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세계 투자자와 언론의 이목이 중국의 한 국유기업에 쏠렸다. 상하이증시와 홍콩증시에 동시 상장된 중국 2위 통신회사 차이나유니콤이다. 이 회사는 이날 민간기업이 대거 참여한 컨소시엄에 지분 35.2%를 매각하는 내용의 ‘혼합소유제’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국유기업 중 처음으로 혼합소유제 시행에 나선 것이다. 이에 힘입어 주가는 2015년 상반기의 역사적 고점 수준에 육박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국유기업 개혁에 속도가 붙고 있다. 혼합소유제를 도입한 첫 국유기업이 나온 데 이어 중앙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한 국유기업 수도 처음으로 두 자릿수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국유기업에 대한 정부 입김이 여전한 데다 기득권층의 반발도 적지 않아 개혁이 제대로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 국유기업에 민간자본 수혈… 시진핑의 '개혁 승부수' 통할까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중국 정부는 2013년 11월 18기 3중전회(공산당 18기 제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성장 침체의 돌파구로 국유기업 개혁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동안 경제 성장의 방점이 수요 확대(양적 성장)에 찍혀 있었다면 이제는 공급 개혁(질적 성장)을 통해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의도에서다.

중국의 경제 발전은 양적 성장을 통해 이뤄져 왔다. 정부가 적극적인 통화완화 정책과 재정 지원을 통해 시장 규모를 빠르게 키워나갔다. 자금을 받아든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서 수출 경쟁력을 키웠다. 국민의 소비력도 덩달아 높아졌다. 투자·수출·소비 삼두마차가 경제 성장을 이끈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업의 덩치는 커졌지만 자원과 인력,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과도한 투자로 산업계 전반에 과잉 생산 문제가 불거졌다. 국유기업이 주범으로 지목됐다. 중국의 국유기업은 15만 개가 넘는다.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대형 국유기업만 100개 가까이에 이른다. 국유기업의 총자산은 100조위안(약 1경6700조원)에 달한다. 중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을 웃도는 규모다.

국유기업 대부분은 관료적 기업문화, 비효율적인 경영 방식, 정치적 의사결정 등으로 경영 효율성이 떨어져 중국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적폐’로 지목됐다. “절벽에 내몰릴 때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는 국유기업 경영진의 나태함 탓에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당국이 하나하나 직접 가르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경제참고보)

민간 자본 수혈해 경쟁력 높인다

중국 정부는 국유기업을 개혁하기 위해 △혼합소유제 도입 △통폐합 △증시 상장 등 크게 세 가지 방안을 내놨다. 이 중 가장 중점을 둔 게 혼합소유제다. 민간 자본을 활용해 국유기업의 부채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고 시장 친화적이란 점에서 시장에서도 환영했다.

혼합소유제의 목표는 실적이 부진한 국유기업에 민간 자본을 투입함으로써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것이다. 차이나유니콤이 첫 대상 기업으로 선정된 이유는 차이나모바일과 차이나텔레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보다 96%나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7억8000만위안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74.3% 늘었지만 1위 통신사 차이나모바일의 같은 기간 순이익 627억위안의 1.2% 수준에 그쳤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차세대 먹거리 발굴에도 가장 뒤처져 있다는 평가다.

차이나유니콤은 14개 기업으로 이뤄진 컨소시엄에 지분 35.2%를 매각해 780억위안을 조달했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징둥닷컴 등 중국의 대표 정보기술(IT) 기업과 차량공유 서비스 기업 디디추싱, 가전 유통업체 쑤닝 등이 투자에 참여했다. 차이나유니콤은 투자받은 자금을 활용해 통신 품질을 개선하고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차이나유니콤 외에도 전력, 석유, 천연가스, 철도, 항공, 군수 등 분야를 혼합소유제 시범 분야로 선정했다. 동방항공(항공사), 중국선박(선박제조), 중화국제(석유) 등이 다음 대상에 올라 있다. 혼합소유제 도입을 지원하기 위한 펀드도 설립할 계획이다.

통폐합으로 과잉 생산·과당 경쟁 줄인다

또 다른 축은 석탄, 철강, 에너지, 조선, 건설 등 과잉 생산 분야 국유기업을 통폐합하는 것이다. 개혁을 총괄하는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는 2015년부터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국유기업 합병을 적극 추진해 왔다.

바오산강철과 우한철강, 중국핵공업그룹(CNNC)과 중국핵공업건설그룹(CNEC), 중국원양해운(COSCO)과 중국해운(CSCL)의 통합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엔 최대 석탄회사 선화그룹이 5대 전력기업에 속하는 궈뎬그룹을 인수해 자산 1조8000억위안 규모의 세계 최대 에너지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중국 3대 국유자동차 회사인 디이자동차와 창안자동차, 둥펑자동차의 합병도 거론되고 있다.

지속적인 통폐합으로 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한 중앙 국유기업 수는 2014년 112개에서 현재 98개로 줄었다. 국유기업 수가 두 자릿수로 감소한 것은 처음이다. 국유자산관리위는 올해 말까지 중앙 국유기업 수를 80개까지 줄일 계획이다. 또 국유기업을 산업공사, 투자공사, 운영공사 등 세 개 분야로 재편할 방침이다.
중국 국유기업에 민간자본 수혈… 시진핑의 '개혁 승부수' 통할까
개혁 효과에 대해선 의견 엇갈려

중국 내 전문가들은 차이나유니콤 투자에 참여한 민간기업 대부분이 IT 관련 기업인 만큼 혼합소유제가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차이나유니콤은 텐센트와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선전과 항저우에 연구센터를 설립해 5G 이동통신, IoT, 빅데이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실패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다음달 18일 열리는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나온 무리한 공적 쌓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차이나유니콤의 지배구조가 사실상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지분 10.2%를 사들인 차이나라이프가 국유 생명보험사인 점을 감안할 때 혼합소유제 도입 이후에도 정부 지분은 50% 가까이 된다.

그동안 국유기업을 통해 이익을 독차지해 온 기득권들의 반발도 거세다. 공산당이 국유기업의 인사권을 독점하고 고위 공무원들이 최고경영자(CEO)를 돌아가며 맡았던 관행을 감안할 때 개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언론들은 국유기업 책임자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해 개혁에 소극적이거나 심지어 개혁을 방해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최근 서부의 한 국유기업에서 혼합소유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업 책임자가 고의로 구조조정 작업을 방해한 사실이 드러났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