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살해 후 시신 훼손한 사건 피해 유족…법정서 눈물로 '호소'

"재판장님 재판이 또 미뤄지는 건가요. 우리 엄마를 무참하게 살해한 피고인이 이번에는 재판을 고의 지연하려는 듯해 너무 억울합니다."

이혼 소송 중인 아내를 살해 후 빈집 아궁이에서 시신을 불태워 훼손한 혐의로 (살인 및 사체손괴 등)로 기소된 한모(53) 씨의 재판이 열린 7일 오전 춘천지법 101호 법정.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 사건'으로 자칫 미궁으로 빠질 뻔한 이 사건을 심리한 춘천지법 제2형사부(이다우 부장판사)가 이날 한 씨의 속행 재판을 열흘 뒤인 오는 18일에 다시 열기로 하자 갑자기 법정 안이 소란해졌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의 어린 딸 등 유족이 참았던 울분을 토한 것이다.

피고인 한 씨 측이 변호인 선임 등의 문제로 이 사건 재판이 한 달 이상 공전했기 때문이다.

피해자 김모(52) 씨의 유족은 이날 "지난 2월 28일 첫 재판이 시작된 이후 별다른 진전 없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며 "피고인이 고의로 재판을 지연하는 듯해 너무 억울하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지난 2월 6일 기소된 한 씨 사건의 첫 재판 날짜는 같은 달 28일이었다.

그러나 한 씨의 변호인이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 재판은 지난 3월 21일로 한 차례 연기됐다.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의 형사 재판에서는 변호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재판부는 빠른 재판 진행을 위해 국선 변호인을 새로 선임하도록 해 같은 달 31일 재판을 다시 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씨가 국선 변호인에게 '변론을 맡길 수 없다'며 진술을 사실상 거부해 또 재판은 한차례 공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임계를 냈던 사선 변호인이 다시 선임돼 이날 재판이 열렸으나 변호인 측이 사건 기록을 복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2주간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 진행이 늦어져 2주의 시간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한 재판부는 열흘의 시간만 더 줬다.

이에 피해자 유족은 울분을 토했고, 법정 안이 소란해진 것이다.

법원 경위가 소란해진 법정 수습에 나섰으나 오히려 재판부가 법원 경위를 만류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해자 유족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충분히 이해한다"며 "하지만 아무리 나쁜 형사범도 변호인의 조력을 충분히 받을 권리가 있다"고 유족들을 다독였다.

이어 "형사 재판은 모든 절차가 매우 엄격해서 재판부가 함부로 진행할 수 없고 절차에 하자가 생기면 자칫 파기될 수 있다"며 "재판이 미뤄진다고 해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것이 없으니 법원을 믿고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한 씨의 다음 재판은 오는 18일 오후 5시에 열린다.

(춘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j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