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東芝)가 SK하이닉스 측 대신 미국 반도체 업체 웨스턴 디지털(WD) 진영에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 메모리를 매각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매각 절차의 적정성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27일 외신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아사히신문은 이날 도시바가 '도시바 메모리'를 당초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했던 '한미일 연합' 대신 WD가 포함된 '신(新)미일연합'에 매각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양측은 도시바 메모리에 대한 WD의 의결권을 3분의 1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조건으로 계약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WD는 도시바와 제휴관계를 맺어온 회사다.

도시바의 주력 공장인 미에(三重)현 욧카이치(四日市) 공장에 공동으로 설비투자를 하고 운영해왔다.

도시바와 WD 측은 협상을 거쳐 이달 내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매수액은 2조엔(약 20조5천422억원) 선으로 전해졌다.

WD는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회사채(전환사채)로 도시바 메모리에 1천500억엔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환사채가 나중에 주식으로 전환되면 WD는 의결권 기준으로 도시바 메모리 지분 약 16%를 보유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지분율을 낮춘 것은 WD가 인수 대상과 같은 반도체 업체인 만큼 독점금지법 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전략으로 알려졌다.

보도대로 계약이 진행될 경우 당초 우선협상대상자로 뽑혔던 한미일 연합, 즉 베인캐피털과 SK하이닉스 진영은 결국 계약에서 배제된다.

그렇다 해도 우선협상대상자 지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행위여서 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처럼 매끄럽지 못한 매각 계약의 진행 과정을 두고 반도체 업계에서는 뒷말이 많다.

우선 한미일 연합 측과의 협상에서 딜 브레이커(협상의 결렬 요인)가 된 것으로 알려진 SK하이닉스의 의결권 요구(전환사채로 출자)가 애초부터 제안서에 있던 요구사항이란 점이다.

이미 이런 조건을 알면서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놓고 사후에 이를 문제 삼아 결국 최종 계약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다.

오랜 제휴관계였던 WD와의 관계를 매끄럽게 정리하지 못해 매각 과정 내내 송사가 불거지는 등 불안요소로 작용하도록 한 것도 글로벌 기업답지 않은 처사로 지적된다.

WD는 도시바에 자신들에게 우선 매입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다가 여의치 않자 미 캘리포니아고등법원에 매각중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갈등을 빚었다.

또 우선협상대상자를 제쳐놓고 다른 사업자와 계약하기로 합의했다는 언론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지만 정작 우선협상대상자 쪽에는 이런 사실을 통보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거래 관행상 최소한의 도의마저 지키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도시바의 이번 반도체 사업 부문 매각 과정을 보면 일반 국제 상거래의 관행이나 상식에 어긋나는 대목이 수두룩하다"며 "글로벌 기업에 걸맞지 않은 처신"이라고 말했다.

도시바가 WD 측과 매각 계약을 한다면 SK하이닉스의 도시바 반도체 인수는 물 건너가게 된다.

이 경우 '낸드플래시의 원조'이자 세계 2위 낸드플래시 업체인 도시바와의 제휴를 통해 낸드플래시 분야 경쟁력을 키우려던 SK하이닉스의 구상은 물거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시바와의 제휴를 통해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되는 낸드 시장에서 입지를 확장하려던 SK하이닉스의 사업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