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이 제작한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중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이 제작한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중 한 장면.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감정에 사로잡힌 청년 나디르. 금지된 사랑에 대한 두려움은 찾아볼 길 없다. 상대를 향한 열정과 설렘에 지배될 뿐이다. 그런 주인공 나디르는 멕시코 출신 테너 헤수스 레온의 싱그럽고 청아한 목소리와 잘 맞아떨어졌다. 그는 ‘아직도 들리는 듯해’ 등의 아리아를 앳된 감성을 섞은 섬세한 표현력으로 소화해냈다. 지난 3~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오페라 ‘진주조개잡이’에서다. ‘테너의 오페라’라는 명성에 걸맞게 몽글몽글 피어난 사랑은 격정의 운명에 사로잡히는 순간까지 미성의 테너와 함께 더욱 커져갔다.

이 공연은 국립오페라단이 2015년 초연 이후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렸다. 진주조개잡이는 오페라 ‘카르멘’ 작곡자로 잘 알려진 조르주 비제가 25세 때 지은 초기 작품이다. 고대 실론 섬(지금의 스리랑카)을 배경으로 진주조개 어부 나디르가 족장 주르가와 동시에 여사제 레일라를 사랑하게 되는 얘기를 다룬다. 여사제는 사랑도, 친구도 멀리한 채 오직 기도만을 해야 한다. 하지만 레일라와 나디르는 금기를 깨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세 주인공을 맡은 가수들은 극적 요소는 물론 음악적으로 균형 잡힌 소리를 들려줬다. 주르가 역을 맡은 바리톤 김동원은 힘 있고 절제 있는 목소리로 나디르의 다소 들뜬 미성을 잡아주는 무게추 역할을 했다. 레일라 역의 소프라노 최윤정은 매끄럽고 영롱한 고음으로 신비한 여사제의 매력을 잘 드러냈다.

모나코 출신 장 루이 그린다의 연출은 담백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원작에 충실하게 두 사람의 사랑과 이국적 색채를 살리는 데 집중했다. 다소 단조롭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프랑스 오페라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데는 오히려 효과적이었다. 무대를 크게 전환하는 장치나 기법도 없었다. 하지만 두 개의 큰 바위를 중심으로 뒤편에 펼쳐진 옅은 안개, 반짝이는 별빛 등의 무대는 시적(詩的)인 느낌을 줬다. 실제 해안가 작은 부족들의 이야기를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원작이 그러하듯 극의 전개 자체는 치밀하지 못했다. 그러나 테너의 미성과 극의 아름다운 색채가 아쉬움을 달래줬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