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변호사의 바른 상속 재테크] (9) 민법 시행 전에 호주 아닌 기혼 장남이 자녀 없이 사망한 경우 누가 상속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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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시행 전에 호주 아닌 기혼 장남이 자녀 없이 사망한 경우 누가 상속할까?
<대법원 2015. 1. 29. 선고 2014다205683 판결>
1. 사실관계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초순, 내무부 치안국은 각 지역 경찰서에 해당 지역의 보도연맹원과 요시찰대상자들을 예비검속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대구지역 각 경찰과 헌병들은 같은 해 7월 중순에서 8월 초순 사이 대구의 보도연맹원들과 요시찰대상자들을 연행하여 경찰서 유치장, 대구형무소, 극장 등에 구금하였다가 경산시 폐코발트광산 등 여러 곳에서 사살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희생사건이 그 무렵 경북 영덕, 울진, 경남 함양 등에서도 발생하였다(이하 ‘국민보도연맹사건’이라 한다).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희생된 망인들의 유족 내지 그 상속인들은, 피고 대한민국(이하 ‘피고’라 한다) 소속 군인 또는 경찰관, 치안대가 이 사건 각 희생사건에서 망인들을 적법 절차 없이 연행 · 구금하고 살해하는 등 불법행위를 범했으므로, 피고는 망인들의 유족 내지 그 상속인들에게 유족으로서의 정신적 고통으로 말미암은 위자료(유족 본인의 위자료)와 그 상속분(망인의 위자료)에 해당하는 금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를 했다.
한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 각 희생사건에 대한 관련자들의 진실규명신청을 접수하여 위 사건을 조사한 끝에 2009. 11. 10. 망 A(이하 ‘망인’이라 한다)가 경남 함양 국민보도연맹사건에서 희생된 희생자임을 확인하는 내용의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 장남이었던 망인은 위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인해 1959. 8. 10. 사망하였는데, 그 당시 유족으로 호주이자 아버지인 B, 어머니 C, 처인 원고 등이 있었고, 망인의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 원고는 망인의 피고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을 자신이 단독으로 상속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그 위자료 8,000만원과 본인의 위자료 4,000만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했다.
2. 판결요지
가.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국군과 각 지역 경찰서 소속 경찰 등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단지 국민보도연맹원 등이라는 이유만으로 연행한 후 위에서 인정한 희생자들을 살해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 행위는 공무원 등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로 인하여 망인들과 그 유족들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헌 헌법(1948. 7. 17. 제정되어 1960. 6. 15. 개정되기 전의 것) 제27조에 따라 그 소속 공무원 등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하여 희생당한 망인들과 그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나. 상속관계
현행 민법이 시행되기 전에 호주 아닌 기혼의 장남이 직계비속 없이 사망한 경우 그 재산은 처가 상속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관습이었다. 장남이었던 망인의 당시 유족으로 호주이자 아버지인 B, 어머니인 C, 처인 원고 등이 있었고, 망인의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면, 망인의 처인 원고가 망인의 재산을 단독으로 상속했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와 달리 원심은, 관습법에 의하면 망인의 아버지인 호주 B가 망인의 재산을 단독으로 상속한다고 잘못 판단하였는바,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구 관습상 상속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3. 해설
가. 조선민사령과 친족상속에 관한 구(舊)관습
조선을 병합한 일제는 조선인 사이의 민사관계를 규제하기 위하여 1912년 조선민사령(동년 4월 1일 시행)을 제정, 공포하였다. 동령 제1조는 “민사에 관한 사항은 본령 기타의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한 외에는 다음의 법률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다음의 법률로서 일본의 민법과 상법, 민사소송법 등 23종의 일본의 민사관계법을 열거하였다. 이로써 일본의 민사법이 우리나라에 적용되게 되었는바, 이를 의용민법이라 부른다. 그런데 조선민사령은 친족과 상속 분야에 관하여는 일본민법을 적용하지 않고 관습에 의한다고 하여 예외를 인정하였다(동령 제11조). 이처럼 가족법분야에서 일본민법을 의용하지 않고 우리의 관습법만을 법원(法源)으로 인정한 것은 재산법분야와 달리 가족법분야는 각기 고유한 전통과 습속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본민법을 그대로 적용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관습을 조사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에서는 1908년 5월부터 1910년 9월에 걸쳐 부동산법조사회와 법전조사국에서 조사한 것을 토대로 하여 1910년에 한국관습조사보고서를 간행했으며, 이를 정정 보충하여 1912년에 관습조사보고서를 간행했다. 이 보고서는 근대법이 수용된 후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관습을 전국적인 규모로 체계적으로 조사한 유일한 보고서일 것이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관습의 조사 이외에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서, 즉 재판에 있어서 관습의 존부가 문제로 되는 경우에는 사법협회의 질의응답이나 민사관습회답휘집 등을 통하여 개별적으로 관습의 존부를 결정했다.
