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육손이 이끄는 오나라군에 대패, 유비는 겨우 살아나 백제성으로 피했다. 육손은 촉군을 계속 추격했는데 위나라 조비가 이 틈을 노려 오나라를 공격했다. 육손은 군사를 돌릴 수밖에 없었고 유비는 이듬해 8월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몸이 쇠약해져 병이 든 유비는 223년 6월10일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하고 영안궁에서 63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후계자인 아들 유선의 나이는 17세였다. 유비는 숨을 거둘 때 제갈량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뒤를 이을 아들이 보필을 받을 만하다면 보필해주시오. 그런 재목이 안 되면 그대 스스로 자리를 차지하여도 되오.” 유선이 황제의 재목이 못 되면 제갈량이 스스로 황제에 올라도 좋다는 말이었다.
제갈량은 살아생전 유선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촉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촉한은 263년 위의 침공을 받아 멸망했다. 유비가 나라를 세운 지 42년 만이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