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기표용구 숨겨진 비밀
4~5일 사전투표를 시작으로 제19대 대통령 선거 투표의 막이 올랐다. 이번 대선 투표에 쓰이는 용지와 기표용구 등은 일반적인 종이나 인주가 아니다. 잉크 번짐이 없고 순식간에 잉크가 마르게 하는 특수 기능이 숨어 있다. 무효표를 방지하는 것은 물론 효율적인 개표를 위해서다.

가로 10㎝·세로 28.5㎝ 투표용지

투표용지·기표용구 숨겨진 비밀
이번 대선 투표용지 크기는 가로 10㎝, 세로 28.5㎝다. 기호 1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부터 기호 15번 무소속 김민찬 후보까지 세로 정렬 형태로 인쇄돼 있다. 이 투표용지는 ‘인주 적성(適性)’과 ‘번짐 방지’ 기능이 있는 특수지를 썼다.

기표한 뒤 인주가 용지의 다른 곳에 묻지 않아야 하는 게 인주 적성이다. 번짐 방지는 기표한 뒤 인주가 번지지 않게 하는 기술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02년 대선 때 전자개표를 도입하면서 투표용지 납품 규격에 이 같은 기능을 의무화했다. 인주가 다른 곳에 묻거나 번지는 바람에 무효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 전까지는 백상지라는 일반 인쇄용지를 썼는데 미세한 종이가루 탓에 투표용지가 개표기에 걸리는 일이 잦았고 잉크가 번져 판독이 어려운 일도 생겼다.

투표용지·기표용구 숨겨진 비밀
투표용지는 일반 종이에 비해 강도가 세고 두껍다. 물기가 있어도 변형이 잘 생기지 않는다. 정전기 방지 기능도 있다. 전자개표 때 투표용지끼리 달라붙거나 구겨지는 등 오류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종이 제조 과정에서 불순물 관리도 철저히 해야 한다. 미세한 이물질이 섞여도 개표 때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투표용지 납품가는 일반 용지보다 1.5배가량 비싸다. 국내에서 투표용지를 만들 수 있는 곳은 국내 양대 제지업체인 한솔제지와 무림SP 두 곳뿐이다. 두 회사는 특수지를 생산하는 천안공장과 대구공장에서 각각 투표용지를 만들어 선관위에 공급했다.

이번 대선에서 쓰이는 투표용지는 190t가량이다. 연간 100만t 안팎의 용지를 각각 생산하는 무림SP와 한솔제지에는 투표용지가 수익이 남는 사업은 아니다. 무림SP 관계자는 “소량이지만 투표용지 규격에 맞는 특수지를 별도로 생산했다”며 “정부로부터 국내 최고의 품질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투표용지·기표용구 숨겨진 비밀
순식간에 마르는 유성잉크

기표용구는 문구업체인 모나미가 독점 공급했다. 57년 역사의 국내 대표 문구업체인 모나미는 이번 대선을 위해 일반형 기표용구 9만6000개, 스탬프 1만5300개, 특수형 기표용구 2만9000세트를 납품했다. 특수형 기표용구는 장애가 있는 유권자용이다. 입으로 투표하는 마우스피스형과 팔목에 부착하는 팔목 활용형 등 두 종류다. 모나미는 2002년 대선 때부터 기표용구를 공급하고 있다. 2007년과 2012년 대선 때도 모나미가 기표용구 전량을 납품했다.

기표용구 납품 규격도 엄격하다. 유권자가 기표 후 용지를 접기 전에 인주가 말라야 한다. 투표용지의 다른 부분에 덜 마른 인주가 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나미는 인주에 ‘속건성 유성잉크’를 썼다. 찍는 순간 투표용지에 빠르게 침투한 뒤 바로 마르는 초미립자로 된 특수잉크다. 모나미가 직접 개발했다. 모나미 관계자는 “이번 대선에 쓰이는 인주는 뚜껑을 개봉한 상태에서 60일 이상 보관해도 선명한 인쇄 품질을 유지하고 5000회 이상 쓸 수 있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이우상 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