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도, 중청도, 매바위 등 외연열도의 섬들이 마치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역동적이다.
대청도, 중청도, 매바위 등 외연열도의 섬들이 마치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역동적이다.
2000년 전 중국의 장군과 군사 500명이 망명해 살던 한국의 섬. 그 장군을 여전히 수호신으로 모시는 섬. 충남 보령의 외연도 이야기다. 대천항에서 서쪽으로 53㎞ 떨어진 외연도는 충남 보령시 70여 개 섬 중 가장 먼 곳에 있다. 해가 지는 서쪽으로 더 가면 중국이다. 외연도는 청섬, 작은청섬, 수수떡섬, 밧갱이, 느래 등 10여 개 섬과 무리를 이루고 있다. 내내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섬 둘레길은 외연도 여행의 백미다. 외연도 둘레길은 망재산 등산로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초입은 조금 가파르지만 산정까지는 20분이면 충분하다. 망재산 뒤안을 돌아 고래의 성기처럼 불쑥 솟아 있는 ‘고래조지’ 길을 빠져나오면 길은 당산으로 이어진다. 당산은 마을 쪽 초등학교 옆길로 가면 더 쉽게 오를 수 있다.
[여행의 향기] 2000년전 망명한 중국 장군을 '풍어의 신'으로 모시고…신령한 기운을 뿜어내는 고목들은 '외연도의 전설' 을 속삭이는데…
풍어의 신 전횡장군 이야기 담긴 섬

3만㎡ 규모의 아담한 당산은 동백나무, 후박나무, 팽나무 등 고목들이 내내 신령한 기운을 뿜어낸다. 나무로 연료를 쓰던 시절 섬들은 나무가 늘 부족했다. 그럼에도 이 나무들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산이 지닌 신성함 때문이었다. 당산은 두려움의 대상이고 경외의 대상이었다. 추위에 떨며 잘지언정 당산의 나무에는 손끝 하나 댈 수 없었다. 대체 이 당산의 수호신은 누구일까. 어청도의 치동묘에서도 모시는 바로 그 전횡장군이다. 전횡은 연평도의 임경업 장군이나 추자도의 최영 장군이 그렇듯이 외연열도 풍어의 신이다.

전횡은 진나라 멸망 뒤 제나라를 세워 항우, 유방과 맞선 제나라 왕 전영의 동생이자 잠깐 제나라 왕이 된 인물이다. 결국 전횡은 천하통일을 이룬 한나라 황제 유방에게 패배해 오호도(嗚呼島)란 섬으로 망명했으나 유방의 소환을 받고 한나라 수도 낙양으로 가던 중 유방에게 고개 숙일 수 없다며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전횡의 자결 소식을 듣고 섬에 남아 있던 그의 부하 500명 또한 뒤따라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전횡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에 소개된 뒤 천고의 미담이 됐다. 그래서 전횡은 충절의 상징으로, 그의 부하들은 의리의 상징으로 추앙받아 왔다. 전횡의 부하들이 “오호(嗚呼)!”라고 탄식하며 자결했다 해서 전횡이 머물던 섬은 오호도란 이름을 얻었다.

당나라의 한유(韓愈)는 ‘제전횡문(祭田橫文)’을 지어 애도했고 고려의 정몽주, 정도전 등 수많은 사람이 전횡을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고려 말의 문장가 이숭인도 ‘오호도’란 시를 써서 전횡을 기렸다. 이숭인의 시에는 오호도가 동해에 있다고 했다. 중국의 동해는 한국의 서해, 곧 황해를 이른다. “오호도는 동해바다 한복판에 있노니/푸른 물결 아득한데 한 점 새파랗구나.”

전횡의 사연은 서산읍지인 《호산록》(1619)이나 1936년 건립된 전횡 사당의 전공사당기(田公祠堂記)에도 기록돼 있다. 전횡의 이야기는 또 외연도 인근 어청도에 전해진다. 이 지역 섬 사람들은 전횡이 머물던 오호도가 자신의 섬이라 믿고 있다. 어청도의 전설은 전횡이 해적질로 연명했다고 전한다. 전횡이 어청도 서방산 정상에 올라 쇠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지나가는 배들을 어청도로 유인한 다음 선박을 탈취해 살아갔다는 것이다.

외연도 부근의 섬 녹도에도 비슷한 전설이 전해진다. 전횡은 쇠부채를 이용해 세곡선을 섬으로 끌어들여 주민들에게 쌀을 나눠 준 뒤 세곡선은 불살라 버렸다 한다. 중국의 지모시(墨市)에도 전횡의 전설이 깃든 전횡도(田橫島)라는 섬이 있다. 칭다오(靑島) 10경 중 하나로 꼽히는 황해(黃海)의 섬이다. 전횡도에는 전횡 일가를 배향한 제왕전(齊王殿)까지 있다. 외연도, 어청도, 녹도, 전횡도가 다 오호도인 것이다.

