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美 트럼프 이어 유럽맹주 獨 메르켈과 북핵해결 '의기투합'
北ICBM 도발에 '더 강한' 제재 기조…중·러 역할 강화론 압박
중장기적으로 '대화 통한 평화적 해결' 기본 원칙 유지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주변 4강(强)을 넘어 유럽의 한복판으로 '북핵 외교'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5일(현지시간) 저녁 베를린 연방총리실 1층에서 문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간에 진행된 한·독 정상회담은 새 정부의 북핵해결 방향과 원칙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당장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감행한 현 시점에서는 북한이 비핵화 대화의 장(場)으로 복귀하도록 더 강도 높은 압박과 제재를 가한다는 데 일차적 무게가 실려있다.

특히 북한에 영향력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역할을 압박하는 게 그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맡는다는 확고한 컨센서스도 형성돼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북핵과 한반도 안보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변함없는 입장이다.

두 정상이 '과감하고 근원적인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긴밀한 협력과 소통을 해나가기로 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 단기적으론 '제재 강도' 높이기…G20 성명에 '北반영' 논의도 = 이날 한·독 정상회담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실험에 따라 조성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흐름이 지배했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회담 초반부터 북한의 고도화된 핵과 미사일을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도발"이라고 평가하고 국제적 압박과 제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북한의 ICBM 기술 발전 수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문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에게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현재의 수준도 문제이지만 발전의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ICBM 개발이 2~3년 후에 가능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지만 지금 속도로 보면 안심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북한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공통된 메시지를 보낼 것을 메르켈 총리에게 요청했다.

특히 메르켈 총리가 주관하는 함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공동결의' 형태로 북한을 압박할 필요성이 있다는 뜻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나아가 구체적인 제재내용을 유엔 안보리에 맡기되, G20 차원에서는 원칙적 입장에서 공동의지를 표명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메르켈 총리는 경제협의체인 G20의 특성상 최종 공동성명에 반영하기는 어렵지만 문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기술적 포함'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유엔 안보리 결의와 조치를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의장국 성명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 메르켈도 '韓주도권' 인정…중·러 역할 공동압박 = 이날 정상회담에서 주목할 대목은 이 같은 대북 제재와 압박국면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독일이 적극 지지한 점이다.

메르켈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북핵·북한 문제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새 정부의 정책과 구상, 특히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반도 문제를 다뤄나가는 데 있어 한국에 '주도권'이 있음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는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합의한 '한미 공동성명'의 내용을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일이 비록 북핵 6자회담 당사국은 아니지만 유럽의 강국이자 국제사회의 여론주도국으로서 한국의 이니셔티브를 확인한 것은 외교적으로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독일은 이란 핵협상을 중재한 경험이 있어 북핵 해결 과정에서도 한국에 대한 지원과 조언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양국은 단기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큰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와 압박에 있어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발전속도가 빠르다는 것에 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국제적 제재와 압박도 중·러의 적극적 참여가 없다면 실효를 거둘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중국이 결정적 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내일 시 주석과 만나면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날 중국 시진핑 주석을 만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오늘 내가 시 주석과 만나 중국과 러시아의 적극적 책임과 노력을 말했고, 내가 느끼기에 중국과 러시아가 이제 행동에 나설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도 이날 시 주석과 만났다.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 라인을 대폭 축소할 필요성이 있다는 쪽으로 관련국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 '대화 통한 평화적 해결' 중장기 해법…'과감하고 근원적 비핵화' = 그러나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려는 문 대통령의 기본 기조는 여전히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거듭된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최대한도의 압박과 제재를 가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이는 북한이 대화의 장(場)으로 복귀하도록 견인하는데 초점이 돼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철학이라는 얘기다.

특히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안보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대화와 협상 프로세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행동 대 행동'의원 원칙에 따라 북한의 핵동력과 폐기 수순에 따라 단계적·포괄적 접근을 꾀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6일 베를린 쾨르버 재단에서 행할 연설의 기조도 이 같은 중장기적 대화기조에 터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문 대통령의 구상과 기조는 전혀 바뀐 것이 없다"며 "다만 단기적 또는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접근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 한·독 '보편적 가치' 공유하는 핵심 파트너 = 이번 정상회담은 한·독 양자 차원의 신뢰와 우호협력관계도 가일층 강화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인류보편적 가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는 두 정상의 '케미스트리'가 잘 맞아떨어지면서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냈다.

특히 양국이 외교장관 차원의 전략대화를 출범하기로 한 것이 주목된다.

이는 양자 교류를 증진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글로벌 차원의 협력을 강화하는 '소통의 채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핵과 같은 정치·안보이슈 뿐만 아니라 자유무역과 같은 경제·통상이슈에 대한 협력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 정상은 특히 보호무역주의 저지와 자유무역 증진이라는 대원칙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한·EU FTA를 자유무역과 개방경제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모범적 FTA로 평가했다.

양국 정상은 또 경제정책 노하우를 공유하고 산업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일자리 창출과 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4차 산업혁명, 중소기업 진흥, 직업교육, 탈 원전,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베를린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