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5월4일 오전 4시43분

삼성전자가 지주사 전환을 포기한 가운데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 방식에 변화가 예상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기업의 지주사 전환을 돕는 자사주 활용 관련 규제망이 촘촘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자사주 대신에 오너 일가가 보유한 알짜회사를 활용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자사주 활용 막히나

4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지주사는 162곳에 달한다. 이들 지주사 중 상당수는 LG그룹 방식을 활용해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LG그룹은 2003년 법무법인 광장 자문으로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인적분할과 자사주를 활용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자사주를 갖고 있던 회사가 이를 그대로 보유하면서 다른 사업부문을 분할해 신설 법인을 설립하는 방식이다. 인적분할 시 신설 법인의 주식(신주)은 기존 주주들이 지분비율대로 배정받는다. 이때 현행 상법에선 존속 법인(지주사)이 갖고 있던 자기주식에도 분할 신주를 배정하는 일을 허용하고 있다. 본래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의 의결권이 부활하는 셈이다.

하지만 국회에 계류된 공정거래법·상법 개정안들은 지주사 전환 때 자사주를 활용하는 길을 막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말 대표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 개정안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인적분할할 때 지주사에 의결권 있는 사업회사 지분을 배정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자사주를 활용해 대주주 지배력을 높이는 것을 막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만큼 대선 이후 관련 법안 처리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최근 인적분할을 결정한 롯데그룹이 자사주를 활용한 지주사 개편의 막차를 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수천억원어치 자사주를 매수하기로 결정하며 지주사 전환을 꾀하는 것으로 알려진 현대산업개발은 난관에 부딪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휠라코리아 방식 뜨나…오너회사 주목

휠라코리아가 추진하는 지주사 전환 작업은 자사주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은 지난달 25일 지주사 에이치앰앤드디홀딩스를 설립하고 휠라코리아 보유 지분 전체(지분율 20.12%)를 현물 출자한다고 발표했다. ‘윤 회장-지주사(에이치앰앤드디홀딩스)-휠라코리아 등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포석이다.

윤 회장은 뉴욕 증시에 상장한 자회사 아쿠쉬네트(상장명 GOLF) 보유 지분도 지주사에 현물 출자한다. 지주사는 아쿠쉬네트 지분을 유동화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해 휠라코리아를 비롯한 계열사 지분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대주주가 지주사 역할을 하는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우고 보유하고 있는 주력회사 지분을 출자하는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SK그룹 사례처럼 대주주가 지배력을 보유한 알짜회사(SK C&C)와 그룹 지주사(SK)를 합병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대주주가 지주사 지배력을 높일 수 있어서다. CJ 한국타이어 삼표 등이 이런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CJ는 이재현 회장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과장(지분율 17.9%)과 딸 이경후 씨(6.91%)가 주주로 있는 CJ올리브네트웍스를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활용할 수 있다.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과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 형제가 24%씩 지분을 나눠 보유한 엠프론티어와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장남인 정대현 부사장이 최대주주(지분율 77.9%)로 있는 삼표기초소재(옛 신대원) 등도 개편의 중심축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