나. 일제에 의해 왜곡된 관습상속법
재산상속에 관하여 조선시대에는 남녀균분상속이 대원칙이었으며 이는 조선시대가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와 같은 균분상속제도가 20세기 초까지 존속한 나라는 베트남과 우리나라뿐이라고 한다. 비록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아들, 특히 장자를 우대하는 관행이 우세했다고는 하나, 이러한 경향은 피상속인이 생전에 자신의 의사에 기하여 상속재산의 분할을 지정하는 경우에 한하며, 법정상속이 행하여지거나 공동상속인이 협의하여 상속재산을 분할하는 경우에는 거의 全시대에 걸쳐 균분상속이 원칙이었다. 즉 우리나라의 상속에 관한 전통 성문법전상으로는 남녀균분상속이 원칙이 포기된 바가 없었다.
그런데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의 재산상속에 관한 관습법으로 정립된 것은, 조선시대 성문상속법제의 내용과 크게 달라진 남자 중심, 특히 장자 중심의 조선 후기의 상속관행이었다. 이 때 일본상속법, 즉 가독상속의 법리가 침투되어 상속의 기본원리가 변경되었다. 일제에 의한 관습재산상속법은 재산상속을 호주상속과 연결지어 규율해야 할 경우와 그렇지 아니한 경우로 나누어 이원적으로 규정하였다. 피상속인의 신분이 남호주인 경우에는, 제1차적인 상속인으로서의 자격이 인정되는 사람으로서 가계를 계승할 자격이 있는 남자손만을 규정하여 여자손을 상속에서 배제하고, 호주상속을 겸하게 되는 장자를 특히 우대하게 된다. 호주상속을 겸하는 장자가 일단 유산 전부를 독점상속하고, 차자 이하의 다른 상속인이 분가할 때에 분재하며, 분가에는 호주의 동의가 필요요건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장자단독상속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피상속인이 남호주가 아닌 가족일 경우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공동균분상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일본 민법상의 가독상속과 유산상속의 법리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 결과 호주상속이 상속법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고 재산상속은 그에 예속되었으며, 상속에서의 남녀, 적서의 차별이 더욱 확대되었다.
