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황인찬·박준·오은 '젊은 시인 트로이카'…2030세대 마음 움직여
‘밤에는 눈을 감았다/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 시인의 시 ‘무화과 숲’ 중 이 구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 구절 중 하나다. 그림·영상 공유 SNS인 인스타그램에서 ‘황인찬’을 해시태그(#)해 올라온 전체공개 게시물은 2800개를 넘어섰다. 무화과는 꽃이 피지 않는 과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꽃과 열매가 과실 안에서 피어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다. 사랑까지도 사치로 여기는, 혹은 사랑에까지 오답을 걱정해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황 시인의 시적 감수성에 젊은 세대의 마음이 움직였다. ‘무화과 숲’이 수록된 시집 《구관조 씻기기》는 지금까지 1만5000부가량 팔렸다.

황 시인과 함께 ‘젊은 시인 트로이카’로 꼽히는 박준 시인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8만4000부 넘게 팔렸다. 시집 제목을 해시태그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게시물은 4400여 개에 달한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우리에게도 있었다(‘마음 한 철’ 중)’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환절기’ 중)’ 등의 구절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오은 시인의 《유에서 유》 역시 1만2000부가량 판매됐다. ‘다행히 여름이었다//미련이 많은 사람은/어떤 계절을/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계절감’ 중)’ 같은 구절(사진)이 인기를 끌었다. 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역시 1만3000부가량 팔렸다.

김민정 난다 대표는 “예전엔 누구나 알 만한 ‘국민 시인’의 시집이 아니면 시를 공부하는 학생들만 시집을 사본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엔 시를 즐기는 이들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며 “다양한 감수성을 가진 젊은 시인이 나타나면서 시 문단의 허리가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젊은 시인들의 활약만큼이나 시 문단의 버팀목이 되는 건 묵직한 국민 시인들의 스테디셀러다.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은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1년에 1만 권 이상 나가는 베스트셀러 시집이다. 지금까지 약 29만 부가 팔렸다. 이 외에도 황지우 시인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약 10만8000부), 이성복 시인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약 6만7000부) 역시 국내 문학계의 스테디셀러다. 정호승 시인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접시꽃 당신》 등은 50대 장년층 사이에서 애송되는 시집이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