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로 NTC 위원장 주도 "한·미 FTA로 피해봤다"
3월31일 보고서에선
게리 콘 NEC 위원장 등 온건론자 입김 반영
전반적으로 긍정 효과 나열
한·미 FTA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미국무역대표부(USTR)에서 시차를 두고 나왔다. USTR은 지난달 1일 발표한 ‘대통령의 2017년 무역정책 아젠다’에서 미국의 무역적자를 강조하며 국제 무역분쟁에서 미국 무역법 우선 적용, 교역국 시장 개방을 위한 통상법 301조를 포함한 모든 가용수단을 강구하겠다는 등의 강력한 메시지를 내놨다. 문제가 되는 교역 적자 대상으로는 중국,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함께 한국을 ‘콕 집어’ 예로 들었다.
USTR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무역장벽보고서’는 내용이 달랐다. 기술장벽·수입제도·위생검역·정부조달·산업보조금·지식재산권 등 각 분야 무역장벽을 14쪽에 걸쳐 나열하면서도 전반적으로 한·미 FTA가 미국 기업들의 한국 진출을 도왔다고 평가했다.
주미 한국대사관과 KOTRA, 한국무역협회 등 관련 기관들은 “미국이 공정무역 실행을 위한 강력한 무역집행 의지를 재확인하면서도 한·미 FTA에 대해서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톤으로 긍정 평가한 부분이 눈에 띈다”고 분석했다.
◆“온건-강경파 갈등 커져”
통상 전문가들은 USTR 보고서 기조 변화에 대해 “통상정책 방향을 놓고 백악관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헤게모니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해석했다.
지난달 1일 발표된 통상정책보고서는 작성 기관이 USTR이지만 서문(序文)에 해당하는 ‘대통령의 2017년 무역정책 아젠다’ 부분은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NTC)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정책을 총괄하는 나바로 위원장은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과 45% 보복관세 부과 등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강경 보호무역주의자로 통한다.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 스티븐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등이 그와 함께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진영은 월가 출신의 온건 자유무역주의 옹호론자들이다.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스티븐 므누신 재무부 장관, 디나 파월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월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미 언론들은 이들의 싸움을 백악관 내 ‘내전(civil war)’으로 표현했다. 워싱턴의 한 통상 전문가는 “USTR 보고서 톤이 바뀐 것은 강경파 입김이 줄어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콘 위원장이 나바로 위원장의 미·중 정상회담과 관련한 과격한 보고서를 보고 중간에서 커트(cut)시켰다”고 전했다.
◆“한·미 FTA 엉터리 주장 중단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로스 장관과 나바로 위원장, 배넌 전략가 등 ‘강경파’가 배석한 가운데 백악관에서 모든 교역국의 불공정 무역행위 전수조사 등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한쪽에 힘을 몰아주고 있지 않다”며 “백악관에서도 세력 간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의 경제 분야 싱크탱크인 카토연구소는 지난달 30일 ‘한국과의 무역협정에 대해 트럼프 참모들이 모두 틀렸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해 이목을 끌었다.
앨런 레이놀드 선임연구원은 나바로 위원장과 로버트 라이시저 USTR 대표 내정자 등이 한·미 FTA 체결로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적자가 크게 늘었다고 주장한 것을 반박했다. 반도체·자동차·펌프 등 한국의 주요 수출품이 대부분 2013년 한·미 FTA 발효 이전부터 거의 무관세로 수출됐기 때문에 FTA로 수출이 더 늘었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했다. FTA로 인한 관세 인하가 대부분 2016년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양국 간 무역수지 변화를 FTA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박진우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