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국과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갈등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산업 분야는 단연 자동차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내 판매량은 1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고, 판매 부진에 납품 대금 지급이 늦어지자 협력업체가 아예 납품을 거부, 현대차 중국 공장이 일제히 멈춰 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 현대·기아차 상반기 中 판매 '반토막'…7월도 40%↓

30일 현대·기아자동차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중국 판매량은 모두 43만947대(현대차 30만1천277대·기아차 12만9천670대)로, 지난해 상반기(80만8천359대)보다 52.3%나 줄었다.

판매 감소의 모든 원인이 '사드'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업계는 상당 부분 사드 갈등에 따른 '반한(反韓)', '반한국기업' 정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수개월째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7월에도 현대·기아차는 중국에서 7만17대(현대차 5만15대·기아차 2만2대)를 파는 데 그쳤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 판매량(11만1천21대)보다 37% 줄어든 규모다.

업체별로는 1년 전과 비교해 현대차의 7월 판매량이 7만16대에서 5만15대로 28.6% 감소했고, 기아차도 4만1천500대에서 2만2대로 51.22% 줄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감소 폭은 다소 줄었지만, 비수기 등 영향으로 작년 7월 실적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 기준 자체가 낮은 '기저효과' 영향이 크다"며 "감소 폭이 8월에도 줄어들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7월 중국 시장 점유율(4.3%)도 6월(3.2%)보다는 1.1%p 올랐지만, 지난해 12월(9.1%)과 비교하면 여전히 절반 아래에 머물고 있다.

◇ 동반 진출 120개 협력업체도 '위기'

현대·기아차의 부진은 고스란히 협력업체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모임인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서는 145개 우리나라 업체(조합 회원사 중)가 289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인 120여개 업체가 현대·기아차와 함께 중국에 동반 진출한 업체다.

하지만 최근 이들 중국 현지 공장 가동률은 50% 이하로 하락해 매출뿐 아니라 고정비 대비 수익성도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협동조합은 지난 9일 성명에서 "인력 감축, 비용 절감 등 자구책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기술인력 유출 등 미래 경쟁력 약화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경영난을 호소했다.

신달석 자동차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중국 사업이 가장 어려운데, 이익이 문제가 아니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CEO(최고경영자)들 사이에서도 "중국과 미국 공장 가동률이 각각 50%, 15% 떨어졌다", "2·3차 협력업체 중에서는 이미 부도난 곳들이 있고, 1차 협력사도 부도 위기를 겪고 있다", "경영난에 최근 2~3년간 수차례 인력 감축까지 단행했다"는 등의 하소연이 잇따르고 있다.

◇ 현대차 中공장 '스톱'…하루 약 2천대 생산차질

이런 한국 자동차 산업의 '중국발(發) 위기', '한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베이징현대 4개 공장의 가동 중단이다.

현지 언론과 현대차에 따르면 베이징현대의 베이징(北京) 1∼3공장, 창저우(常州) 4공장 등 4개 공장의 생산이 부품 공급 차질로 중단됐다.

플라스틱 연료탱크 등을 공급하는 부품업체 베이징잉루이제가 납품 대금이 밀리자 아예 납품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약 2만 개의 부품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부품 하나만 공급이 안 돼도 차량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다.

베이징잉루이제가 베이징현대로부터 받지 못한 대금은 지난 25일 기준으로 1억1천100만 위안(약 189억 원)으로 알려졌다.

최근 완공된 베이징현대의 충칭(重慶) 5공장이 아직 본격적으로 가동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사실상 판매 부진 여파로 중국 진출 이래 처음으로 현대차의 중국 내 공장이 모두 멈춰 선 셈이다.

베이징현대는 2002년 현대자동차와 북경기차공업투자유한공사가 50대 50대의 지분을 투자해 세운 합자 기업이다.

중국이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처음 중앙정부로부터 정식 비준을 받은 자동차기업이기도 하다.

베이징현대의 중국 현지 공장의 생산능력은 ▲ 베이징 1공장(2002년 가동) 30만대 ▲ 베이징 2공장(2008년) 30만대 ▲ 베이징 3공장(2012년) 45만대 ▲ 창저우 4공장(2016년) 30만대 ▲ 충칭 5공장(2017년내 가동 예정) 30만대 등이다.

이들 공장은 ix25, 투싼, 쏘나타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번 1~4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생산 차질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대차의 중국 판매량이 중국 현지 생산량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7월 판매량(약 5만대)을 기준으로 추산할 경우 최소 하루 2천 대(한 달 25일 가동 가정)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한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189억 원이 없어서 납품 대금을 미루다가 중국 생산 차질을 빚었나"라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지만, 합자회사 베이징현대의 의사 결정 구조를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50대 50 합자 기업으로 현대자동차만의 의사 결정이 불가능하다"며 "더구나 생산 쪽은 현대차가, 재무 등의 부문은 북경 기차 공업투자유한공사가 주도권을 갖고 있어 납품 대금 지급 등과 관련한 파트너(북경기차)의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올해 중국 내 판매 목표를 당초 125만대에서 80만대로 낮췄으나 공장 가동 중단 기간이 길어질 경우 이 역시 달성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윤보람 기자 shk999@yna.co.kr, bry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