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D타워 상가의 내부 모습. 실내 레스토랑이지만 테라스형으로 설계해 야외 같은 분위기를 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광화문 D타워 상가의 내부 모습. 실내 레스토랑이지만 테라스형으로 설계해 야외 같은 분위기를 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세계 최대 명품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 LVMH코리아는 2015년 봄 서울에서 루이비통 팝업 전시회 장소를 찾고 있었다. 한 업체가 신축 건물인 서울 광화문의 ‘D타워’를 추천했다. 임원들은 단칼에 거절했다. 종로와 광화문은 명품 브랜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한 번만 직접 와서 보라’는 두 번째 제안에 이들은 D타워를 찾았다. 건물을 본 LVMH 임원들은 “광화문에 이런 데가 있었냐”며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전시는 대성공이었다. 이는 LVMH코리아 오피스부문의 사옥 이전으로 이어졌다. 논현동에서 D타워로 옮긴 것. 또 그룹의 주요 브랜드인 ‘메이크업포에버’와 ‘베네피트’ 매장도 D타워에 입점시켰다.

1~5층이 모두 상가…동선은 일직선

벽돌을 쌓아올린 모양의 D타워
벽돌을 쌓아올린 모양의 D타워
광화문 D타워가 국내 대형 오피스 건축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다. 이 건물을 찾는 사람은 월평균 50만 명. 광화문 일대 오피스로는 이례적으로 주말 방문객이 주중보다 약 30% 많다. 상가에 입점한 레스토랑과 카페는 점심, 저녁 모두 당일 예약을 할 수 없다. 근처에 있는 GS그랑서울, 페럼타워, 르메이에르 등이 평일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텅텅 비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인기는 디자인에서 나온다. 가장 파격적인 건 상가 설계다. 로비부터 5층까지를 통째로 상업시설로 채웠다. 이전까지 대형 오피스 건물의 상가(식당 위주)는 지하 1~2층 또는 건물 꼭대기 층에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로비부터 5층까지 전체 층이 뻥 뚫린 느낌이다. 4층까지 폭포수처럼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어떤 매장이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점포 수는 적다. 1층에는 외부 점포를 포함해 25개 점포가 문을 열었지만, 2층부터는 점포 수가 층별로 4~5개다. D타워에서 약속을 잡은 사람들은 “몇 층으로 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방문자 동선이 단순해 헤맬 일이 없다는 얘기다.

밤낮 북적북적…도심 속 ‘문화 공간’으로

D타워 공간 디자인에는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다. 전통성을 살리기 위해 건물 표면에 흙과 나무 같은 자연 고유의 색과 질감을 반영했다. 역사의 흔적도 살렸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다니는 종로 큰길을 피해 서민들이 이용한 피맛골도 D타워를 통과한다. 이를 재현해 ‘소호(SOHO)’라고 이름 붙였다. 건물 밖에는 오래된 유적을 보존하는 설치물도 세웠다.

파격적이며 역사를 품고 있는 디자인은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핫플레이스’를 찾는 20~30대 젊은 층과 과거의 향수를 떠올리는 중장년층이 몰려들었다.

파격적 건축 디자인과 설계, 종로의 전통성,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브랜드가 한곳에 모이면서 D타워가 오피스 공간 이상의 가치를 지닌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순각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교수는 “대형 건물의 1층에서 5층까지를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공간감을 형성한 것 자체가 기존 오피스에서 볼 수 없던 일”이라며, “건물 밖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피맛골의 감성, 대나무숲을 형상화한 휴식 공간 등이 만나 복합적인 문화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D타워에는 LVMH 외에 에쓰오일, 소시에테제네랄, MBK파트너스 등이 입주했다. 사무환경 전문기업 퍼시스는 강북권 첫 대형 쇼룸을 지난 22일 D타워 15층에 열었다. 임차료가 월 9000만원 이상이지만 강북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건물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원칙을 따른 것이다.

디자인·설계·시공…시작부터 달랐다

D타워의 이런 설계 뒤에는 디자이너에게 믿고 맡긴 경영진의 결단이 있었다. 상가 전체를 통칭하는 ‘리플레이스(replace)’라는 공간 설계는 NHN 사옥을 만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수용 JOH 대표가 맡았다. 최고경영진이 직접 조 대표에게 의뢰했다. 조 대표는 “일단 사람들을 끌어모아 ‘트래픽’을 늘리는 것 자체가 건물 가치를 올리는 일”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쉽게 드나들고, 의미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림 경영진은 디자이너의 의견에 따라 원래 설계도를 뒤집고, 착공도 1년 뒤로 미뤘다.

D타워의 상가 임차 자문을 맡고 있는 부동산 컨설팅 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윤화섭 이사는 "D타워는 대중적인 브랜드, 트렌디한 맛집, 대형 패션 브랜드 등이 한 데 모여있고, 사계절에 상관없이 테라스의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며 "기획단계에서 설계는 물론 임차인 구성까지 고려했기 때문에 계속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