다. 제정 민법에 따른 상속관습의 적용
이러한 관습상속법은 단지 법제사적인 측면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법률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1960년 제정 민법 부칙 제25조에 의하면 민법 시행일 전에 개시된 상속에 관하여는 민법 시행일 이후에도 구법의 규정을 적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구법인 조선민사령에서 상속에 관하여는 관습에 의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도 망인이 1959년에 사망하여 민법이 시행되기 전에 상속이 개시되었기 때문에 상속에 관한 구 관습을 확인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대법원은, 현행 민법이 시행되기 전에 호주 아닌 기혼의 장남이 직계비속 없이 사망한 경우 그 재산은 처가 상속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관습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판단한 근거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 부분에 관한 관습을 확인한 자료로는 사법협회의 질의ㆍ응답과 민사관습회답휘집이 있다. 그런데 이 두 자료는 그 내용이 상반된다. 즉 “가족인 기혼의 장남이 남자 없이 사망한 때에는 그 유산은 처가 상속해야 하는 것이 관습이고 처에 앞서 호주인 부(父)가 상속하는 일은 없다. 호주의 장남이 무후(無後)로 사망한 경우 사자(死者)의 유산은 유처(遺妻)가 종국적으로 상속하여야 한다.”고 하는 사법협회의 질의ㆍ응답과 “호주의 기혼 장남이 처만 남기거나 처와 딸만 남기고 사망한 때에는 그 유산은 부(父)인 호주에게 귀속하고 그 호주가 사망한 후에는 망장남의 처에게 귀속한다.”고 하는 민사관습회답휘집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반된 관습조사결과 중 원심은 후자를, 대법원은 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위와 같이 결론을 내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판결문만으로는 알 수 없으나, 민사관습회답휘집에 따라 호주인 B에게 상속을 시키더라도 B가 사망하면 결국 다시 망인의 처인 원고에게 상속재산이 귀속될 것이라는 점, 상속의 순위에 있어서 직계존속보다는 배우자를 우선시하는 것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 등의 현실적인 이유가 고려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법학박사 김상훈
학력
1.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2. 법학석사(고려대학교) : 민법(친족상속법) 전공
3. 법학박사(고려대학교) : 민법(친족상속법) 전공
4. 미국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Law School 졸업(Master of Laws)
5. 서울대학교 금융법무과정 제6기 수료
경력
1. 제43회 사법시험 합격
2. 사법연수원 33기 수료
3.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친족상속법, 신탁법 담당
4. 서울지방변호사회 증권금융연수원 강사 : 신탁법 담당
5. 법무부 민법(상속편) 개정위원회 위원
6. 대한변호사협회 성년후견연구위원회 위원
7. 금융투자협회 신탁포럼 구성원
8. 한국가족법학회 이사
9. 한국성년후견학회 이사
10. 상속신탁연구회 부회장
11. 법무법인(유한) 바른 구성원변호사
<대법원 2015. 1. 29. 선고 2014다205683 판결>
1. 사실관계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초순, 내무부 치안국은 각 지역 경찰서에 해당 지역의 보도연맹원과 요시찰대상자들을 예비검속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대구지역 각 경찰과 헌병들은 같은 해 7월 중순에서 8월 초순 사이 대구의 보도연맹원들과 요시찰대상자들을 연행하여 경찰서 유치장, 대구형무소, 극장 등에 구금하였다가 경산시 폐코발트광산 등 여러 곳에서 사살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희생사건이 그 무렵 경북 영덕, 울진, 경남 함양 등에서도 발생하였다(이하 ‘국민보도연맹사건’이라 한다).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희생된 망인들의 유족 내지 그 상속인들은, 피고 대한민국(이하 ‘피고’라 한다) 소속 군인 또는 경찰관, 치안대가 이 사건 각 희생사건에서 망인들을 적법 절차 없이 연행 · 구금하고 살해하는 등 불법행위를 범했으므로, 피고는 망인들의 유족 내지 그 상속인들에게 유족으로서의 정신적 고통으로 말미암은 위자료(유족 본인의 위자료)와 그 상속분(망인의 위자료)에 해당하는 금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를 했다.
한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 각 희생사건에 대한 관련자들의 진실규명신청을 접수하여 위 사건을 조사한 끝에 2009. 11. 10. 망 A(이하 ‘망인’이라 한다)가 경남 함양 국민보도연맹사건에서 희생된 희생자임을 확인하는 내용의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 장남이었던 망인은 위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인해 1959. 8. 10. 사망하였는데, 그 당시 유족으로 호주이자 아버지인 B, 어머니 C, 처인 원고 등이 있었고, 망인의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 원고는 망인의 피고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을 자신이 단독으로 상속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그 위자료 8,000만원과 본인의 위자료 4,000만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했다.
