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왼쪽부터), 장이근, 김태훈, 이상엽
박상현(왼쪽부터), 장이근, 김태훈, 이상엽
“어! 흰색 말뚝이 없네!”

9일 경남 남해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파71·7183야드). 국내 유일의 남자 프로골프 매치플레이 대회인 데상트 먼싱웨어매치플레이 경기장을 찾은 한 갤러리가 신기한 듯 말했다. 골프대회 갤러리를 10여 년 가까이 했지만 흰색 말뚝(아웃오브바운즈 표시 말뚝)이 보이지 않는 대회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 대회장은 개장 때부터 오비말뚝을 꽂지 않았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관계자는 “오비구역이 없는 남자 투어 대회는 처음”이라며 “공격적인 경기가 특색인 매치플레이의 장점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닥공 승부사’ 줄줄이 16강행

오비가 없으면 파4 홀에서 드라이버 티샷으로 원온을 노리거나 좌우로 급격히 휜 일명 ‘도그레그(dog-leg)’ 홀에서 나무나 숲 위를 가로지르는 샷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게 된다. 미스샷이 나오더라도 공만 찾을 수 있으면 어디에서든 페어웨이로 공을 쳐낸 뒤 파세이브할 확률도 남는다. 홀별 승부로 맞대결을 벌이는 매치플레이의 박진감도 덩달아 커지기 마련이다. 매치플레이는 오비가 나도 한 홀만 내주면 되기 때문에 여러 타수를 잃는 스트로크 방식 대회보다 공격적인 플레이가 원래부터 자주 나온다.

이날 열린 32강전은 ‘노(no) 오비’ 경기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닥공(닥치고 공격)형’ 선수들이 대거 16강에 진출했다. 전날 이준석(29)을 4홀 차로 격파한 디펜딩 챔피언 이상엽(23·JDX)이 지난달 카이도드림오픈을 제패한 김성용(41)을 5홀 차로 누르고 16강 조별리그에 진출했다. 이상엽은 지난해 대회에서 황인춘(43)에 4홀 차로 뒤처지다 마지막 5개 홀을 모두 이겨 6전 전승으로 이 대회 챔피언이 됐다. 이상엽은 경기가 끝난 뒤 “경기를 하면 할수록 매치플레이 체질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조별리그에서도 공격적 경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회에서 3위에 오른 ‘독사’ 박상현(34·동아제약) 역시 권오상(22)과 박효원(30)을 차례로 꺾고 16강전에 진출했다.

파5홀에서 2온이 쉬운 장타자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김성윤(35)과 박효원(30)을 차례로 제압하고 16강 리그전에 오른 장이근(24)은 300야드를 쉽게 날리는 장타자다. 지난주 코오롱한국오픈에서 생애 첫 승을 거머쥔 그는 미국 유학 시절 주니어 대회와 대학리그(NCAA) 단체전 등에서 매치플레이 경험을 일찌감치 익힌 1 대 1 승부의 강자다. 그는 “파5홀에서는 모두 2온을 시도했다”며 “타수로 승부를 겨루는 스트로크 플레이보다 긴장감이 큰 맞대결이 적성에 맞는다”고 말했다. 이날 박배종(31·넵스)을 5홀 차로 대파하고 가뿐히 3라운드에 오른 김태훈(32·신한금융그룹)도 2013년 시즌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 301야드를 찍어 투어 선수 전체에서 유일하게 300야드대 장타자 타이틀을 꿰찬 선수다. 이 밖에도 ‘멘탈갑’ 이형준(25·JDX)과 ‘깡돌이’ 강경남(34·남해건설), ‘매치플레이 개근생’ 주흥철(36·동아회원권), ‘어린 왕자’ 송영한(26·신한금융그룹) 등이 나란히 2연승을 거두고 조별리그로 올라섰다.

‘3무 대회’ 눈길

데상트먼싱웨어 대회는 오비말뚝뿐만 아니라 광고판과 홀인원 경품 등 일반 대회와는 다른 ‘3무(無)’ 대회로 운영돼 눈길을 끌었다. 데상트코리아 측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리고, 갤러리와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티잉그라운드 광고판을 모두 없앴다”고 설명했다. 일반 스트로크 대회에선 약방의 감초처럼 볼 수 있는 홀인원 경품을 배치하지 않은 것도 선수 중심 대회운용을 위해서다. 회사는 비용을 줄이는 대신 지난해 8억원이었던 상금을 10억원으로 올려 64명의 선수에게 돌아가는 상금을 키웠다.

남해=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