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대출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곧 내놓을 예정이다.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투기 세력이 아님에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아파트 매매계약을 맺었지만 중도금·잔금 대출을 대책 시행일 이전에 미처 신청하지 못한 실수요자들의 자금조달에 다소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8·2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의 대출한도를 확 조인 것이다. 이들 지역의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예외 없이 40%로 낮아지고, 다주택자의 LTV·DTI 한도는 30%까지 강화된다. 이 규제를 적용 받지 않으려면 지난 2일까지 은행 등 금융회사에 중도금·잔금 대출 신청을 하면 된다. 3일 이후 대출 신청자는 강화된 LTV·DTI를 적용받는다.

은행들은 투기지역에 대해 대책 발표 이튿날인 3일부터 LTV·DTI 한도를 40%로 낮추기 시작했다. 일부 은행은 투기과열지구 LTV·DTI 한도도 40%로 일괄 인하했다. 현행 금융감독규정상 투기지역으로 지정되면 곧바로 LTV·DTI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혼란이 일었다. 투기지역 내 아파트 매매계약을 체결했지만 2일까지 대출을 신청하지 못한 실수요자 사이에서 불만이 폭주했다. 지난 6월 말 전세 5억원을 낀 서울 목동의 10억원짜리 아파트 매매계약을 체결한 이모씨가 그런 사례다. 이씨는 잔금을 8월 말에 치를 예정이어서 대출신청을 하지 않았다가 3일부터 LTV·DTI가 40%로 강화된 것을 알게 됐다. 매매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LTV가 60%여서 1억~2억원을 대출받아 잔금을 치를 생각이었는데, 대출규제 강화로 자금조달이 불가능해졌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이씨와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감독규정의 예외조항을 폭넓게 적용할 예정”이라며 “현재 시장에서 제기하는 피해 사례를 정밀분석해 예외 대상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강화된 대출규제 예외 적용기준을 ‘8월2일 이전까지 대출신청을 한 차주’가 아니라 ‘8월2일 이전 매매계약 체결자’로 정할 예정이다. 지난 2일까지 대출신청을 하지 않았더라도 매매계약을 그 이전에 했다면 중도금·잔금 대출에 대해 LTV·DTI를 종전처럼 60%, 50% 적용해주겠다는 얘기다. 다만 투기수요가 아닌 무주택자 등 실수요자에게만 이런 예외를 인정해줄 계획이다. 1주택자여도 투기지역 내 이사를 위해 대출받을 때는 종전 대출규제를 적용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다주택자나 ‘갭 투자자’ 등에게는 LTV·DTI를 40%로 낮출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투기수요 억제라는 투기지역 지정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독규정을 합리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금융회사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