전횡장군 사당은 마을 신전인 당집이다. 이 당집에서는 아직도 해마다 2월15일에 당제가 모셔진다. 14일 저녁이면 옛 풍습대로 제주로 뽑힌 남자들만 신전에 올라 제사 준비를 한다.이곳에서 당제에 쓸 소를 직접 잡는다. 당제가 남아 있는 섬들 중에서도 아직까지 당산에 올라 직접 소를 잡아 바치는 곳은 아마도 외연도가 유일할 것이다.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토종 홍합 합자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토종 홍합 합자
전횡장군 기리는 당집과 당제도 열려

그런데 2000년 전 중국의 왕이자 장군이던 전횡의 이야기가 어째서 한국의 섬들까지 그토록 널리 퍼져 있으며 풍어의 신으로도 모셔지고 있는 걸까. 정말로 전횡과 500명의 군사가 2000년 전 한국의 섬에서 망명 생활을 했던 것일까.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하나의 추론은 가능하다. 전횡이 망명한 오호도가 결코 하나의 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 군사를 피해 달아난 전횡과 군사들은 어느 특정한 섬이 아니라 황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활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의 섬들에서 전횡 이야기가 동시에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기원전 3000년부터 지중해의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발달한 크레타, 미노스 문명의 선박들이 바다를 누빈 것을 생각하면 2000년 전 황해는 500명의 군사를 거느린 장군에게는 그리 큰 바다가 아니었을 것이다. 전횡은 중국과 한국 섬들을 장악하고 한나라에 반격을 준비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것은 혹시 아닐까. 전횡 장군 이야기는 고대 황해의 해양사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전횡장군 사당은 마을 신전인 당집이다. 이 당집에서는 아직도 해마다 2월15일 당제가 모셔진다. 14일 저녁이면 옛 풍습대로 제주로 뽑힌 남자들만 신전에 올라 제사 준비를 한다. 제주는 부정을 타지 않은 남자 중에서 뽑는다. 당집 옆 건물에서 제관이 머물며 제물을 준비한다. 이곳에서 당제에 쓸 소를 직접 잡는다. 옛날에는 제법 규모가 큰 당제인 경우 대부분 제주가 직접 소를 잡아 바쳤지만 그 풍습은 거의 소멸되고 말았다. 당제가 남아 있는 섬 중에서도 아직 당산에 올라 직접 소를 잡아 바치는 곳은 아마도 외연도가 유일할 것이다. 대부분 정육점에서 사다가 바친다. 당제의 전통이 이처럼 잘 살아 있는 곳은 드물다. 그만큼 당집이 주민들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이다. 아무리 과학 기술문명이 발달하고 레이더나 위성항법장치(GPS)가 바닷길의 안내자가 됐다 해도 불안을 잠재울 수는 없다. 바다는 늘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연리지 나무의 감동적인 사연
당산 초입에 있는 고목(古木)
당산 초입에 있는 고목(古木)
생사가 한순간인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당제는 여전히 큰 역할을 한다. 보험 하나 더 들어서 나쁠 것 없지 않겠는가! 150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섬에 80척이나 되는 어선이 있으니 섬은 전적으로 바다에 의지해 살아간다. 늘 위험한 먼 바다에서 조업하는 이 어선들이 당제를 지탱시켜온 힘이다. 전통은 돈벌이를 통해 전승된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무심하다. 폐허만 남은 타국의 신전들은 열심히 찾아다니면서도 정작 2000년을 이어 현존하는 우리 전통신의 신전은 존재조차 모른다.

10여 년 전 이 당산에 처음 왔을 때 전횡 사당에 얽힌 이야기 못지않게 감동스러웠던 것은 동백나무 연리지였다. 일명 사랑나무. 하지만 2010년 곤파스 태풍에 일격을 당한 뒤 나무는 고사하고 말았다. 그 사연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쓸쓸하다. 곁에 있는 다른 나무들이 하나로 이어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이 연리(連理)다. 연리는 동종의 나무끼리만 가능하다. 연리지뿐만 아니라 연리목도 있다. 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 몸통이 이어지면 연리목이라 한다. 연리가 되는 과정은 지극히 고통스럽다.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연리가 되는 나무끼리 맞닿아 자라다 보면 서로의 생살이 닿은 부분은 압박 때문에 살가죽이 벗겨진다. 그 생살이 찢기는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나무들은 점차 합체돼 간다. 부피 성장이 먼저 일어나고 뒤이어 유세포(柔細胞)가 하나로 섞인다. 연리가 완성된 나무들은 양분과 수분을 공유한다. 광합성도 함께한다. 진짜 하나의 나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외연도 당산의 동백나무 연리지는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연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연리지 같은 사랑을 꿈꾸지 않는 이 누가 있으랴. 이제 더 이상 연리지는 없다. 연리지 곁에 와서 사랑의 맹세를 하고 간 그 많은 연인은 다 어찌 됐을까. 태풍에도 무사했을까?

