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부부는 낡고 오래된 한옥으로 이사를 했다. 앞마당과 뒤뜰엔 잡초가 자랐다. 한동안은 초라한 한옥과 제 부부 처지가 비슷해보여 자존심이 상했다. 성기고 억센 잡초와 친해지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잡초같은 신세라는 것을 알았다. 비로소 잡초를 들여다보게 됐다. 뜯어먹고, 연구하게 됐다. 몸을 낮춰야 잡초가 보인다. 부부는 낮은 마음으로 잡초와 사귄다. ‘불편당(不便堂)’이라 이름 붙은 이 한옥 앞마당엔 그런 풀들이 수십 가지나 자란다.

모르는 사람에겐 마당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터. 하지만 부부의 손만 타면 귀한 식재료로 바뀐다. 아내 권포근 씨는 바구니를 허리에 끼고 마당으로, 들판으로 나선다. 그 옆에서 발걸음을 맞추는 건 남편인 고진하 시인이다. 강원도 원주 산골에서 잡초 요리를 먹고 사는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흔한 것을 귀하게 보았다

-대문간에 ‘흔한 것이 귀하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더군요.

“아, 그걸 보셨습니까. 아무래도 잡초 생각이 나신 모양이지요. 하하. 맞아요. 토끼풀, 개망초, 질경이, 민들레, 쇠비름, 왕고들빼기, 곰보배추, 까마중, 환삼덩굴, 엉겅퀴, 돌콩, 우슬초, 달개비. 모두 길가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풀들입니다. 이런 풀들은 사실 천덕꾸러기예요. 시골 농부들조차 없애야 할 풀이라고 생각해 제초제를 뿌리거나 예초기로 아예 베어버리곤 하지요.”

-그런 풀 어디가 귀하다는 말씀입니까.

“저희 부부가 이 집으로 이사 온 게 아마 8년 전 즈음입니다. 아주 낡고 오래된 이 한옥으로 왔지요. 어느 날은 무성한 잡초를 보다 못해 장독대 주변에 자란 풀들을 낫으로 베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잡초도 채소와 같은 생명인데, 먹을 수는 없을까. 재미있는 게 그 때 가뭄으로 농작물들은 다 타 들어가는데, 잡초들만 엄청난 생명력을 발휘하며 자라고 있는 거예요. ”

-잡초들이 이전과는 달리 보이셨겠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대부분이 먹어도 문제가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 뿐인가요, 그 흔한 풀들이 저마다 귀하게 대접해야 할 식물이었지요. 우리 딸이 질경이로 끓인 차에선 왠지 흙냄새가 날 것 같다고 하대요. 보통 길가에서 피어 사람들 발길에 항시 밟히고 사니까요. 하지만 질경이를 차로 끓여보니 아주 달착지근하고 담백했습니다. 마시고 나면 목이 시원해졌고요.”

-질경이에서 그런 맛도 납니까.

“알고 보니 집 앞에 지천으로 널린 풀들이 제각각의 맛과 효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식물도감 같은 책을 보면서 공부를 많이 했지요. 잡초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게 됐고, 거의 모든 잡초들이 영양이 풍부하고 약성(藥性)도 뛰어나다는 것 또한 배웠습니다. 그 중 먹을 수 있는 잡초를 뜯어다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먹어보니 맛도 다른 채소 못지 않았습니다.”

◆“흔하다고 깔보지 마세요”

-어쩌다 원주 산골, 구옥(舊屋)에 살게 되셨습니까.

“우리는 결혼 후 거의 시골 생활을 했어요. 자연과 산의 기운을 받아 시도 쓰고, 영혼의 살림을 꾸려나가지요. 하지만 이 집에 처음 와보고는 정말 기함을 했어요. 치악산 아래 행구동에 세들어 살던 2층 양옥집에 비하면 낡아도 너무 낡은 집이었어요. 군데군데 헐리고 파인 집에 익숙해지는 데 한참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 집 때문에 결국 잡초요리사로 데뷔하기까지 했네요.”

-잡초는 어떻게 요리해 먹어야 합니까.

“몇 년 전, 가뭄이 아주 심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배추 한 포기에 만원이 넘었지요. 배추를 사러 갔다가, 빈 손으로 돌아왔어요. 대신 바구니를 끼고 들로 나갔습니다. 왕고들빼기며 개망초, 우슬초, 모시물퉁이를 뜯어다 겉절이를 했지요.”

-잡초 모듬 겉절이네요.

“잡초비빔밥도 많이 해 먹었습니다. 한 가지 잡초만 먹으면 한 가지 맛만 나는데, 여러 종류를 섞어 비벼 먹으면 그 맛이 다 어울립니다. 잡초를 씻은 다음 끓는 물에 1분 동안 데쳐서 고추장과 들기름을 넣고 밥이랑 비벼보세요. 그렇게 해 먹고 나면 새처럼 몸이 날아갈 듯 가볍습니다. 개망초 무침도 자주 해 먹었지요.”

-개망초도 무쳐 먹습니까.

“하루는 서울에 사는 친척이 놀러 왔길래 산책도 할 겸 들에 나가 개망초를 뜯었어요. 친척이 "야, 고것도 먹냐?'고 하더라고요. 바로 "흔하다고 깔보지 마시유" 했지요. 집에 돌아와 개망초를 무쳐 올려놓았더니 친척이 "취나물이나 홑잎나물 못지 않게 맛있다"고 바로 인정하더라고요. 지금도 집에 손님이 오면 마당에서 잡초 몇 가지를 뜯어다 된장찌개를 끓이고 잡초 나물을 무쳐 냅니다.”