2. 판결요지
가.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국군과 각 지역 경찰서 소속 경찰 등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단지 국민보도연맹원 등이라는 이유만으로 연행한 후 위에서 인정한 희생자들을 살해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 행위는 공무원 등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로 인하여 망인들과 그 유족들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헌 헌법(1948. 7. 17. 제정되어 1960. 6. 15. 개정되기 전의 것) 제27조에 따라 그 소속 공무원 등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하여 희생당한 망인들과 그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나. 상속관계
현행 민법이 시행되기 전에 호주 아닌 기혼의 장남이 직계비속 없이 사망한 경우 그 재산은 처가 상속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관습이었다. 장남이었던 망인의 당시 유족으로 호주이자 아버지인 B, 어머니인 C, 처인 원고 등이 있었고, 망인의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면, 망인의 처인 원고가 망인의 재산을 단독으로 상속했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와 달리 원심은, 관습법에 의하면 망인의 아버지인 호주 B가 망인의 재산을 단독으로 상속한다고 잘못 판단하였는바,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구 관습상 상속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3. 해설
가. 조선민사령과 친족상속에 관한 구(舊)관습
조선을 병합한 일제는 조선인 사이의 민사관계를 규제하기 위하여 1912년 조선민사령(동년 4월 1일 시행)을 제정, 공포하였다. 동령 제1조는 “민사에 관한 사항은 본령 기타의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한 외에는 다음의 법률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다음의 법률로서 일본의 민법과 상법, 민사소송법 등 23종의 일본의 민사관계법을 열거하였다. 이로써 일본의 민사법이 우리나라에 적용되게 되었는바, 이를 의용민법이라 부른다. 그런데 조선민사령은 친족과 상속 분야에 관하여는 일본민법을 적용하지 않고 관습에 의한다고 하여 예외를 인정하였다(동령 제11조). 이처럼 가족법분야에서 일본민법을 의용하지 않고 우리의 관습법만을 법원(法源)으로 인정한 것은 재산법분야와 달리 가족법분야는 각기 고유한 전통과 습속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본민법을 그대로 적용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관습을 조사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에서는 1908년 5월부터 1910년 9월에 걸쳐 부동산법조사회와 법전조사국에서 조사한 것을 토대로 하여 1910년에 한국관습조사보고서를 간행했으며, 이를 정정 보충하여 1912년에 관습조사보고서를 간행했다. 이 보고서는 근대법이 수용된 후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관습을 전국적인 규모로 체계적으로 조사한 유일한 보고서일 것이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관습의 조사 이외에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서, 즉 재판에 있어서 관습의 존부가 문제로 되는 경우에는 사법협회의 질의응답이나 민사관습회답휘집 등을 통하여 개별적으로 관습의 존부를 결정했다.
나. 일제에 의해 왜곡된 관습상속법
재산상속에 관하여 조선시대에는 남녀균분상속이 대원칙이었으며 이는 조선시대가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와 같은 균분상속제도가 20세기 초까지 존속한 나라는 베트남과 우리나라뿐이라고 한다. 비록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아들, 특히 장자를 우대하는 관행이 우세했다고는 하나, 이러한 경향은 피상속인이 생전에 자신의 의사에 기하여 상속재산의 분할을 지정하는 경우에 한하며, 법정상속이 행하여지거나 공동상속인이 협의하여 상속재산을 분할하는 경우에는 거의 全시대에 걸쳐 균분상속이 원칙이었다. 즉 우리나라의 상속에 관한 전통 성문법전상으로는 남녀균분상속이 원칙이 포기된 바가 없었다.
