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시설 대부분 동물 얼씬도 안해…대부분 '사람 길'

도로건설 등 각종 개발로 단절된 생태 축을 연결해 야생동물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겠다며 만든 경기도 내 곳곳의 생태 통로(일명 '에코 브릿지')가 말 그대로 '보여주기'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과 함께 이용하도록 설계되거나 형식적으로 만들어져 야생동물들이 이용할 수 없는 생태 통로가 되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3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 '생태 통로'라고 만들어진 시설물은 육교형 47개, 터널형 15개 등 62개.
하지만 도 환경 관련 부서에서 환경부 생태 통로 지침에 따라 관리하는 시설은 43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19개는 생태 통로의 기능을 못 해 '생태 통로 관리 대상'에서 이미 제외됐다.

도와 시군, 환경단체 등이 지난해 관리 대상 생태 통로 43곳을 조사한 결과 생태 통로로서의 효용성이 높다고 나온 곳은 20.9%인 9곳에 불과하다.

41.9%인 18곳은 효율성이 '낮음', 4.7%인 2곳은 '보통' 판정을 받았으며, 32.6%인 14곳은 그나마 '판단할 수 없음'으로 나왔다.

야생동물 흔적 조사에서 효율성이 높다는 판정을 받은 생태 통로들은 고라니와 너구리, 산토끼, 멧돼지 등의 통행 흔적이 발견됐으나, 효율성이 낮은 것으로 분류된 곳 일부에서는 다람쥐나 청설모 등의 흔적만 발견됐다.

생태 통로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 19곳은 도심지 내 야생동물이 서식하지 않고 시민의 보행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일부는 양서류나 파충류 등의 이동을 위한 암거수로 보완 시설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생태 통로들이 거액을 들여 건설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통로에 사람과 동물이 분리돼 통행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 않거나 주변 생태계에 대한 면밀한 조사 없이 형식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으로 지적됐다.

한 국립 생태 연구기관 관계자는 "지자체와 도로공사 등 생태 통로 관리 기관이 다원화돼 있는 데다가 기관마다 전문성이 결여되고 모니터링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물론 '생태 통로' 기준도 제각각이라는 문제점이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신도시 개발 지역 등의 생태 통로를 건설하려면 주변 생태환경을 고려한 적절한 위치를 선정하고 동물이 이용할 수 있도록 규격을 맞춰야 한다고 충고했다.

경기도는 생태 통로로 기능이 유지되는 시설에 대해서는 모니터링 등을 통해 효용성을 높이고, 각종 개발 사업자에게는 개발 사업 시행 시 실효성 있는 생태 통로 건설을 요구하기로 했다.

또 주요 생태 축 단절구간의 경우 점진적으로 생태 축 복원사업을 수행할 방침이다.

도 관계자는 "적지 않은 생태 통로들이 사람과 동물이 함께 이용하게 돼 있다.

이런 곳을 야생동물들이 이용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앞으로 기존 생태 통로들을 보완해 실효성을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원연합뉴스) 김광호 기자 kw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