부문의 그늘에 가려 VC 특유의 벤처 정신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도용환 회장(60·사진)의 판단에 따른 조치다.

도 회장은 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설 자회사는 창업 7년 미만의 초기 벤처기업에 주로 투자할 것”이라며 “2000년대 초 벤처 투자에 대한 기관투자가들의 신뢰를 스틱이 이끌어냈던 것처럼 초기 벤처기업 육성의 모범사례를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도 회장은 “지금이 한국 벤처산업이 부활할 적기”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벤처기업 없이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8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한국벤처투자 모태펀드에 배정하는 등 다른 어느 때보다 벤처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도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실리콘밸리도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앵커(핵심) 투자자로 나선 뒤 돈과 인재가 몰리면서 벤처 생태계가 조성됐다”며 추경을 통한 정부의 벤처 지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도 회장은 “온·오프라인연계(O2O) 서비스, 소셜미디어 등의 분야에서는 해외로부터 조 단위 투자가 들어오는 등 한국 벤처업계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시각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스틱은 신설 VC 법인의 자본금으로 200억원을 책정했다. 기존 VC부문이 보유하고 있는 투자 회사 포트폴리오와 함께 10여 명의 투자 인력을 신설 법인으로 보낼 계획이다. 바이오·의료부문 투자도 새 법인이 맡는다. 도 회장은 “벤처 투자는 철저히 리스크를 통제해야 하는 PE와 달리 때로는 통찰력과 감으로 속도감 있게 투자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며 “회사 내 PE 비중이 커지면서 함께 보수적으로 변한 VC부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독립시키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 회장은 “한국은 미국같이 벤처 투자로 ‘대박’이 나는 시장이 아니어서 스틱 정도 규모의 큰 VC는 초기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잘 투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소규모 VC들이 주로 투자하다 보니 초기 스타트업들을 제대로 성장시킬 역량이 부족했던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될성부른 초기 스타트업을 성장시키는 데는 꽤 많은 자본과 전문성이 필요하다”며 “스틱에는 자본력뿐 아니라 기술에 대한 이해도와 투자 시스템 등 유무형의 자산이 많이 축적돼 있다”고 강조했다.

도 회장은 “투자 대상 회사의 경영을 도와주는 스틱의 컨설턴트 조직 ‘오퍼레이션파트너스그룹(OPG)’이 초기 스타트업들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스틱에는 대기업 고위 임원을 및 비상근 오퍼레이션파트너가 각각 4명이 있다. 이들은 영업, 마케팅, 제조 공정 등 투자 대상 회사의 부족한 부문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도 회장은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스타트업들의 경영을 지원하는 인프라가 약하다”며 “스틱이 국내 VC의 역할을 재정립하겠다”고 말했다.

해외 투자 확대도 VC 강화와 함께 도 회장이 꼽은 스틱의 주요 과제 중 하나다. 그는 “현재 600조원인 국민연금 기금이 2022년에는 1000조원까지 늘어나지만, 해외투자 비중은 아직도 30% 미만”이라며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에서 새로 늘어나는 400조원은 대부분 해외에 투자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에 대한 대체투자는 글로벌 PEF 운용사에 맡기면 되지만 동남아 시장은 이들이 투자하기에 너무 작다”며 “스틱은 지난 8~9년간 베트남, 인도네시아, 대만, 중국 등지에서 16개 회사에 4466억원을 투자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현지에 투자 인프라를 갖추는 단계였다”며 “15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펀드를 연내에 조성해 본격적으로 해외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스틱은 향후 이 펀드 규모를 3000억원까지 키울 계획이다.

스틱은 1999년 400억원의 블라인드 벤처 펀드 조성에 성공하며 설립됐다.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거품 시기에 벤처기업에 별다른 리스크 관리 없이 뭉칫돈을 뿌려댔던 다른 VC들과 달리 철저한 리스크 관리로 살아남았다. 2006년에는 운용자산(AUM)이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18년간 총 19개의 벤처펀드를 운용했다. VC로 출발했지만 성장자본, 기업 인수합병(M&A), 특수상황 펀드 등 사모펀드 영역으로 사세를 확장해 토종 사모펀드의 ‘맏형’으로 불린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