그런데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의 재산상속에 관한 관습법으로 정립된 것은, 조선시대 성문상속법제의 내용과 크게 달라진 남자 중심, 특히 장자 중심의 조선 후기의 상속관행이었다. 이 때 일본상속법, 즉 가독상속의 법리가 침투되어 상속의 기본원리가 변경되었다. 일제에 의한 관습재산상속법은 재산상속을 호주상속과 연결지어 규율해야 할 경우와 그렇지 아니한 경우로 나누어 이원적으로 규정하였다. 피상속인의 신분이 남호주인 경우에는, 제1차적인 상속인으로서의 자격이 인정되는 사람으로서 가계를 계승할 자격이 있는 남자손만을 규정하여 여자손을 상속에서 배제하고, 호주상속을 겸하게 되는 장자를 특히 우대하게 된다. 호주상속을 겸하는 장자가 일단 유산 전부를 독점상속하고, 차자 이하의 다른 상속인이 분가할 때에 분재하며, 분가에는 호주의 동의가 필요요건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장자단독상속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피상속인이 남호주가 아닌 가족일 경우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공동균분상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일본 민법상의 가독상속과 유산상속의 법리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 결과 호주상속이 상속법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고 재산상속은 그에 예속되었으며, 상속에서의 남녀, 적서의 차별이 더욱 확대되었다.
다. 제정 민법에 따른 상속관습의 적용
이러한 관습상속법은 단지 법제사적인 측면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법률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1960년 제정 민법 부칙 제25조에 의하면 민법 시행일 전에 개시된 상속에 관하여는 민법 시행일 이후에도 구법의 규정을 적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구법인 조선민사령에서 상속에 관하여는 관습에 의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도 망인이 1959년에 사망하여 민법이 시행되기 전에 상속이 개시되었기 때문에 상속에 관한 구 관습을 확인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대법원은, 현행 민법이 시행되기 전에 호주 아닌 기혼의 장남이 직계비속 없이 사망한 경우 그 재산은 처가 상속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관습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판단한 근거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 부분에 관한 관습을 확인한 자료로는 사법협회의 질의ㆍ응답과 민사관습회답휘집이 있다. 그런데 이 두 자료는 그 내용이 상반된다. 즉 “가족인 기혼의 장남이 남자 없이 사망한 때에는 그 유산은 처가 상속해야 하는 것이 관습이고 처에 앞서 호주인 부(父)가 상속하는 일은 없다. 호주의 장남이 무후(無後)로 사망한 경우 사자(死者)의 유산은 유처(遺妻)가 종국적으로 상속하여야 한다.”고 하는 사법협회의 질의ㆍ응답과 “호주의 기혼 장남이 처만 남기거나 처와 딸만 남기고 사망한 때에는 그 유산은 부(父)인 호주에게 귀속하고 그 호주가 사망한 후에는 망장남의 처에게 귀속한다.”고 하는 민사관습회답휘집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반된 관습조사결과 중 원심은 후자를, 대법원은 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위와 같이 결론을 내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판결문만으로는 알 수 없으나, 민사관습회답휘집에 따라 호주인 B에게 상속을 시키더라도 B가 사망하면 결국 다시 망인의 처인 원고에게 상속재산이 귀속될 것이라는 점, 상속의 순위에 있어서 직계존속보다는 배우자를 우선시하는 것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 등의 현실적인 이유가 고려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법학박사 김상훈
학력
1.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2. 법학석사(고려대학교) : 민법(친족상속법) 전공
3. 법학박사(고려대학교) : 민법(친족상속법) 전공
4. 미국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Law School 졸업(Master of Laws)
5. 서울대학교 금융법무과정 제6기 수료
경력
1. 제43회 사법시험 합격
2. 사법연수원 33기 수료
3.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친족상속법, 신탁법 담당
4. 서울지방변호사회 증권금융연수원 강사 : 신탁법 담당
5. 법무부 민법(상속편) 개정위원회 위원
6. 대한변호사협회 성년후견연구위원회 위원
7. 금융투자협회 신탁포럼 구성원
8. 한국가족법학회 이사
9. 한국성년후견학회 이사
10. 상속신탁연구회 부회장
11. 법무법인(유한) 바른 구성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