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미당 서정주 전집》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전집 편집위원을 맡은 최현식 인하대 교수, 이경철 문학평론가, 이남호 고려대 교수, 전옥란 작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  은행나무 제공
21일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미당 서정주 전집》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전집 편집위원을 맡은 최현식 인하대 교수, 이경철 문학평론가, 이남호 고려대 교수, 전옥란 작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 은행나무 제공
“정치는 짧고 예술은 깁니다. 긴 역사 속에서 다른 것들은 사라지더라도 미당의 문학은 훌륭한 문화예술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이남호 고려대 교수)

친일과 예술 사이…"서정주, 읽고 나서 비판하라"
미당 서정주(1915~2000·사진)의 문학세계를 집대성한 《미당 서정주 전집》(은행나무)이 20권으로 완간됐다. 전집은 시·산문·시론·방랑기·민화집·소설 등 10대부터 80대까지 서정주가 생전 68년간 남긴 글들을 담았다. 미당의 제자이자 전문 연구가인 이남호 교수, 이경철 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 전옥란 작가, 최현식 인하대 교수 등 다섯 명의 편집위원이 자료 수집부터 교정까지 맡아 5년간 작업했다.

21일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전집 완간 기념 간담회에서 이 교수는 서정주를 두고 “겨레의 고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시인”이라고 평했다.

그는 “한 시인이 특출난 시집 한 권을 내면 ‘한국 문학사의 별’이라고 표현하는데 미당은 별이 정말 많이 모인 안드로메다 성운 같다”며 “이렇게 폭넓고 다양한 아름다움을 보여준 한국의 문학 예술인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전 작가는 “특히 ‘시전집 1~5권’이 압도적 완성도를 자랑한다”며 “정본 950편을 담아 한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로 평가되는 그의 시집들의 전모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집에서는 시인으로서의 서정주뿐 아니라 문장가로서의 섬세한 감성도 확인할 수 있다. 전집 11권에는 본인 시의 탄생 비밀을 스스로 서술해 놓은 산문이 수록돼 있다. 스스로 자신의 시에 대한 해설을 쓴 셈이다.

20권의 전집 중엔 서정주가 쓰지 않은 글이 단 한 편 있다. 전집 9권에 수록된 황순원이 서정주에 대해 쓴 4행시다. 시인인 서정주가 황순원에 대해 쓴 산문의 ‘답가’다. 이 밖에 세계 여행 방랑기(14·15권), 세계의 민담을 각색한 옛 이야기(16·17권)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서정주는 가미카제 특공대에 투입된 조선인 청년을 미화한 ‘마쓰이 오장 송가’를 쓰는 등 친일 행적을 비판받아왔다. 일부 문인단체는 미당문학상 등 그의 업적을 기리는 문학상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송경동 시인은 지난달 미당문학상 후보에 오른 것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서정주 시인의 정치적,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면서도 서정주가 이룩한 문학적 미학이 퇴색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약점이 있던 사람”이라며 “만약 미당이 《화사집》 한 권만 남기고 20대에 요절했다면 ‘애비는 종이었다’는 한 문장만으로 전설적인 시인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생일에 축시를 써 바치는 등 5공 군사정권을 찬양했다는 지적에 대해 이 평론가는 “생래적으로 너무 단순하고 순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변호했다. 그는 “생전에 5공 문제에 대해 물었더니 ‘깡패 같은 사람을 치켜세워주면 사람을 덜 때리고 덜 죽일 것 같아서 그랬다’고 답했다”며 “오히려 ‘정치적 무뇌아’에 가깝다”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