-잡초 요리에 거부감을 보인 손님은 없었습니까.

“처음엔 다들 어색해 합니다. 잡초가 억세고 맛이 없거나 몸에 좋지 않을 것이란 편견도 있고요. 우리 딸들도 그랬으니까요. 어떤 풀은 요리를 해 놓으면 풀 비린내가 심한 것도 있습니다. 기존의 요리 방식으로 제대로 맛을 낼 수 없는 경우도 있고요. 무엇보다 맛이 없으면 음식에 손이 안 갑니다. 현대인들의 입맛이 인공조미료에 길들여져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잡초요리를 개발하며 저희도 수많은 실패를 겪었습니다.”

-얘기만 들어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섞어서 고추장 넣어 무쳐보기도 하고, 여러 실험을 했습니다. 그렇게 개발한 요리법을 엮어 첫 책인 '잡초레시피'를 냈습니다. 그게 '잡초를 어떻게 먹어?' 하는 분들을 위해 쓴 책이지요. 이번엔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갔습니다. 잡초가 지니고 있는 놀라운 약성을 알리기로 했어요. 그래서 쓴 게 이번에 나온 '잡초치유밥상.' 두 번째 책입니다.”
◆밥상이 약상이다

-잡초에도 약성이 있습니까.

“보통 농산물은 농약도 많이 치고 사람의 손을 타 약해지기 마련이지요. 잡초는 스스로 힘을 키워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뭄이 들어도 다른 농산물은 쉽게 죽어나가지만 잡초는 다릅니다. 우리가 하찮게 여겨온 잡초가 모두 약초입니다. 많은 잡초들이 소화불량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고혈압, 당뇨 같은 병에 좋은 풀들도 있지요. 잡초요리가 올라오는 우리집 부엌엔 ‘밥상이 약상이다’라는 글귀도 써 붙여 놓았습니다.”

-실제로도 효과를 보셨습니까.

“제(남편, 고진하 시인)가 고혈압으로 오래 고생했습니다. 알고 보니 뒤뜰에 가면 차고 넘치는 게 고혈압에 좋은 환삼덩굴이었습니다. 환삼덩굴을 먹고 난 뒤로 혈압이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피부 질환으로 고생했던 딸은 마당의 토끼풀을 양념에 버무려 먹고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심혈관에 좋은 비름, 관절염에 좋은 우슬초도 있습니다.”

-매일 잡초라는 보약을 드시고 계시네요.

“그것도 재료비 한 푼 들이지 않고서 먹고 있지요. 하하. 요즘 마트에서 사먹는 것 중에는 유전자변형(GM) 식품도 많지 않습니까. 라면, 과자, 빵, 고추장, 돤장, 간장, 식용유 같은 것도 모두 그렇습니다. 그런데 잡초는 저절로 뿌려져 하늘이 키운 청정한 식품입니다. 그냥, 고마워하면서 거두어 먹으면 됩니다. 어쩌면 '식량 위기'가 왔을 때 잡초가 그 대안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호가 “불편당‘(不便堂)이라고 돼 있더군요.

“지금 집은 오래된 한옥이라 생활하는 것도 좀 불편하지요. 우선 화장실이 집안에 없어서 식구들이 모두 요강을 씁니다. 난방도 옛날처럼 아궁이에 장작으로 불을 지펴서 하지요. ‘불편당’이란 당호를 붙인 건 이런 불편을 즐기며 살자는 뜻입니다.”

-요즘엔 불편을 못 견디는 사람도 많습니다.

“속도와 효율, 편리를 중시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됐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만 귀하게 여기는데,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돈을 지불하지 않고 얻는 것, 태양이나 맑은 공기, 물, 아가의 웃음, 어머니의 사랑. 이런 것 없이 살 수 있나요. 잡초도 그렇습니다. 값도 없이 흔한 것이지만 참으로 귀합니다.”

-귀한 것들이 주변에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네요.

“지금 우리가 먹는 곡식이나 채소도 오래 전엔 잡초였어요. 잡초는 우선 알기만 하면 구하기도 쉽고 건강에도 좋습니다. 요리법만 제대로 안다면 시골에서는 지천이니까요. 예를 들면 쇠비름은 '오메가3'가 가장 많은 식물인데, 일본에서는 마트에서도 팝니다. 요리법도 많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흔한 것들이 귀하다’란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잡초는 더 이상 잡초가 아닌 겁니다. 우리 가족에게 잡초는 약초입니다. 마트에서 사다 먹는 채소와는 영양가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건강한 먹거리입니다. 삶이 버거울 때도 잡초를 봅니다. 잡초의 정신을 본받으면 못할 게 없어요.”

◆삶이 버거울 때, 잡초를 봐라

-잡초의 정신이란 게 뭡니까.

“잡초의 소중함을 모르는 이들은 잡초를 박멸하기 위해 억세게 제초제를 뿌려댑니다. 그 독한 제초제를 맞고도 잡초는 얼마 후면 씨앗을 싹 틔웁니다. 천덕꾸러기처럼 짓밟혀도 다시 살아납니다. 그처럼 잡초는 강인하고 생명력이 질깁니다. 요즘 우리네 사는 것이 점차 힘들어지고 있잖아요.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1위라고 하고요. 그럴 때일수록 더 억세게 버텨야지요. 잡초는 그걸 아는 것 같은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FARM 고은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