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혁명 '제2의 물결'] 국제유가 좌우하는 미국 셰일오일…"배럴당 40달러에도 이익 난다"
SK이노베이션은 2014년 6월 3억6000만달러(약 4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셰일오일 개발에 뛰어들었다. 셰일오일이 묻혀 있는 텍사스주와 오클라호마주에서 유전 두 곳의 운영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배럴당 100달러가 넘던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곧바로 혹독한 시련이 시작됐다. 유가는 지난해 2월 배럴당 20달러대까지 곤두박질쳤다.

경제성이 떨어지자 SK는 지난해 1월 모든 시추 작업을 중단했다. 사업 초기 가동했던 4개의 시추기를 모두 멈췄다. 지난해 북미 석유개발본부는 적자를 냈다. 이즈음 SK는 체질 개선에 나섰다. 석유 시추 기술을 개선하고 지질 분석을 강화했다. 돈 될 만한 땅만 골라서 시추하기 위해서다. 비용 절감을 위해 시내 중심가에 있던 휴스턴 사무실도 임차료가 싼 시 외곽으로 옮겼다. 덕분에 SK는 올초 약 1년 만에 석유 시추 작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저유가에서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길렀다”며 “요즘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안팎을 오가고 있지만 이 정도에서 시추 작업을 해도 경제성을 맞출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셰일혁명 '제2의 물결'] 국제유가 좌우하는 미국 셰일오일…"배럴당 40달러에도 이익 난다"
“배럴당 40달러에 이익률 10%”

최근 미국에서 불고 있는 ‘셰일오일 붐’은 과거 1차 셰일 붐(2011~2014년)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때는 고유가만 보고 너나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그러다 보니 유가가 하락하자 속절없이 무너지는 업체가 수두룩했다. 현지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에서만 100여개 이상의 석유 개발 업체가 문을 닫았다”고 귀띔했다. 자본력으로 버틴 업체들도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미쓰비시 등 일본 상사들은 고유가 시절에 투자했다가 연간 1조원 넘는 손실을 보기도 했다.

지금도 호황은 아니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불황기를 거치는 동안 상당수 석유 개발사가 저유가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체력을 길렀다. SK도 그런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안팎에서 크게 오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미국에서 석유, 가스 개발이 늘어나는 배경이다.

지난 21일 기준으로 미국에서 가동 중인 석유·가스 시추기 수는 857개다. 전성기인 2014년 9월(1931개)에 비하면 아직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시추기 수가 404개까지 떨어졌던 지난해 5월 말과 비교하면 11개월 만에 112% 증가했다. 텍사스 일대에서 “셰일혁명의 두 번째 물결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요즘 미국 셰일오일업계에선 미국 텍사스 서부 퍼미안 지역이 최대 화두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셰일오일은 채굴 단가가 쌀 뿐 아니라 생산량도 많다. 현지에선 “퍼미안 지역에선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만 돼도 10%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유가가 배럴당 40~50달러만 유지해도 얼마든지 생산을 늘릴 수 있다는 의미다.

거대 석유회사도 투자 확대

한동안 뜸했던 메이저 석유기업도 슬슬 움직이고 있다. 미국 엑슨모빌은 지난 1월 퍼미안 지역의 유전지대를 매입해 이 지역에서 하루 원유 생산량을 20만배럴에서 75만배럴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달에는 “멕시코만 일대 석유 개발과 정유·화학시설에 2020년까지 2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월가의 사모펀드도 석유 개발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올 1분기 사모펀드가 에너지 벤처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198억달러로 1년 전보다 세 배 가까이로 늘었다.

올 1월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도 석유 개발업계로선 호재다. 트럼프 정부가 석유, 가스 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짜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 하락에 조선·건설 비상

셰일오일이 국제 유가를 끌어내리면서 고유가를 기대한 조선사와 건설사는 비상이 걸렸다. 저유가로 인해 조선사는 해양 플랜트, 건설사는 석유화학 플랜트 수주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중동 산유국들이 과거에는 기름만 팔았지만 요즘은 석유화학 공장을 지어 화학제품도 팔고 싶어 한다”며 “저유가가 지속되면 석유화학 공장 발주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휴스턴=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