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업계 똑순이 CEO…"신소재로 해외서 인정"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할 무렵, 박창숙 창우섬유 대표(사진)는 위기를 맞았다. 외환위기 당시 거래처 부도로 30억원의 빚더미에 앉았다. “저 회사 곧 망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울 곳이 필요했다. 매일 해가 질 무렵이면 회사가 있는 경기 양주에서 연천이나 전곡까지 차를 몰고 가 몇 시간씩 엉엉 울었다. 이를 악물고 1000원 단위까지 빚을 갚았다. 재기의 신호탄을 쏜 건 신소재 원단 개발이었다. 원단은 히트를 쳤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멀리 내다보고 연구개발(R&D)에 투자한 덕분이었다. 창우섬유는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국내 대표적인 섬유업체가 됐다.

◆편직업계 최초 여성 CEO

섬유업계 똑순이 CEO…"신소재로 해외서 인정"
박 대표는 고교를 졸업한 뒤 섬유업체에서 10여 년 일했다. 사무직이었지만 현장이 궁금해서 생산직 근무를 자원했다. 공장 기계에 대해 알고 싶어서 스스로 공부했고 수금과 영업까지 기웃거렸다. 전천후로 뛰어다니다 보니 업계에서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차츰 ‘미스 박’을 찾았고, 언제부턴가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됐다.

그는 국내 편직(실로 뜨개질한 것처럼 짜는 것)업계 최초의 여성 대표이자 국내 1호 여성 환편기(섬유기계) 공장장이다. 1990년 창우섬유를 설립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초기엔 세간의 편견과 싸워야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여자가 기계공장에 들어가면 재수 없다” “아가씨가 뭐 그리 험한 일을 하느냐” 이런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환편기 공장을 세우고 임가공 사업을 시작했다.

외환위기 당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직원들의 도움이었다. 박 대표는 “직원들이 한 명도 회사를 나가지 않고 어려움을 나눴다”며 “협력업체 20여 곳도 원사 공급을 지원하면서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운영자금을 대출받는 등 운도 따랐다. 현재 40여 명인 직원은 모두 정규직이다. 20% 이상이 10년 이상 장기근속자다. 오래 일한 직원이 나가서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박 대표는 은행 대출을 주선해 주고 보증까지 서 줬다.

◆R&D 투자 통한 차별화

창우섬유는 2008년 ‘미르’라는 폴리에스테르 니트 원단을 내놓았다. 미르는 저렴한 소재인 폴리에스테르를 이용해 고가인 아크릴 섬유 효과를 낼 수 있는 신소재 원단이다. 얼핏 보면 스웨터 같지만 훨씬 얇고 가벼운 데다 따뜻하다. 40억원가량을 투자했다. 미르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원단 무역업체와 염색업체 등 관련 기업들의 성장에도 기여했다.

박 대표는 “몇 년 걸려 신제품을 개발해 내놓으면 몇 시간 만에 카피가 나오는 곳이 섬유업계”라며 “버는 족족 설비와 R&D에 투자하는 것이 나만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매달 5000만원씩 샘플 제작비를 쓴다. 먼저 샘플을 제작해 의류업체에 제안하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임가공 중심 원단 생산에서 벗어나 의류 완제품도 제작하기 시작했다.

매출의 80%를 간접 수출에서 올리고 있다. 박 대표는 “우리 원단을 수출하는 중소기업의 밥그릇을 지켜주기 위해 직접 수출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해외에서도 창우섬유 원단이라고 하면 품질을 인정해 준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기북부지회장에 취임했다. 여성이 대표인 기업들의 산업생태계 구축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다.

양주=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