풍어제 때 임산부는 피신해야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섬 둘레길.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섬 둘레길.
당산을 빠져나오면 길은 큰명금, 작은명금, 돌삭금해변으로 이어지다가 봉화산 약수터 부근에서 둘레길과 등산로 두 갈래로 갈라진다. 이 길은 두서없이 평지에까지 깔아놓은 방부목데크가 한심스러울 정도다. 예산 낭비의 전형이다. 나그네는 등산로 대신 노랑배 방향 둘레길로 접어든다. 평탄한 숲길을 걷다 보면 숲속에 갑자기 돌담의 흔적이 나타난다. 해막이 있던 자리다. 해막이란 일종의 피난처다. 외연도만이 아니라 많은 섬과 해안가 지역에서 있던 풍습이다.

과거 섬이나 바닷가 지방에서는 여성과 관련된 금기가 유난히 많았다. 해막 또한 이런 여성 금기의 산물이다. 외연도에서는 마을 대동제인 당제(풍어제) 때가 되면 임산부를 당산 신의 관할권 밖인 이 해막으로 피신시켰다. 피부정을 방지한다는 이유였다. 출산이 임박한 경우 출산까지 가능하도록 시설을 만든 까닭에 피막 혹은 산막이라 부르기도 했다. 임산부가 피하지 않아 그해 마을에 재앙이 일어나면 그 책임을 옴팡 뒤집어쓰게 되기 때문에 이 금기는 철저히 지켜졌다. 풍어제 기간에는 마을 사람 누구도 이 해막에 갈 수 없었다. 철저히 고립된 공간, 그래서 임산부에게 시급히 전해야 할 소식이라도 있으면 멀리서 소리를 질러 전달했다. 피막에는 임산부를 돌봐줄 산파도 함께 따라갔다. 산파는 해막할매라 불렸고 해막에서 출생한 아이는 ‘해막동이’라 했다.
봉화산 둘레길 노랑배 앞 바다 무인도
봉화산 둘레길 노랑배 앞 바다 무인도
해막을 벗어나면 다시 탁 트인 바다가 황홀하게 펼쳐진다. 당산 아래 바닷가에 날카롭게 솟아오른 바위섬은 매바위와 상투바위다. 매바위는 영락없이 매부리처럼 생겼다. 상투바위는 암만해도 권력자의 상투는 아니다. 부정한 세상을 뒤엎으려던 혁명가의 상투 같다. 그래서일까. 저 상투는 한양으로 압송되던 전봉준 장군의 상투와 비슷해 보인다. 과거 섬들은 늘 반역의 땅이 아니었던가! 아 그런데 갑자기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섬이 움직인다. 소청도, 중청도가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빛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섬은 마치 달팽이처럼 혹은 거북이처럼 기어가는 듯하다. 섬 또한 움직이는 생명체란 진리를 깨닫게 해 주는 장엄한 풍경이다.

여행 정보

외연도로 가는 관문은 충남 보령의 대천항이다. 대천항 어시장은 쏟아져 들어오는 수산물과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늘 활력이 넘친다. 수협 어판장에는 경매가 끝난 생선이 산처럼 쌓여 있고 횟집 수족관마다 철 만난 물고기들이 철없는 물고기들과 뒤섞여 팔려나가길 기다린다. 대천어시장은 외연도 여행길 전후에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섬들은 실상 해산물이 풍부하지 않다. 어선이 대부분 뭍으로 나가 팔기 때문이다. 요즘은 자연산 광어나 도미 회 정도가 먹을 만하다. 겨울이 돼야 토종 홍합인 합자를 맛볼 수 있다. 그래도 민박이나 식당의 음식은 내륙의 어떤 음식점 못지않게 맛깔스럽다. 외연도행 여객선은 오전 8시와 오후 2시, 두 차례 운항한다. 나오는 시간은 오전 10시15분과 오후 4시15분. 외연도에는 민박이 제법 많다. 그래도 사전에 알아보고 예약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여객선 예약이 필수다. ‘가고 싶은 섬’ 사이트에서 예약할 수 있다.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 ≪섬을 걷다≫ ≪바다의 노 스텔지어, ≪파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