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고용을 축소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대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시장에 대한 개입이 무게를 얻어가는 시대에 새길 만한 주장이다. 김은환 삼성경제연구소 자문역이 쓴 《기업진화의 비밀》은 기업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생각해 보도록 만드는 이론서다. 저자는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기업은 도대체 어디서 와서, 지금 어디에 있으며, 과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협력과 혁신이란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 책은 ‘협력의 메커니즘’ ‘협력의 역사’ ‘기업의 탄생’ ‘기업의 진화’ 등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현실 세계에 수많은 조직 형태가 있지만 기업처럼 협력과 혁신을 통해 사회를 유익하게 하고 있는 조직도 드물 것이다. 기업은 그 자체만으로 협력과 혁신의 산실이다.

인간이 지구상의 수많은 종 가운데 유독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협력의 규모와 정교함 때문일 것이다. 이에 힘입어 인간은 사냥꾼을 넘어 농경사회로, 그리고 농경사회를 넘어 군대와 관료제를 거느린 조직 설계자가 될 수 있었다.

저자는 역사의 교훈을 두 가지로 소개한다. 하나는 역사 속에서 국가는 대체로 상업에 대해 비우호적이었다는 점이다. 특별히 위험한 것은 기업에 유화적이었다가 갑자기 억압하는 등 정책의 불확실성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와 기업의 협력 체제는 근대국가 간 경쟁에서 핵심적인 승부처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는 사실이다. 이런저런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인들은 196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이런 협력 관계에서 유능함을 보였기 때문에 오늘날의 한국이 가능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기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조합으로 이해한다. 기업을 기존 유기체의 DNA를 재조합해 만들어진 유전자변형 생물에 비유한다. 기업은 외부적으로 시장을 창출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명령과 통제에 의한 위계질서를 유지한다. 또한 기업은 명령경제와 시장경제의 경계선에서 활약하며 공동체의 속성도 갖고 있는 복합 메커니즘에 해당한다. 시장의 신뢰, 시장 질서, 소통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는 시장의 거래비용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에 위계질서로 인한 비용 부담으로 고민하는 기업은 더 많은 기능을 시장에서 아웃소싱하고 있다. 선진 기업들의 과감한 구조조정과 조직 간소화 노력은 조직 비용을 축소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장비용과 조직비용 사이에 나름의 질서를 찾아가는 기업들에 관이 개입해 조직비용을 증가시키라고 권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과 맞는지 생각해야 한다.

저자는 기업이 고전적 안트러프러너(entrepreneur·기업가) 시대를 거쳐 경영자와 대기업의 시대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최근에는 모듈화, 네트워크화, 전문화 그리고 플랫폼화 등이 혼재돼 일어나고 있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 책은 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해 보는 이론서로 이해할 수 있다. 실용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않지만 행간에 실린 의미를 새길 수 있다면 해법 찾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공병호 <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