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다》 《노서아 가비》 등으로 유명한 김탁환 작가가 에세이집 《엄마의 골목》(난다)을 냈다. 올해 일흔다섯인 어머니와 함께 고향인 경남 진해 곳곳을 둘러보며 나눈 대화를 글로 옮긴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김 작가의 어머니는 다섯 살 때 진해로 건너와 지금까지 줄곧 살았다. 어린 시절, 결혼생활,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보낸 30년의 세월 등 한평생의 기억이 도시 곳곳에 묻어 있다. 작가는 어머니와 함께 동네 골목을 걸으며 그 장소에 얽힌 추억을 전해들었다.
두 사람은 큰길부터 깊숙한 골목까지 진해 곳곳을 1년여 동안 누비며 얘기를 나눴다. 하루는 진해역에서 진해 행암동까지 이어지는 철길을 함께 걸었다. 어머니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만나 둘이 함께 걷던 길이다. 아들이 물었다. “무슨 이야길 하셨어요?” 어머니가 답했다. “기억나는 게 없네. 아니 이야길 거의 안 했어.” 못 믿겠다는 듯한 아들의 반응에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그냥 같이 걷는 게 좋았으니까. 나란히 걷는 것도 아니었어. 주로 네 아버지가 앞서가고 난 뒤따라가고. 그러다가 거리가 가까워지면, 눈 한 번 마주치고, 그럼 또 네 아버지가 앞서가고 난 뒤따라가고.”
김 작가는 목차를 비롯한 형식을 갖추기보다 자연스럽게 모친과 나눈 얘기를 글로 옮기는 데 초점을 뒀다. 어떤 글은 10쪽 가까이 이어지고 어떤 글은 한 줄이 전부다. ‘어머니’ 대신 ‘엄마’라고 한 게 인상적이다. 왜 그랬을까. 책에 설명이 나온다. “‘엄마의 골목’이 좋아요? ‘어머니의 골목’이 좋아요?” “엄마의 골목!” “왜죠?” “더 가까운 느낌이 들어. 어머니가 안방에서 앞마당 정도 거리라면, 엄마는 안방을 벗어나지 않고 한 이불 속에 있는, 그런 기분!”
김 작가는 “이 책을 쓴 건 점점 늙어가는 어머니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기도 하다”며 독자들에게 이렇게 권했다. “저마다의 골목을 엄마와 함께 걷는 독자들이 늘었으면 싶다. 더 늦기 전에!”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