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인식을 바꾸고 싶다며 돼지 농장에 꽃과 나무를 심는 축산 농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아름다운 농장 만들기’ 운동이다. 경기 포천 이동면에서 만난 곽창선 그린농장 대표는 이 캠페인을 이끌고 있는 대표 농부 중 한명이다. 2006년부터 매년 한 두 그루씩 나무를 심었다는 그와 함께 농장 앞 정원에서 인터뷰를 했다.
◆아름다운 농장을 가꾸는 사람
곽 대표의 정원은 100평(330㎡) 규모다. 곽 대표가 운영하는 농장은 300평(991㎡). 농장의 3분의1 가량에 잔디와 나무, 꽃을 심었다. 봄이면 철쭉이 만개하고, 여름엔 녹음이 짙어진다. 대규모 돼지 농장들이 사료를 키울 목적으로 목초지를 두는 경우는 있지만 돼지를 키우는 것과 관련이 없는 나무와 꽃을 심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곽 대표는 이 정원을 9년간 조성했다. 첫해엔 울퉁불퉁한 도로를 포장했고 이듬해엔 잔디를 깔았다. 소나무 등 나무도 1년에 한 두 그루씩 심었다. “누구나 돼지들이 푸른 초장에서 뛰노는 걸 꿈꾸지만 축산의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양돈업을 시작한 2006년부터 현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좀 더 깨끗한 환경을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매년 나무를 심었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조금씩 더 개선해보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농장 가꾸기 사업은 2005년 포천 지역에서 축산 농장을 운영하는 농민들의 소규모 모임에서 시작됐다. 곽 대표는 이 캠페인의 초기 멤버다. 그는 “처음엔 지역 축산인 20여명이 시작한 사업”이라고 소개했다. 꽃을 좀 심어볼까 했는데 대량 구매를 하면 좀 싸게 살까 싶어서 시작했단다.
주변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고 한다. 곽 대표는 “꽃을 심으니 ‘눈으로 보는 냄새’가 없어졌다”고 했다. “환경이 지저분하면 냄새가 더 난다고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지역 주민들이 돼지 농장에 꽃이 있는 걸 보고 냄새가 상당히 줄어든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환경을 계속 개선해 심리적인 냄새를 없애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영상의 이점도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곽 대표는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원에서 휴식하며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돼지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직원들이 축사 내 환경도 바깥에 있는 정원만큼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이 사업은 전국적으로 퍼졌다. 2008년 경기도가 지원에 나섰고 2013년엔 농식품부와 한돈협회가 함께 나무심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최근엔 산림청도 합세해 냄새를 줄일 수 있는 나무인 철쭉과 주목을 집중적으로 심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린농장은 2016년 친환경축산농장 사진전에서 돼지농장으로는 유일하게 상을 받았다. 곽 대표는 “일반적인 정원을 생각하면 그리 아름답지 않았겠지만 돼지농장 치고는 괜찮았던 모양”이라며 쑥스러워했다. ◆서울 토박이의 친환경 축산 도전기
축산 분야에는 후계 축산인이 많다. 축산이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신규 창업이 쉽지 않은 게 이유다. 아버지의 축사를 갖고 있어야 사업 진입이 쉽다는 얘기다. 하지만 곽 대표의 부친은 축산업과 무관하다. 그의 고향도 서울이다. 돼지를 키우는 일과는 거리가 먼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축산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에 진학한 후부터다. 축산학과에 들어갔고 전공을 살려 사료 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니까 그는 회사원이었다. 1993년 입사해 2006년까지 14년을 다녔다. 곽 대표는 농장을 돌며 사료를 파는 일도 나쁘진 않았다고 했다. “40세가 되고 삶을 돌아보니까 뭔가 선택을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료회사에 남아 열심히 일해 임원이 되느냐, 나만의 사업을 해보느냐의 기로에서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6년 양돈업에 뛰어들었다. “결국 배운 게 돼지더라고요. 다른 사업보다는 양돈업을 하는 게 여러가지로 쉬웠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며 모은 자금으로 지금의 그린농장을 인수했다. 그가 지은 이름은 팜스린그린농장. FARM과 이웃 린(隣)자를 합쳐 이웃과 함께하는 농장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곽 대표는 “사료회사를 다니며 해외의 우수한 농장을 돌아다니고 국내 축산농가들의 노하우를 곁눈질로 배운 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린농장은 현재 어미돼지 280두를 보유하고 있다. 연간 출하두수는 3500두 정도다. 국내 농가 규모로 보면 중간보다 약간 큰 정도다. 생산된 고기는 하이포크 브랜드로 팔린다.
아름다운 농장 가꾸기 이상으로 그가 신경을 쓰는 것은 HACCP(해썹)과 무항생제 인증이다. HACCP은 관리 매뉴얼을 갖추는 것을 뜻한다. 전국 돼지 농가 중 28%가 이 인증을 받았다. 무항생제 인증은 출하 당시 항생제가 체내에 남아있지 않아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항생제를 끊지는 못해도 항생제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곽 대표는 “불가피하게 항생제를 투여하더라도 항생제 성분이 남아있지 않다는 확인을 받은 후 출하한다”며 “좀 더 건강한 고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축사의 환경 개선에도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2013년부터 매년 한 대씩 설치한 에어컨이 대표적이다. 곽 대표는 “여름철 더위와 습기로 돼지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에어컨을 설치해 축사 내 기온을 27~28도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원이 있는 돼지 농장’. 말로는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체험목장 같은 쾌적한 환경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냄새를 줄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냄새는 난다. 곽 대표도 인정한다. “축사에서 냄새가 안날수는 없어요. 이렇게 더운 날은 더 심할 수 밖에 없고요. 냄새를 아예 없애는 건 불가능한 산업이지 않을까요.”
그는 그러나 “이렇게 노력을 쌓으면 조금씩 변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는 한번에 나무 수 십 그루를 심어서 뚝딱 정원을 만든 게 아니에요. 차근차근 돈이 생길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바꿔나갔어요. 에어컨 설치도 그랬죠. 2013년에 한대, 2015년, 2016년에 각각 두 대를 샀어요. 계획을 세웠다면 일단 시작해야 해요. 무리하지 말고 차근차근 힘 닿는 데까지 하는 거죠. 대신 그 노력을 중단하면 안됩니다. 저도 계속 노력해서 더 아름다운 정원을, 더 깨끗한 축사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포천=FARM 강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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